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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문아 Aug 02. 2022

'벙어리'라 불리던 나의 깜깜한 터널, 사춘기

room 검정.

     나는 칠흑 같은 어둠이 문을 비집고 튀어나와 모두를 집어삼킬 것 같은 깜깜한 방에 들어가, 조용히 문을 걸어 잠갔다.

내가 있었던 방은 자그마한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지만, 난 공기가 스치는 소리조차 듣기 겁이나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나는 어둠을 극도로 무서워한다. 특히 문 닫힌 방에서의 암흑은 나를 가장 공포스럽게 만든다. 내 시야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 내 정면과 뒤통수로 어떠한 것이 다가와도 전혀 볼 수 없다는 두려움. 오로지 청각과 촉각에 의지하여 나약해진 시각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패배감.  



그래서 종종 사람들은 자신에게 가장 힘든 시기를, 암흑기라고 한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아서 한 발짝도 나아가기 어려운 깜깜한 방. 앞으로 계속 걸어 나가면 벽에 부딪힐지, 아니면 열어젖혀버릴 수 있는 문을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시기. 나에게는 흔히 말하는 '사춘기' 시절, 즉 중학생 때와 고등학생 시절이 그런 시기였다고 할 수 있겠다.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 격동의 시기라고 하는 사춘기. 하지만 나의 사춘기는 조금 달랐다. 나는 칠흑 같은 어둠이 문을 비집고 튀어나와 모두를 집어삼킬 것 같은 깜깜한 방에 들어가, 조용히 문을 걸어 잠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있었던 방은 자그마한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지만, 난 공기가 스치는 소리조차 듣기 겁이나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그리고, 그냥 그 방 속을 하염없이 뚜벅뚜벅 걸었다. 내가 앞으로 걷는지 뒤로 걷는지, 내가 벽을 따라 걷고 있는지, 방의 정중앙으로 가고 있는지, 혹은 대각선으로 가고 있는지 아무것도 예측하지 못한 채로.






초등학생 때 '벙어리'가 별명이었던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고서도 반에 적응하지 못했다. 같은 초등학교 출신 아이를 마주치기 싫어 일부러 집에서 가장 먼 중학교를 택했지만, 갑자기 성격을 바꾸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입학하자마자 짝꿍이 된 쾌활하고 착한 갈색 단발머리 친구(그 아이는 중학교 졸업 즈음에 일진 무리에 끼었다.)가 나에게 종종 말을 걸어주었을 뿐, 여전히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바보였다. 한 때는 쉬는 시간에 혼자 앉아있는 나를 유심히 지켜보던 가정선생님께서, 나를 조용히 상담실로 불러 이렇게 여쭤보신 적이 있었다.




"문아야, 친구들이랑 어울리기 어렵니?"


"..."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왜인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울멍울멍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만 푹 숙인 채 끄덕거리는 나에게, 선생님은 조용히 휴지를 건넸다. 그러고서는 나를 탓하지 않으셨다. '네가 먼저 다가가 보지 그러니.', '친구들이 좋아하는 드라마나 아이돌을 좀 연구해보렴.' 등의 말씀은 일절 하지 않으시고, 그저 내 손을 꼭 잡으시면서 '내가 너를 매우 걱정하고 있단다.', '힘들면 언제든 선생님께 털어놓으렴.'이라고 말하는 듯한 따뜻한 눈빛을 건넸다.

잠깐 이야기가 샛길로 빠진 것 같긴 하지만, 그분은 가물기만 한 내 학창 시절에 한 줄기 단비 같은 분인지라 꼭 이곳에 담고 싶었다. 내가 어른이 되어 나와 같은 내향적인 아이를 만난다면, 순간적으로  그분의 표정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따스하고 존경받을 만한 분이셨다. 어디서든 잘 지내고 계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그럼 다시, 내 어두운 사춘기로 이야기를 돌려보겠다.




  


 중학교 생활에서 '약자'로 보이는 건 더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초등학생 때의 아이들도 못돼먹었지만, 중학생 때 아이들은 차원이 달랐다. 좀 세 보이는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뭉치기 시작했고, 소위 '일진'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언어로 평범한 친구들을 무시했고, 언어와 주먹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의 아이들이 커피우유 같은 느낌이라면, 중학생 때는 샷을 3번 추가한 라떼가 돼버린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때의 나는 이 정글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으로 '모범생'을 택했다.




입학 후 본 첫 중간고사에서 우연찮게도 수학에서 만점을 맞게 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날 유독 날 아니꼽게 보던 우리 반 일진 여자애 하나가 그다음 시험 때부터 꼬박꼬박 내 시험지를 가져갔던 것이다. 수학 시험이 끝나기 무섭게 내 시험지를 휙 가져가더니, 내 시험지와 자기 시험지를 비교하며 답을 맞봤다.  줄이 죽죽 그어진 시험지를 털레털레 들고 그녀는 미간에 주름을 시험지만큼 그으며 '이건 왜 이거야?' 하고 시비조로 물었지만, 늘 정답은 내가 맞았었다. 신경질적으로 시험지를 돌려주는 그녀의 짜증스러운 표정에서, 처음으로 묘하게 꾸물거리는 승리감과 우월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말을 당당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얼굴이 유독 예뻐서 그들이 우러러볼 만큼의 외모도 아니고, 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 유일한 길은 공부 잘하는 '모범생', 이왕 '반 1등'인 아이가 되는 길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아이들은 절대 범접할 수 없는, 그 아이들과 완전히 분리된 인생을 걸을 수 있는 길은 그 길 뿐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공부를 해서 성적이 잘 나오면 부모님도 좋아하시고, 아이들 또한 나를 더 이상 '벙어리'라고 무시하지 못하고, 선생님들까지 나를 하염없이 예뻐하시니, 일석삼조였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다. 마음속 가장 구석에 있는 어두운 방 한켠에 나를 가두고, 앞만 보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데스노트를 손에 쥔 라이토처럼 악마 같은 희열에 불타 펜을 쥐고 미친 듯이 수학의 정석을 파댄 것은 아니다. 그저 학교생활을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하기 위해 시작한 공부는, 우리나라의 흔한 중학생 고등학생들처럼 늘 관성처럼 으레 해야 되는 것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고등학생 때는 그 위에 얄팍한 '꿈'이라는 것이 부여되면서 더 막중한 짐으로 변했다. 마음속 방의 조도는 더욱더 어두워지고, '긴 터널 끝에 빛이 올 거야!', '넌 할 수 있어!' 따위의 EBS 수능특강 표지에 적힌 문구를 맹신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날들이었다.






   

       무시를 당하지 않으면, 학교 생활에 잘 적응을 하고 친구를 사귀면 다 끝일 것 같았지만, 당연하게도 삶은 그렇게 녹록지 못하다.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면서부터 나와 성격이 비슷한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하여, 고등학생 때는 크게 무리 없이 반 친구들과 두루두루 어울리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공부는 힘들고 마음은 무거웠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나의 공부와 성적은 부모님의 기대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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