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자가 남은 자를 위로한다

by 마음순례

부부 금실이 좋은 아내가 아침에 눈 뜨자마자 버럭 남편을 안고 말했다. “여보, 우리 이렇게 20년만 같이 살자.” 자상한 남편은 생뚱맞은 아내의 행동에 그래 우리 그러자, 하고 가볍게 포옹해 주었다.


그로부터 딱 한 달 후에 아내는 큰 수술을 받았다. 20년이 아니라 5년을 걱정해야 했고, 치료의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부부는 함께 손을 잡고 걸어야 했다. 약해지지 말고 투병 의지를 가지라는 사람들의 의례적인 말에 아내는 짜증을 냈다. “몸이 따라가 줘야 마음이 강해지고 의지도 생기지, 몸이 따라가 주지 않으면 의지도 생기지 않습니다.”


대략 석 달 동안 생계를 위한 일도 뒤로 제쳐 놓고 아내 병간호에 헌신해 온 남편이 말했다. “그동안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내가 뭘 잘못했나 싶고, 후회되는 일도 많습니다. 아내의 몸이 저렇게 되니 아내가 어린아이처럼 되어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고 불안해 합니다. 그러면 안 되는데, 그게 짜증이 납니다.”


“5년을 20년처럼 살면 되지 않을까.” 환자 앞에서 그리고 아내와의 사별을 걱정하는 남편 앞에서 내가 너무 매정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나를 다그쳤지만 운명의 시간은 피할 수 없는 법. 가장 냉정해야 할 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운명은 친절하게도 복선으로 그 시간이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죽음의 복선은 어디엔가 꼭 있다.


예년에 비해 겨울 날씨가 더 춥다는 것은 다가올 봄 날씨가 더 따뜻하다는 것을 예고하는 복선이다. 또한 예년에 비해 여름 날씨가 더 더웠다는 것은 다가올 겨울은 더 춥다는 것을 알려주는 복선이다.


주치의는 아내가 5년은 살 거라고 했다. 그러나 운명의 시간표는 닥쳐와야 아는 법. 앞으로 부부가 몇 년을 더 살지 모르겠지만 남은 생은 20년처럼 살았으면 좋겠다고 기도 했다. 떠난 자는 아주 떠나는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부활한다. 그리고 남은 자의 삶을 따뜻하게 만들어 간다. 남은 자가 떠난 자를 위해서 할 일은 자신의 슬픔을 위로하는 일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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