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gie's Plan, 2015
John: What do you want?
Maggie: I want to live honestly.
매기는 이혼한 적이 있는 존과 결혼한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
결국 남편을 다시 전처에서 돌려보낼 계획을 세운다. 그것도 전처와 함께!
이 계획을 알게 된 존은 대체 뭘 원하는 거며 화를 내는데, 매기는 그 물음에 "솔직하게 살고 싶어"라고 대답한다.
솔직함은 때때로 철저히 이기적인 변명이 된다.
더 이상 받아칠 말이 없게 하기 때문이다. 거짓으로 살아가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만큼 솔직함은 나를 위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어떠한 이유도 궁색하다고 느껴질 때, 최후의 고상함을 지킬 수 있는 카드.
엄마는 최근 노래 교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하하하"하고 크게 웃고, "갑자기 왜?"라고 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를 민망하게 한 것 같아 조금 미안해진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모두 타고난 음치라는 걸 떠올리면 이해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동창이 빼어난 명창이 되었다는 것이 시작이었다.
가요 한 곡만 배우려 했는데, 그 동창 선생님께서 말하기를 민요부터 시작하면 앞으로 못 부를 노래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째 민요 만물설처럼 들리는 것이 묘하게 설득력을 떨어뜨렸지만, 엄마는 그 말에 넘어가 민요를 배우기로 했다고 한다.
평소 엄마답지 못하게 이것저것 따져보지 않고, 두 번 생각하지 않는 비합리적 소비에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가격은 얼마인지, 장소가 너무 먼 곳은 아닌지 등 이 취미를 하지 못하게 할 질문들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 못 할 이유가 136가지여도, 하고 싶은 이유 딱 한 가지만 있다면 그건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 가족 유일한 '송 씨'는 '오 씨'들에게서 벗어나 살아갈 필요가 있다.
따라서 나는 엄마의 새로운 취미에 '솔직한 삶'이라는 정당함을 스스로 부여해주기로 했다.
음치인 엄마가 노래가 부르고 싶어 졌다는 것을 '다 됐고, 솔직하게 살고 싶어!'라는 선언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학생으로서 엄마의 모습은 정말이지 낯설었다.
엄마는 우리 집에서 가장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정치적 성향과는 상관없이, 기질 자체가 그랬다.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싶지 않다는 고집도 대리점 직원과 함께 겨우 설득해 작년에서야 꺾을 수 있었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꼴이 싫어 (구체적인 예시로 아빠를 들며) 스마트폰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강경한 쇄국 정책이었다.
카카오톡도 몇 번이나 가르쳐줬지만 그때마다 "몰라, 안하켜('안 할래'의 제주 사투리)!" 해버리는 불성실한 새침데기였다.
그래서 엄마는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걸 싫어하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민요 교실에서 엄마는 아주 성실한 모범생이었다.
매 수업을 녹음해와서 집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다시 들으며 예습, 복습을 철저히 했다.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이었으므로 같은 녹음을 일주일 내내 들었는데, 그때마다 같은 부분에서 웃음을 터트렸다.
녹음을 듣다가 뭐라고 말을 걸길래 방문을 열고 나가보면 녹음 속 선생님, 학생들과 대화하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아주 중요한 사실을 또 한 가지 알아냈는데, 엄마는 작은 칭찬도 아주 크게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타고난 목소리가 예쁘다는 말을 듣고 온 날, 엄마는 나에게 넌지시 자랑했다.
나는 속으로 선생님께서 노래 실력이 부족한 학생에게도 영업을 아주 잘하신다고 생각했지만, 약간 들떠 보이는 엄마의 모습이 좋아서 "맞아, 엄마 목소리 예쁘지"라고 맞장구쳤다.
그러자 엄마는 처음 듣는 소리인 양 "그래?"라며 샐쭉 웃어 보였다.
성실한 새침데기의 모습이었다.
칭찬의 의도나 민요와 가창력 사이의 상관관계는 여전히 미스터리지만, 노래를 배우는 일이 엄마에게 큰 활력이 되었음은 분명했다.
매주 한 시간 남짓 걸리는 노래 교실로 향하는 엄마의 한가로운 외출이 좋았다.
집에서 가만히 앉아있질 못하던 엄마가 방문을 닫고 들어가 휴대폰 볼륨을 티비 소리보다 높여놓고 노래를 부르는 게으름이 좋았다.
꽤 많이 배우고 나서 '칠선녀 축제'의 무대까지 오르는 엄마의 용기는 눈물이 날 정도로 좋았다.
엄마는 스마트폰이 싫었던 것이 아니라, 거실에 모여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가족의 모습이 싫었던 것이다.
엄마는 소리 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는 카카오톡이 재미없던 것이다.
몸짓으로 박자를 타며 목소리를 높이는 노래가 더욱 재밌었을 뿐이다.
엄마는 늘 '송 씨'로서 즐거운 일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엄마의 늦바람은 뒤늦게 분 바람이 아니라, 느리게 불던 바람이었다.
늦바람은 드고 나는 갑작스러운 것이지만 느린 바람은 꾸준히 불던 바람으로, 타고 오는 것이다.
'전국 노래자랑'과 '가요무대'를 챙겨 보며 흥얼거리던 엄마의 습관은 부지런하고 느린 바람이 깎아 놓은 무늬같은 것이었다.
느린 바람에 잔잔히 살물결을 남기던 배를 나의 속력으로 보고 멈춰있다고 생각했었다.
정작 나는 노래방에서 크고 자라면서도 남진을 좋아하는 엄마가 당연히 그의 노래를 잘 부르고 싶을 것이라는 생각까진 미치지 못했다.
휘파람을 불기 위해서 적당한 산들바람이 필요했겠지만, 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동안은 예기치 못한 돌풍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는 늘 TV 속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도 박자를 느리게 불러 돌림노래를 만들곤 했는데, 그마저도 엄마의 속력이었으리라.
성실히 배움을 즐기는 학생으로서 엄마는 반짝반짝해서 나의 학창 시절이 부끄러워질 정도다.
앞으로 엄마의 늦바람이 어떤 분야든 간에 1호 팬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하고 싶은 걸 하고, 또 매번 실력이 좋아지는 엄마의 모습이 얼마나 멋있는 것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대뜸 엄마가 락큰롤을 외쳐도 옆에서 함께 머리를 흔들어주는 팬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