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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문아 Nov 03. 2022

솜사탕 같은 알량한 성취감이라도 좋으니

room 연분홍.

 어릴 적 놀이공원에 가면, 겁 많고 소심한 나는 늘 놀이기구에는 관심이 없었다. 늘 내 시선을 사로잡는 건 풍선처럼 허옇게 부풀어있는 솜사탕들이었다. '제발 날 사줘-' 하고 호소하는 듯이 가지런히 막대기에 박혀 나를 올려다보는 그 솜사탕들. 당장이라도 손에 움켜쥐고 한 입 와앙-하고 베어 물면, 온몸을 짜릿하게 깨우는 단 맛이 부드럽게 울려 퍼질 것 같은 그런 자태.

 


엄마를 졸라서 기어이 연분홍색 솜사탕 하나를 얻으면, 그것 하나에 꼭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했더랬다. 은은히 풍겨오는 단내에 이끌 입을 갖다 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춰버리는 그것이, 난 참 좋았었다. 좀 더 오래 가지고 놀고 싶어 천천히 먹다 보면, 어느새 햇빛과 습기에 줄줄 녹아 그저 설탕 덩어리로 돌아가려는 그것이 손에 끈적거리며 붙어오기 시작했다. 결국 엄마의


"녹는다! 빨리 먹어!"


하는 잔소리를 듣고서야, 남은 것들까지 싹 입에 집어넣어 버린다. 꼭 지난밤 흐릿하게 꿨던 흑백 꿈처럼 예쁜 연분홍색은 온데간데없고, 나무 막대기에 끈적하게 달라붙은 진한 분홍색 설탕 덩어리만 얼기설기 얽혀있다. 그럼 난 또 그것이 참 허무하곤 했다.





삶에서 '권태로움'은 때때로 참 쉽게 찾아오곤 한다. 회사생활에서도, 대인관계에서도. 사무실 한편에 놓인 작은 책상에 앉아 그날그날 나에게 떨어진 업무들을 다 처리하고 난 뒤에는 이유모를 허무함이 쏟아지는 날들이 있었다. 내가 이런 일들을 했다고 해서 누가 알아줄지, 나에게 과연 응당한 보상이 들어올지에 대해 생각하면 늘 머리가 아득했다.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과 실컷 수다를 떨고 난 뒤, 친해졌다는 뿌듯함을 느끼면서도 그 후에 아무 연락도 오지 않는 핸드폰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묘했다. 마음이 어두운 날에 불러내어 털어놓을 사람 한 명 없는 외로움이 사무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루를 뿌듯하게 살아도, 그뿐이었다. 솜사탕 같다고 생각했다. 손에 쥐고 허겁지겁 먹다가 5분 만에 사라져 버리는 그 달콤한 성취감이.




얼마 전 좋아하는 가수의 단독 콘서트를 다 후, 그 권태로움은 더 극에 달했다. 손에 쥔 모든 것들이 줄줄 녹아내린 기분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3년 만에 여는 공연이었다. 꽤나 거금이었지만, 3년 만에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꺼이 콘서트 표를 예매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으로 향했다. 3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공연장은 팬들의 열기로 꽉 차있었으며, 같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방방 뛰며 그럭저럭 행복하게 지낸 3시간이었다. 정말 '그럭저럭'이었다. 그 정도의 기쁨과 그 정도의 달콤함일 뿐이었다. 전율이 흐르는 듯한 감동이나 심장 저 끝까지 둥둥거리는 울림은 없었다. 먹어도 먹어도 굳건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녹지 않는 달콤함이 아니었다. 공연이 끝나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관객들 뒤꽁무니를 쫓아나가며, 피어오르는 진한 아쉬움을 지울 수 없던 기억이 난다.



공연 내내 무대 주인공 컨디션은 가히 최악이라고 볼만했다. 래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는 걱정될 정도로 계속 음이탈이 났고, 어느 부분은 부르지 못해서 관객석에 마이크를 넘겨주는 경우도 있었다. 장장 10년을 좋아한 '내 가수'의 노래실력이 최고라며 남자 친구 손까지 붙들고 찾아온 공연이건만, 난 그 붙든 손이 민망할 정도로 괜히 남자친구에게까지 면목이 없었다. 속상함에 눈물까지 핑 돌았다. 가슴벅차는 감동의 연속이었던 그의 공연장이, 3년 만에 음이탈이 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두 손을 그러쥐고 봐야 하는 가시방석으로 탈바꿈된 것이 너무도 속상했다.




3년 만에 줄줄 녹아내린 10년의 추억이, 유독 그날은 마음에 남아 오래 끈적거렸다.



그 공연을 보고 난 이후, 회사에서도 괜히 하는 일 없이 바쁘기만 한 나날들이 더 늘어났다. 다 먹은 솜사탕 막대기를 얼른 쓰레기통에 휙-하고 던져버리고 싶은데, 쓰레기통을 찾지 못할 만큼 바빠 계속 손에 쥐고 있는 꼴이었다. 더욱이 시기도 연말 즈음이겠다, 1년간 난 뭘 했는가-하는 후회까지 버무려져 난 더욱 길 잃은 생쥐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더 큰 일을 해내고 싶었다. 먹어도 먹어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그런 솜사탕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고 싶었다.

그러나 인생은 여전히 지루하고, 나는 여전히 권태롭기만 했다.






권태로움에 시달려 숨이 막힐 때마다 피난처처럼 도망가게 되는 곳이 생겼다. 에 근육을 만들겠답시고 찾아간 폴댄스 학원이 바로 그 피난처다. 솜사탕 운운하더니 갑자기 웬 폴댄스인가 싶지만, 이상하게도 난 그 작은 공간에서 새로운 인생을 배운다.



"너무 잘했어요!!!!!!!"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쇠창살처럼 내리찍혀진 폴대를 꼭 붙잡고 1시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강사님에게 배운 동작 하나를 어찌저찌 낑낑대며 해내면, 주변에서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강사님에게서 나오는 우아함 같은 건 온데간데없고, 그저 떨어지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에 가까운데도 말이다. 내 모습을 찍어놓은 영상을 보면 어설프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데, 강사님은 너무 행복한 얼굴로 폴짝폴짝 뛰어오며 하이파이브를 한다.



또 같이 수업을 들은 수강생들도 괜히 격려의 말을 한두 개씩 건넨다.


"너무 잘하시던데요?"



엉성하게 빙글빙글 거리면서 타도, 동작을 해냈다-는 것에 모두가 손을 모아 박수를 쳐준다. 꼭 동물의 숲에서 화석을 캐냈을 때, 별것도 아닌데 다 같이 박수를 쳐주는 이웃 동물친구들 같다는 느낌도 든다. 그럼 괜히, '와 내가 대단한 동작을 해냈나 보다-' 하는 착각이 머리를 스친다. 캐낸 화석을 당당하게 들어 보이는 동물의 숲 캐릭터처럼 이유 모를 뿌듯함이 온몸을 감싼다.



그리고 내 다음 타자가 또 빙글빙글 돌다 내려오면, 또다시 모두의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나도 그럴 때는 아끼지 않고 짝짝- 하고 박수를 쳐준다. 정말 잘하신다는 칭찬의 말도 덤으로 얹어준다. 그럼 또 강사님이 폴짝 뛰어와서, OO님 너무 잘하시는 거 아니에? 하고 너스레를 떤다.



그럴 때면 느낀다. 알량하게 녹아버리는 성취감이라도, 모두가 이렇게 잠시라도 알아주는 성취의 짜릿함이 이런 것이구나. 당장 다음날이면 근육통에 온 몸이 아리고, 같은 자세가 다음 주면 또다시 안될 확률이 매우 높지만, 그래도 당장 지금 이 순간 폴 위에서의 나의 성취를 모두가 축하해주는구나.



그래- 동물의 숲 이웃들처럼 살자. 1초 뒤면 주머니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3분 뒤면 상점에 팔아서 몇 원의 사소한 가치로 치환돼버리는 화석이라도 캤을 때의 잠깐의 뿌듯함을 만끽하자. 폴 위에서 어정쩡하게 만들어진 자세를 0.1초 유지하는 것이라도, 그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행복을 느끼자. 어쩌면 모두의 인생이 그러니까-



그래, 내가 큰일을 어떻게 해내냐. 그래, 오늘도 폴 위에서 우스꽝스러운 서커스를 해서 박수를 받았으니- 그걸로 만족하자.

오늘도 폴학원을 나서면서 그런 결심을 했다.



알량한 성취감이라도 좋으니, 그 솜사탕이라도 영원히 와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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