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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문아 Nov 16. 2022

내향인도 관심이 좋아

근데 이제 다정함을 곁들인.

나는 내향100% vs 외향 0% 인 찐내향인이다. 그리고 관종이다. 소심하고 낯을 심하게 가리면서도, 누군가가 내게 관심을 가져주면 그것이 꽤 싫지않다. 물론 5명 이상의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정도의 관심은 질색이다. 예컨대, 회사 회식자리에서 술에 거나하게 취하신 꼰대 부장님이  대뜸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 아, 백 대리는 왜 이렇게 조용하실까~? 어디 일어나서 건배사나 해보지!"


라고 하면, 쭈뼛쭈뼛 소주잔을 잡은 손을 파르르 떨며 일어난 내 벌개진 얼굴에 잠시 머무는 '나만 아니면 돼'하는 안도의 눈빛들은 절대 사절이다.


그저 옆자리에 앉은 다정한 상사가 조용히 안주를 챙겨주며 "회사일은 힘들지 않아요? 그래도 백 대리 일 잘하는 건 다 알고 있지." 하고 건네는 따뜻한 격려 정도면 만족이다. 정말 나는 딱 그정도의 관심만 필요하다.





사람들이 여럿 모이는 자리에서 나와 같은 내향인들은 존재감이 제로에 수렴하기 마련이다. 대화 주제가 끊임없이 바뀌고, 다들 배드민턴채를 들고 셔틀콕을 쫓아다니는 것 마냥 사람들 입과 입 사이로 끊임없이 말들이 치고박는 상황에서, 내향인들은 자주 입을 다문다. 여유롭게 순항중인 셔틀콕을 빼앗아 배드민턴채를 휘두를 힘도 없거니와, 내가 친 셔틀콕은 금세 바닥으로 고꾸라질 것을 알기에 함부로 나서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향인이 그런 상황을 썩 달가워하는 건 아니다. 사실 끼고 싶다. 신명나게 배드민턴채를 휘두르고 싶다. 나도 무슨 말만 꺼내면 주변에서 깔깔 배를 잡고 웃어대거나, 혹은 정말 통찰력이 대단하시다며 엄지를 추켜세워줬으면 좋겠다. 그러나 현실은 늘 방청객이다. 그저 리액션 웃음만 짓느라 입꼬리가 실신하기 일보직전이다.



최근에 가지게 된 독서모임도 마찬가지였다. 흔히들 생각하는 '분위기 메이커', 외향성을 온몸으로 내뿜는 한 명에 의해 모임 분위기가 주도되다시피 했다. 모임의 주제는 항상 그 분에게로 쏠렸고, 그 분이 무슨 말만 꺼내면 다들 손뼉을 부서져라 치며 웃기 바빴다. 거의 그 분 혼자 채를 들고 스쿼시를 하는 격에 가까웠다. 모임의 리더인 A는 어색한 모임 분위기에 한 줄기 빛이라도 만난듯, 분위기가 차분해질때마다 그 분에게 계속 '헬프미'의 눈빛을 쏘며 다시금 모임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덕분에 모임장소에는 내내 화기애애한 웃음이 끊이질 않았지만, 나는 배드민턴채를 부서질듯이 그러쥐고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대화꼬리를 잡지 않으면 한 마디도 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대화들이 끊임없이 머리에서 휘발되었다. 그렇게 모임이 스쳐지나가고, 단톡방에는 이런글이 달렸다.

 

"OO님 진짜 너무 웃겨요 ㅋㅋㅋㅋ ㅋ다음에 오늘 못한 얘기 들려주세요!ㅋㅋㅋㅋ"


나는 다음모임을 가기도 전에 말할 기회를 또 잃었다. 공허함이 몰려들었다. 독서모임이니 책에 대해서도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고, 내가 써온 글에 대해서도 피드백을 받고 싶었던 나는 그냥 방청객이 되어서 집에 들어왔다.







반면, 내가 좋아하는 ENTP B양은 '다정한 관심' 바로 그 자체이다. 향인들이 너무 좋고 멋져보인다는 그녀는, 정말이지 내향인들에게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가는 법을 찰떡같이 알고 있다. 여럿이 모인 상황에서 내가 말이 없는 것 같으면,


"문아님, 왜 이렇게 말이 없으세요?"

가 아닌,

"문아님, 저 문아님께 궁금한 게 있어요."

라고 묻는 식이다. 어머, 나에게 궁금한 게 있다니. 괜히 쑥스럽지만 '어서 물어보아요.'라는 듯 달뜬 얼굴은 감출 수가 없다.


그녀는 또, 신나게 수다를 떨다가도 어느순간 멈칫한다.


"혹시, 문아님 제 말에 기분 상하신 건 아니죠?"


내향인이 혹시나 기분이 상했는데 표현하지 못할까봐 중간중간 내 기분까지 살핀다. 정말 마음이 한없이 넓어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또 내향인을 찰떡같이 이해하고 있는 내 연인은, 본인의 지인을 소개시켜주는 자리에서도 늘 나를 먼저 살핀다. 내 의중을 물어보고, 내 기분을 챙기고, 내가 부담이 되지 않도록 어떻게든 안심시켜주려한다. 목소리가 작아 타인에게는 묻히기 십상인 내 말 하나하나에도 귀를 기울여준다. 때문에 한번씩은 아무말도 하지않아도 "뭐라고?"하며 나에게 몸을 기울이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럼 또 그것이 우습고도 고마워서 한동안 깔깔거린다.



따스하다. 혼자 있고 싶지않은데도 성격상 혼자 있어야하는 내향인을 쫓아와 자연스레 햇빛을 건네는 사람들의 관심은, 정말 한낮의 햇살보다 더 따스하고 곱다.






언젠가 남자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정말 소중하게 보관한 도자기가 있는데, 내 친구가 그걸 막 만져. 그러더니 다른 친구들도 나도 한번만 만져보자-하고 막 함부로 다뤄. 그럼 얼마나 짜증이 나겠어?"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나는 고급 도자기야.'라고 되뇌이며 지냈던 날이 있다. 내향인에게 따스하고도 행복한 관심 그대로를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고급도자기라서, 굳이 눈에 불을 켜고 채를 휘둘러야하는 모임은 자연스럽게 빠지게 되었다. 사실 오늘 모임을 빠지겠다고 선언했고, 도망가는 모양새여도 괜히 앓던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했다.


난 도망가는 게 아니다. 난 도자기니까.

 



세상 모든 내향인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도자기일테니 말이다. 오늘만은 모두 따스한 관심, 딱 한 뼘 정도의 관심만 가지는 날이 되면 얼마나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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