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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문아 Oct 07. 2022

"어머니, 문아가 말을 안해요."

room 투명.

그 시절의 나는 간단한 말 한마디조차 남들 앞에서 쉽게 내뱉지 못했다. 내가 어떤 말을 뱉고, 그 말을 듣는 사람이 날 쳐다보면, 그말을 뱉는 내가 그들의 눈에 얼마나 우스워보일지, 얼마나 형편없어 보일지를 끊임없이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꼭 온 사방이 투명한 유리벽인 방에 갇혀 발가벗겨진 채로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어머니, 학교에서 문아가 말을 안 해요."


수화기를 들고 있는 엄마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난 꼭 물병을 떨어뜨려 물을 바닥에 엎었을 때처럼 얌전히 손을 모으고 엄마의 등 뒤 쇼파에 앉아있었다. 정적을 깨는 엄마의 한숨소리. 꼭 억겁처럼 느껴지던 시간.


"문아가 학교에서 말을 안 해요, 쉬는시간에도 가만히 앉아만 있고..."


꼭 어디로든 숨고 싶었다. 엄마는 한숨을 한 번 더 푹 쉬고, 수화기를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금세 또 수화기를 집어들고는 다급하게 숫자가 써진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그 날은 나에게 잊기 어려운 날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 시절 담임선생님은, 지금껏 만났던 선생님들 중에 가장 젊은 선생님이었고 아이들을 챙기는 열정이 넘치던 사람이었다. 그 날도 역시 열정이 넘쳤나보다. 늘 학교에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쉬는 시간에도 조용히 혼자 앉아 벽을 쳐다보며 멍이나 때리던 나를 눈여겨본 것인지, 대뜸 우리집으로 상담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엄마도 예상은 해왔겠지만, 제3자를 통해, 그것도 담임선생님의 입을 통해 들려오는 당신의 막내딸의 상태는 가히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우리 아이가 말을 안한다. 친구가 없다. 학교에서 늘 혼자 있다.' 그것만큼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또 어디있겠는가.



엄마는 전화를 끊자마자 리반 반장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반장이었던 친구는 예쁘고 귀여운 얼굴에, 성격까지 좋아 늘 남자아이로부터 흠모의 대상이 되었던 아이였다. 반대편에서 전화를 받은 그 친구의 엄마는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었다.



"네? 문아가 말을 안한다구요? 네...제가 OO이에게 물어볼게요. 아...OO이가 그러는데, 문아가 친구가 잘 없는 것 같다네요. 말도 잘 안하고. 쉬는시간에도 그냥 혼자 앉아있대요."



엄마의 표정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걱정과 불안, 분노가 섞인 얼굴.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을 압도할 정도의 수치심. 그 반장인 아이는 수화기 너머에서 "응? 몰라? 친구없어~" 하고 해맑게 말했다고 했다. 그 해맑은 목소리에 엄마의 심장은 바닥까지 쿵, 하고 떨어져내렸다고 했다. 또 그 말을 엄마에게 전하면서, 왜인지 모르게 우월감에 쩐듯한 그 엄마의 목소리. 부끄러웠다고 했다. 너무나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다고 했다.



엄마는 나를 앉혀놓고 다그쳤다. 정말로 혼자 있는게 맞는지, 정말로 한마디도 하지 않는게 맞는지 몇번이고 거듭 물어보았다. 나는 꼭 취조실에 갇혀 짜장면 한 그릇도 먹지못하고 버티는 죄수가 된 기분이었다. 그 때의 나는 순순히 나의 죄를 자백했지만, 어쩐지 그것이 엄마의 마음을 더 상하게 한 것 같았다. 엄마의 한숨소리가 귓등을 유난히 세게 때렸다.


마음속에 엄마와 똑같은 수치심 자리잡았다. 난 꼭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죄수가 된 느낌이었다.






엄마는 그 시절, 나에게 몇번을 물었다.

"왜 말을 안하니?"



사실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버젓이 하는 지금까지 '왜' 그랬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하겠다. 어쩌면 그날로부터 너무 멀어진 지금은, 그 때의 마음을 거의 다 까먹어버려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와 비슷한 어린시절을 겪었거나 지금 겪고있는 사람들이 꽤 있고, 그것이 어떤 불안 장애의 한 종류로 명이 된다는 것쯤은 알수 있게 되었다.(오은영 선생님의 도움이 정말로 컸다.) 난 '선택적 함구증'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선택적 함구증: 특정 상황에서 선택적으로 말을하지 못하는 증상으로, 불안장애의 한 종류




나는 유난히 부끄러워하는 아이였다. 말을 못하는 애기때부터 낯을 심하게 가렸고, 눈에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금세 빼액-하고 울어제꼈다고 했다. 집이 아닌 곳에 가면 유난히 불안해하는게 눈에 보였고, 그때부터 타인을 의식하는 경향이 심했다고 했다.



학교를 들어가고, 친구들과 친해지려면 '상호작용'이 필수인데, 나에게는 그것이 너무 어려웠다. 나에 비해 다른 친구들은 모두 잘나보였고, (얼굴이 이쁘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나보다 말을 조리있게 하거나, 그 어떠한 면에서든 모두가 나보다 잘났다고 생각했다.) 그에 비해 나의 존재는 너무나 초라해보였다. 나는 단순한 대화도 매끄럽게 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과의 모든 대화가, 꼭 직장에서 부장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이 느껴졌다. 간단한 말한마디에도 내 머릿속은 또 열심히 불안 속을 내달렸다.


그 시절의 나는 간단한 말 한마디조차 남들 앞에서 쉽게 내뱉지 못했다. 내가 어떤 말을 뱉고, 그 말을 듣는 사람이 날 쳐다보면, 그말을 뱉는 내가 그들의 눈에 얼마나 우스워보일지, 얼마나 형편없어 보일지를 끊임없이 걱정했기 때문이다.



"문아야, 밥 먹었어?"

"응"

이라고 했을 때, 난 이런 생각들을 했다.



'내가 너무 짧게 말해서 얘가 기분이 상하면 어떡하지?'

'내 표정이 순간 너무 안좋지 않았을까? 웃으면서 말할 걸 그랬나?'

'내가 너무 작게 말해서 못 들었으면 어떡하지? 뒤에 무슨 말을 더 붙여야 했나?'

'그냥 내 모습이 너무 찐따같은 거 아닐까?'



그런 고민들은 단순한 말 한마디도 쉽게 내뱉을 수 없게 허들을 한개씩 놓았고, 어느 순간 견고한 가림막이 되어 있었다.




그때의 나는, 꼭 온 사방이 투명한 유리벽인 방에 갇혀 발가벗겨진 채로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며,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비웃는 느낌이었다. 수치심이 들었다.


주변 가족들, 선생님의 반응. 왜 말을 하지 않냐고 다그치는 말들. 그런 것들이 나의 수치심을 오히려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겨우 투명한 방 구석에 숨어 숨을 고르고 있던 나의 머리채를 휘어잡아서, '말해! 말해보라고!' 하고 방 정중앙에 끌어다놓은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구경했다. 내 입이 열리고, 무슨말이 나올지 궁금해서 내 앞에서 먹이를 흔들어대며 내 입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보라는 건지. 전혀 말을 하지 않던 애가 갑자기 다가가서 '안녕? 친구야? 오늘 날씨가 정말 좋구나! 좋은 하루 보내!' 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오히려 날 이상한 아이 취급할 것이 뻔했다. 내가 이 투명한 방에서 우물쭈물 뭐라도 말을 뱉으면, 그들은 '좋은 구경 했다-'는 듯이 파하하 웃고 뿔뿔이 흩어질 게 뻔했다. 내가 외로운 건 달라질 일이 없었다.






생각보다, 해결책은 단순했다. '다그침'이 아닌, '떠나기'였다.



선택적 함구증을 앓은 아이에게, '다그침'은 곧 수치심으로 변환된다. 가뜩이나 불안감이 크고 수치심이 남들보다 심한 아이들에게 그 수치심을 맥스로 끌어올리는 건 오히려 독이다. 난 나중에 성인이 되고 난후, 어떻게 성격이 달라졌냐는 엄마의 말에, 단순하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난 우리 초등학교가 진짜 싫었어. 반 정원도 적고, 4개 반밖에 없어서 어차피 봤던 애들을 6년간 계속 또 만나잖아. 그럼 그 친구들이 갑자기 내가 새학기가 됐다고 해서 말을 막 걸고 그러면, 얼마나 당황하겠어?오히려 비웃었을걸?


그래서 일부러 먼 중학교를 간거야. 같은 초등학교 동창이 없는 곳! 아무도 나를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처음부터 다시할 수 있을 것 같더라구."



그랬다. 난 오히려 정말로, 그렇게 그 방을 떠나오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적어도 지옥같은 수치심에 더는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고, 먹이를 들고 날 지켜보는 아이들의 눈빛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무도 날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나 자신을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구경거리로 여기지 않는 삶을 사는 것. 능력치가 들쭉날쭉 성장해 망해버린 게임 캐릭터를 다시 리셋시키듯, 모든 것이 재부팅되는 느낌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렇게 난 6년간의 투명감옥 생활을 겨우 끝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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