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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Woo Lee Jun 29. 2024

운영일지

후일담

2024.04.25 (목)

오늘부터 운영 일지를 쓰려고 한다. 인생 처음하는 경험이라 그냥 흘려보내기 아깝다. 더 일찍 쓰기 시작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2024.04.26 (금)

서재에 있으면 외로움이 고독으로 치환된다. 외로움의 치료약은 고독이라 했는데 출판전야에서는 그걸 체험할 수 있다. 내 의도가 잘 구현되어 뿌듯하다. 이런 경험을 다른 사람들도 하면 좋겠다. 출판전야가 고독의 즐거움을 온 세상에 퍼뜨릴 수 있기를.


2024.04.28 (일)

서재를 관리하며 소소한 행복감을 느낀다. 작고 소중한 나의 우주. 거창하지 않지만 이곳에서 멋진 이야기가 태어난다.


2024.04.30 (화)

문득 이렇게 서재에 아는 사람들만 초대하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글을 쓸 물리적 환경을 갖추지 못한 분들에게 장소를 마련해 주고 싶지 않았나. 그런 분들을 어디서 찾을 수 있으려나. 유명한 작가보다는 출판전야가 정말 필요한 분을 찾아서 초대해 보자.


2024.05.01 (수)

개인 작업의 양이 출판전야 덕분에 늘어나 전보다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낸다면 그것만으로 출판전야를 한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그게 돈을 안 벌어도 괜찮다는 변명거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형형색색의 손님을 맞아 그들의 눈을 통해 출판전야를 느끼고 싶다.


2024.05.02 (목)

출판전야를 시작한 뒤 건강을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커진다. 책임져야 할 게 하나 늘었고 그 크기도 만만치 않으니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부담이 많이 되었겠지.


공간 운영하는 사람들이 전보다 건강을 신경쓰게 되었다는 말을 하는 게 이해된다. 조금이라도 젊을 때 도전해서 다행이다.


2024.05.11 (토)

서재를 열고 지인들이 꽤 찾아왔다. 뚝섬까지 먼 걸음을 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아름답다는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긍정적인 반응에 안심이 되지만 이제 슬슬 비 지인 손님의 평가가 궁금하다. 예약을 개시했는데 언제쯤 그런 평을 받을 수 있을까.


2024.05.13 (월)

지금까지 추이를 보면 다들 관심은 보이는데 예약은 안 하는 것 같다. 여기가 어떤 곳인지 잘 몰라서 그런 걸지 아니면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2024.05.14 (화)

출판전야 오픈 게시글을 올렸는데 별다른 반응이 없다. 미궁에 빠진 것 같은 느낌. 초기에는 지인 장사라고 하던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자영업이 이런 점에서 참 어렵고 무섭다. 이 막막함을 견뎌야 하는 것. 생업인 분들은 이 시기를 어떻게 견딜까.


앞으로도 지금처럼 손님이 안 들 수 있다. 심지어 광고를 돌리더라도.. 매달 월급이 나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2024.05.16 (목)

오늘은 의미가 있는 날이다. 처음으로 비 지인 손님 예약이 들어왔다. 어찌 보면 내 자영업 인생에서 첫 손님이 아닌가. 특별한 인연이 아닐 수가 없다. 제발 토요일까지 예약이 취소되지 않아 도슨트까지 해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손님이 마중물이 될지도 모른다. 매 손님마다 이런 마음을 갖고 준비하자. 초심을 견고하게 다지자.


2024.05.18 (토)

처음으로 비 지인 손님이 다녀가신 날. 생각보다 떨지 않고 도슨트를 이어갔다. 손님의 반응은 아리송.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표정을 보고 파악해야 되는데 긴가민가하다. 접객을 더 하면 이런 거에 능숙해지려나. 서재에서 어떤 작업을 하셨는지 궁금하다.


2024.05.19 (일)

어제 첫 비 지인 손님이 남기고 간 방명록을 봤다. 호우시절.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 출판전야가 누군가에게 때를 알고 내린 반가운 비였다는 게 뿌듯하다. 모르는 손님이 남겨 주신 글이라 더 특별하다. 뒷정리를 하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2024.05.21 (화)

주문한 사이드 테이블을 취소했다. 사이드 테이블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때를 떠올렸다. 모두 지인이 놀러 와서 담소를 나눌 때였다. 출판전야를 혼자 쓸 때는 사이드 테이블이 필요하다고 느낀 적이 없다. 결국 내 충동이자 욕심이었다.


사이드 테이블 대신 책상 재료의 견본으로 받은 나무 판을 트레이로 쓰기로 했다. 나름 의미도 있고 꽤 두꺼워서 컵을 잘 받쳐 줄 수 있을 것 같다. 돈을 들이지 않고 서재에 필요한 조치를 해서 뿌듯하다.


2024.05.22 (수)

요새 IOT에 빠졌다. 원격으로 조정할 수 있어 참 편하다. 이게 있으면 손님이 조명이나 에어컨을 켜고 가도 걱정이 없다.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기술이다.


2024.05.23 (목)

이런 서재를 운영하는 분의 집이 궁금해요. 손님의 말씀에 찔렸다. 서재와 달리 집은 개판 오 분 전이니까. 그동안 출판전야를 관리하느라 정작 자취방에는 소홀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 같아서 미루고 미루다 오늘 다 치웠다. 앞으로는 집도 잘 관리해야지. 서재와 집, 둘 다 내 삶이다.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도 무너진다.


2024.05.24 (금)

어찌 보면 출판전야를 가장 날씨가 좋을 때 연 거니까 앞으로 거쳐야 할 고난이 많다. 장마, 폭염, 폭설, 강추위. 이런 것들을 서재가 잘 견딜 수 있을지. 바닥 난방이 되지 않아 걱정이다. 오프라인 사업은 신경써야 할 게 많다.


2024.05.25 (토)

손님의 표정을 열심히 살피게 된다. 출판전야에 처음 들어왔을 때, 도슨트를 들을 때, 출판전야에 혼자 남겨질 때. 손님의 표정을 살핀다.


표정뿐이랴. 손님의 자세, 목소리, 어조 등. 나도 모르는 사이 손님이 출판전야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손님의 느낌을 느낀다.


손님의 반응에 따라 일희일비한다. 생각보다 별론가, 실망했나라는 생각이 들면 하루 종일 기분이 찝찝하다. 비 오는 날 밖에 빨래를 내놓은 것처럼.


그럼에도 손님을 대면해야만 할 수 있는, 전에는 해 보지 못한 귀한 경험이다.


2024.05.26 (일)

시간이 지나며 새롭게 알게 되는 출판전야의 매력이 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 쪽문을 열었다. 빗물이 테라스에 떨어지는 소리, 비 사이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2024.05.29 (수)

출판전야를 시작하고 이런저런 선물을 받는데, 가장 뜻깊은 건 아무래도 인연이겠다. 출판전야 덕에 새로 알게 되거나 오랜만에 뵙는 분들이 있다. 앞으로도 이런 선물을 더 받으면 좋겠다.


2024.05.30 (목)

체력적으로 지치는 감이 있다. 되도록이면 출판전야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무리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출판전야에 오는 길이 설레려면 마지막 기억이 중요하다. 매번 힘든 상태로 문을 나서면 서재에 오는 일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2024.06.09 (일)

오늘 서재 쓰레기통을 비우는데 꽤나 뿌듯했다. 쓰레기가 많으면 그만큼 잘 쓰고 간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방명록을 보니 새벽 2시까지는 쓰고 가신 것 같다.


2024.06.10 (월)

오늘은 출판전야에 가지 않았다. 회사에 다녀오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1인 사업이라 내 마음대로 이것저것 해 볼 수 있지만 반대로 내가 축 늘어져 있으면 아무 진전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2024.06.23 (일)

서재에 와서 방명록을 보고 놀랐다. 정갈한 글씨로 쓰인 시 같은 방명록. 출판전야를 위한 고독의 시를 헌사받았다. 이렇게 공들인 글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니. 출판전야 덕에 귀한 경험을 한다. 방명록이 출판전야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다.


2024.06.26 (수)

출판전야를 가지 않는 날에는 죄책감을 느낀다. 마치 헬스장을 안 간 것처럼. 월세를 내고 비워 두는 셈이니까. 근데 가끔은 편안하게 집 근처 카페에서 여유로이 작업을 하고 싶은 날도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작업하고 싶은 날엔 좀 풀어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2024.06.29 (토)

오늘 다녀간 지인이 다리가 불편한 분들은 찾아오기 힘들겠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엘리베이터가 없는데 4층에 있고 주차장도 없으니 출판전야 방문이 어려운 분들이 있을 것 같다. 이번에는 챙기지 못했지만 다음번에는 꼭!


2024.06.30 (일)

도슨트를 받은 손님이 출판전야의 수익성을 물으셨다. 돈보다는 무형의 가치를 얻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답했다. 도슨트를 마치고 서재를 떠나며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출판전야를 통해 어떤 무형의 가치를 얻고 있는가. 운영하기 급급해 방향성을 잃은 느낌이다. 글을 쓸 환경을 갖추지 못한 분들에게 서재를 내어 주는 일을 다음 달엔 꼭 시작해 보자.


2024.07.02 (화)

오늘은 회사에 다녀오느라 출판전야를 가지 못했다. 비가 쏟아져서 서재가 괜찮을지 걱정이 된다. 출판전야를 시작하고 날씨에 민감해졌다.


2024.07.16 (화)

출판전야에서 회사 일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러려고 서재를 만든 게 아닌데.. 회사 일을 마치고 개인 작업을 연달아하면 체력적으로 너무 지친다. 퇴근하고 서재에 가는 게 나을지 고민이다.


2024.07.18 (목)

한지 블라인드 색이 묘하게 물든 것 같아 살피니 천장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곧바로 한지 블라인드를 바닥에 널어서 말리고 물이 떨어지는 곳에 휴지를 갖다 놓았다. 다사다난하다. 앞으로는 장마가 무섭게 느껴질 것 같다.


2024.07.28 (일)

서재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손님이 가장 큰 궁금증을 남긴다. 어떤 작업을 하다 가셨을까. 만족은 하셨을까. 생각은 보통 안 좋은 쪽으로 기운다.


2024.07.29 (월)

최근에는 광고를 돌리지 않으니 서재 예약이 뜸하다. 광고 없이 자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재가 작으니 그만큼 바이럴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 핑계려나? 한 분 한 분에게 더 깊은 감동을 주면 입소문이 퍼질 수도 있겠지.


다른 한편으로는 오프라인의 공간적 한계를 온라인 서비스로 확장해 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한다. 글쓰기를 응원하는 장소니 글쓰기와 관련된 서비스를 만들면 어떠려나. 머릿속에 고민의 씨앗을 심어 둔다.


2024.08.04 (일)

오늘은 기념비적인 날이다. 안 좋은 일이니 기념은 아닐라나. 처음으로 노쇼를 경험했다. 이벤트로 무료 사용권을 받은 손님이 노쇼한 거라 기분이 더 안 좋았다. 못 온다고 미리 말을 해 주었다면 다른 손님을 받았을 텐데.


화가 나서 뭐라고 하려다 그만두었다. 자영업을 하다 보면 인류애가 박살 나는 순간이 온다던데 여지껏 없었던 게 운이 좋았던 거겠지.


2024.08.07 (수)

로로 님이 출판전야의 첫 번째 월요 작가가 되셨다. 다다음 주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서재에서 글을 쓰실 예정이다. 좋아하는 작가 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이다.


2024.08.08 (목)

글쓰기를 잘하고 싶어진다. 출판전야를 하며 글쓰기와 더 가까워지고 싶었는데 이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했다.


요새는 출판전야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 써야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게 구명줄 같다. 계속 삶을 부여잡게 해 준다.


2024.08.09 (금)

서재 근처에 술집이 몇 곳 있다. 술기운에 양심이 마비된 사람들이 길바닥에 담배꽁초를 버린다. 담배꽁초로 가득 찬 하수구 구멍을 보면 속이 메스껍다. 손님 분들의 눈에 안 띄길 간절히 바란다.


2024.08.18 (일)

출판전야가 비싼 취미가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왠지 기분이 안 좋으면서도 비싼 취미면 안 될 건 뭐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2024.08.20 (화)

한 손님 분이 코로나 때문에 못 오셨다. 손님의 건강 상태도 가게 영업에 영향을 준다. 온라인 서비스를 운영할 땐 그걸 몰랐다. 자영업자들은 손님의 건강을 진심으로 걱정할 수밖에 없다.


2024.08.29 (목)

손님의 물꼬가 트였다고 말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금세 말라 버렸다. 광고 소재를 바꿔야 하나. 고민은 많은데 행동은 굼뜨다.


2024.09.08 (일)

서재를 정리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석촌호수 앞 브런치 가게에서 여유로운 한 때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봤다. 근사하게 차려입고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고. 이런 일상에서 나는 이방인이다. 저 그림 안에 있어도 좋을 법한데 나는 굳이 밖에 나와 진땀을 흘리며 걷고 있다. 몸이 지치니 마음도 따라 지친다.


2024.09.14 (목)

최근 서재에 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처음엔 무더위에 지쳐서 그런 거겠지 했다. 서재에 가는 횟수를 줄이고 체력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좀 쉬니 활력은 생겼는데 발걸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이유가 뭘지 고민하다 서재를 떠날 때의 마음이 떠올랐다.


비어 있는 시간이 아까워 회사 일도 서재에서 했다. 6~8시간을 일하니 체력이 떨어져 퇴근하면 자연스레 귀가를 하게 됐다. 서재를 나설 때 마음에 자리하던 고양감을 피로감이 대신했다. 서재에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던 이유다.


서재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 마음먹었다. 싫어하는 일을 하는 서재가 기분 좋게 기억될 리 있을까.


오늘은 일부러 집에서 회사 일을 하고 저녁에 서재에 와서 개인 작업을 했다. 최근에 본 Look Back의 사운드 트랙을 들으며 글도 쓰고 코딩도 하고.


출판전야는 밤에 오면 섬 같다. 뚝섬 안에 있는 또 다른 섬. 간만에 고독의 즐거움을 누렸다. 비앙 당사포(bien dans sa peau). 나에게 딱 맞는 껍질에 들어가 있다는 말인데 오늘이 그런 느낌이었다.


다음 방문 때는 발걸음이 가벼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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