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ot Like Love, 2005
Oliver Martin: Let it go, smile. You're with me.
전남친을 레스토랑에서 마주친다. 그런데 전남친이 내 친구와 데이트를 하던 중이었다.
쿨한 척했지만, 에밀리는 도저히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다. 올리버와 어디로든 떠나기로 하지만, 드라이브는 화를 식혀주는 게 아니라, 표출하는 수단이 될 뿐이다.
옆에서 에밀리의 화를 들어주던 올리버는 "잊어버려. 웃어봐. 나랑 있잖아"라며 에밀리를 웃기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표정들을 보여준다.
이 둘은 서로에게 사랑을 말한 적이 없다. 아주 오랜만의 세 번째 만남일 뿐이다.
영화의 한글 제목처럼 '우리 사랑일까?'를 고민하기만 한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들은 사랑이 아닐 리 없다. 함께 있는 순간에 무엇이든 잊고서 웃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해주고 싶은 상대가 있다면 사랑 고백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사랑은 이미 시작되었다.
사랑을 하는 나는 아주 유치해진다.
내가 원래 유치해서 그런 건지, 유치한 사람을 사랑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정말 유치해서 못 들어줄 정도로 유치해진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며칠 전 남자 친구와 함께 따릉이를 탔다. 나는 자전거 타는 것을 매우 좋아하고, 그날따라 햇빛은 따뜻하고 바람은 시원했으며, 레드 카펫 같던 자전거 도로 양 옆으로는 나무가 손을 흔들고 한강의 푸른빛이 길을 밝혔다. 그리고 내 등 뒤엔 남자 친구가 함께 달리고 있다.
청춘 드라마였다면 배경 음악은 장범준이 좋을 것 같다. 장범준이 기타를 디리링 치며 "봄바람은 휘날리고~ 네 샴푸 향을 느끼고~ 벚꽃 거리든 건대 호수든 같이 걸어요~"라는 가사로 괜히 옆에 있는 연인에게 마음을 고백할 것이다.
이런 낭만적인 순간을 만끽하는데, 마침 다리 너머에 작지만 만개한 보라색 꽃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도심에서 보기 드문 보랏빛이어서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자전거 안장에서 엉덩이를 들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모습을 도저히 나만 볼 수 없어 뒤에 날 따라오고 있는 사람에게 "저것 봐!"라고 외쳤다.
드라마였으면 남자 주인공이 바람을 맞으며 환하게 웃는 얼굴이 화면 가득 잡혔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의 그는
"너 지금 엉덩이 들고 방구 뀌었지? 으이구, 너무 티 난다~"
라고 말을 했다.
노래 부르던 장범준은 온데간데없고, 이 아름다운 상황에서 방귀 얘기를 하는 남자 친구만 남아있었다.
꽃들도 고개를 못 들 그 유치함에 질색하면서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순 없었다.
다른 자전거들이 쌩쌩 지나가고 있었기에 도저히 브레이크를 잡을 순 없었지만 배꼽 잡고 웃느라 속력이 느려졌다. 남자 친구는 그런 나를 앞지르며 "방구쟁이" 하고 쐐기를 박았다.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는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눈부셨는데, 겨우 들썩이는 내 엉덩이만 볼 수 있지? 그 엉덩이를 보고 방귀를 뀌었다고 생각하다니. 혹시 몰라 말하자면, 절대 뀌지 않았다. 억울함에 그런 짓은 오빠나 하는 거라며 받아쳐봤지만, 이 상황에 변명을 해야 하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 더 거들지는 않았다.
여기서 멈춰 줄 그가 아니었다. 이 일은 하루 종일 놀림거리가 되었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던 중 놀이터에서 그네를 발견했다. 요즘 놀이터에는 쇠 냄새나는 그네들이 잘 없었다. 반가운 마음에 그네에 대한 배려는 잊은 채 한껏 무거운 몸을 맡기고 공중을 휘저었다.
그러다 내 옆 사람이 "오방구, 이제 가자"라며 유치한 시동을 걸었다. 놀이터와 제법 어울리는 말이지만, 말하는 사람의 파릇한 수염 자국과는 도통 어울리지 않았다.
무시하고 싶었지만, 지고는 못 산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유치함엔 유치함이다.
"그래, 박설사! 가자!!"
내가 내린 결단은 방귀를 이기는 건 설사라는 것이었다. 방귀보다 강력하고 치욕스러운 것. 난 그것을 찾아냈다.
우리 둘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박장대소를 해야 했다. 걸음을 들어 올릴 힘조차 웃기 위해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오방구 너무 유치해", "박설사 진짜 유치하다"라는 말들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이 유치한 순간이 바로 사랑이 피어나는 순간이라고 느꼈다.
나를 '오방구'라 부르는 저 사람에게 '박설사'라고 되받아칠 때,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는구나' 하는 로맨틱함을 느껴버렸다. 말도 안 되는 대화를 정 떨어질 새도 없이 주거니 받거니 이어나가는 시시콜콜함이 내게는 사랑스러웠다.
어느 나이나 사랑엔 장사 없고, 어느 사랑에나 나이는 힘이 없다.
방귀와 똥 얘기가 웃긴 나이는 지났지만, 그런 얘기에도 웃어줄 사랑은 있었다.
미국 코넬 대학 하잔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사랑의 유효기간은 900일이다. 사랑에 빠지면 뇌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 '러브 칵테일'이 900일이면 바닥을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방귀 사건의 날은 함께 한 지 1900일을 막 지나치던 때였다. 사랑의 유효기간인 900일이 끝나고도, 곰이 사람이 된다는 1000일마저도 지나갔다.
그렇다면 내가 느낀 사랑의 순간은 착각이었던 걸까? 그 답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뇌는 사랑의 호르몬이 바닥을 드러내면, 유치함 호르몬을 내뿜어 사랑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상큼하게 톡 쏘는 '러브 칵테일' 말고, 숙성될 대로 숙성된 '러브 막걸리' 쯤 되려나.
조금 더 로맨틱하고 귀여운 예시였다면 좋았겠지만, 나의 사랑이 이렇게나 유치한 걸 어쩌겠나.
아무 걱정 없어 보이는 웃음을 짓게 만드는 유치함이 나에겐 숙성된 사랑의 모습인 듯하다.
나는 오늘도 박설사에게 '뿌지직'이라고 인사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