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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문아 Jul 29. 2022

돌길 위 새순 한 풀 같은 유년의 기억

room 초록.

  내 유년시절에도 이런 새싹 같은 기억들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면 책 '아홉 살 일기'처럼 고요히 미소 짓게 되는 소중한 추억들이 된 새싹들이 수도 없이 많다.



      선택적 함구증을 앓던 어린 시절, 내 마음속 방은 캄캄한 동굴 같은 공간이었다. 까맣고 무거운 돌 문을 밀어 열고 들어가면, 너무나 조용하여 내 숨소리까지 진동하는 것 같은 칠흑 같은 공백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학교에서 선생님, 친구들에게 '응', '아니'조차 못하는 아이였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화장실 가고 싶어요.'를 선생님께 말하지 못해 바지에 실수를 해버리는 일도 잦았다. 초등학교 6년 내내 친구라고 부를만한 아이가 없었으며, 수학여행이나 소풍에서 어떻게 혼자 잘 있는지 고민하는 게 내 최고의 골칫덩어리였다.


  

      철이 들기 전 아이들은 '악함'에 조금 더 가깝게 마련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한없이 약자로 보이는 나는 쉽게 공격의 대상이 되곤 했다. 급식당번이 된 아이가 나에게 밥을 반 숟가락 정도만 퍼준다거나, 필통에서 펜을 마구 꺼내가 놓고 돌려주지 않는다거나, 선생님이 보지 않을 때 몰래 내 배를 때린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등교는 고통이 되었고,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물어뜯거나 손가락을 꼼지락 하는 것이 버릇이 되어버렸다.(그 버릇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아직 마음이 말랑말랑할 시기일 초등학생 아이에게는 처절한 싸움이었고, 아무도 없는 동굴에서 끊임없이 돌 벽에 몸을 부딪히며 사는 기분이었다.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은 없었고, 내 자존감은 더 바닥으로 곤두박치고 있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초등학교 때 떠올려보라고 하면 좋은 기억보다 좋지 않은 기억이 더 많다. 요새도 종종 본가에 갈 때마다 집 창문 밖 한 귀퉁이에 보이는 내 모교가 참 보기 싫을 때가 많다. 엄마는 요즘도 종종 웃으며 농담하듯 이렇게 말하신다.



"너 초등학생 때는 진짜 바본 줄 알았는데."



'그러게, 근데 이렇게 잘 살 줄 어떻게 알았어? 아마 동창 중에 내가 제일 잘났을걸?'하고 괜히 너스레를 떨며 웃어넘기지만, 한편으로는 참 뿌듯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서늘해지기도 한다. 그때의 내가 영영 그 동굴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지금은 어찌 되었을까 싶은 마음에서다. 그리고 또 문득 생각해본다. 내가 그 암흑을 깨고 나올 수 있었던 건 어떤 것 때문이었을까.









           조그마한 자취방 창문에는 암막커튼 쳐져있는데, 제대로만 쳐놓으면 한낮에도 한밤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어쩌다 커튼 사이로 아주 조금의 틈이라도 벌어지면 금세 싱싱한 햇살이 쨍하게 내려 꽂히곤 한다. 꼭 돌바닥에서 꾸역꾸역 머리를 비집고 올라오는 새싹 같은 햇살이다. 내 유년시절에도 이런 새싹 같은 기억들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면 책 '아홉 살 일기'처럼 고요히 미소 짓게 되는 소중한 추억들이 된 새싹들이 수도 없이 많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나는 그때 같은 반인 한 남자아이를 좋아하고 있었는데, 꼭 나처럼 숫기가 없고 말수가 적은 아이였다. 내가 어릴 때는 종종 '마니또'를  서로 정하는 이벤트를 하곤 했는데, 내가 챙겨줘야 할 아이로 놀랍게도 그 아이가 걸렸다. 뭘 선물해줘야 할지 고민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아이가 걸렸다는 사실에 내심 기뻤던 기억이 난다. 기쁜 마음 한에는 그 아이가 내가 마니또인걸 싫어하지는 않을지 -하는 걱정 때문에 그 아이에게 선물을 주지 못한 채로, 날짜만 하루하루 지나가고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내 책상 서랍에 조심스럽게 네모로 접혀있는 핑크색 빼빼로 상자가 하나 들어있었다. 아, 내 마니또구나. 누구일까, 조심스럽게 추측하는 와중에 두리번거리던 나와 그 아이가 눈이 마주쳤다. 그 아이는 무심한 듯 휙, 고개를 돌려버렸지만, 난 혹시나- 하는 마음과 실망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교차하여 괜히 그 아이를 흘깃흘깃 쳐다봤랬다.


대망의 마니또 발표날, 나는 결국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채 어물거리며 그 아이를 가리켰고, 그 아이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으며 벌떡 일어났다.


"넌 누구의 마니또였니?"


선생님의 부드러운 질문에 그 아이는 서너 번 더 뒷머리를 긁적거리더니, 이내 뒤를 휙 돌아 바로 뒤에 앉아있는 나를 가리켰다. 검지 손가락으로 휙- 하고 가리키더니 이내 얼굴이 벌게져서 자리에 빨려 들어가듯 쑥 앉아버렸다. 오래된 기억인데도, 그 아이의 손짓과 벌게진 얼굴, 머쓱해하는 표정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또 어느 날은 눈이 운동장까지 가득 채운 겨울이었다. 얀 눈이 운동장을 뒤덮어 꼭 인절미 빙수처럼 보이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들뜬 강아지처럼 담임선생님을 졸랐고, 기어이 수업시간에 밖으로 나가 맨손으로 눈을 만지기 시작했다. 눈을 뭉쳐서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 눈을 마구잡이로 집어 서로 던지면서 노는 아이. 그 사이에서 나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쪼그려 앉아 혼자 쌓인 눈을 꾹꾹 눌러보고 있었다.



그때,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는 내 머리와 어깨 위로 차가운 무엇인가가 날아와 흩어졌다. 난 으레 그랬듯이 남자애들의 짓궂은 장난이라고 생각했고, '벙어리야.', '말해봐 말!'이라는 놀림이 날아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아 보이는 척, 후드티 때문에 눈치채지 못한 척하며 아랫입술을 계속 질근질근 깨물고만 있었다.



퍽, 하고 눈이 한번 더 날아왔다.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돌아보니 내 마니또인 아이가 또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민망하고 어색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리는 멀뚱히 서 있었다. 그 아이인지 몰랐던 나는 적잖이 놀랐고, 없는 용기 있는 용기를 다 끄집어내서 내 발밑에 있던 눈을 뭉쳐 던졌다. 다른 평범한 아이들처럼,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머리를 잡아당기고, 그걸 당한 여자아이가 눈을 흘기며 쫓아가는 그런 것처럼. 그러면서도 둘은 서로가 좋아 웃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외에도 새싹들은 몇 가지 더 있다. 그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던 내가 그 아이와 짝꿍을 할 때는 몇 마디 대화를 했던 날. 책상과 책상 사이에 금을 그어놓고는 은근히 넘어와주기를 바랐던 일. 우연히 3년 전에도 같은 반이었음을 알게 된 후 집으로 달려가 앨범을 뒤져 그 아이의 모습을 찾아냈던 일...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조금 더 풋풋하고 귀여운 에피소드가 있다거나, 그 아이를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된다거나 하는 드라마틱한 일이 있었겠지만, 애석하게도 그 아이와 나는 그 이후로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 이후로도 나는 꾸준히 반이 바뀔 때마다 남자애 중 한 명을 좋아했고, 중학생 때는 아이돌에 미쳤으며, 고등학생 때는 물리선생님을 흠모하며 거의 그 아이를 잊다시피 지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기 위해 끄집어낸 유년시절의 기억에는 그때의 사진이 함께 끼어져 있던 것이다. 그때 내 기억에 찍힌 그 필름이 나는 아직도 감사하다. 그런 순간순간들이 없었다면 영원히 잿빛이었을 내 유년시절이, 그래도 조금은 좁쌀만큼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꼭 컴컴한 동굴 벽에 맺힌 이슬이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반짝거리듯이 말이다.







나처럼 힘든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은 그때의 기억을 찬찬히 둘러보았으면 한다. 소소해도 좋다. 남들이 보기에 형편없어 보여도 좋다. 나처럼 서로 좋아하면서도 아무런 말도 못 건넨 채, '몸으로 말해요' 게임을 하듯 몸짓만 소심하게 웅얼거리던 기억이어도 좋다. 한 번쯤, 내 어두웠던 기억을 밝혀주는 일을 추억해내는 것만으로도, 적어도 그 시절이 마냥 힘든 기억으로만 남아있지 않도록 해주는 길이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글을 쓰는 지금의 나처럼, 귀여운 구석이 있던 어린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웃어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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