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디울 Oct 27. 2022

아이 없는 삶

10.  감마의 눈물


나이 들어 남편과 함께 떠난 유학 생활 중 한식당에서 일을 할 때, 띠동갑 벌 어린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온 친구들도 있었지만 학생비자로 와서 열심히 아르바이트하며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도 많았는데, 어느 날 밝고 씩씩하게만 보이던 한 친구가 나에게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으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아예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 친구는 등록금을 모으기 위해 식당 아르바이트 외에 청소 일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 새벽에 건물 청소를 하고 와서도 늦은 시간까지 식당 일을 하고 주말에는 조를 짜서 가정집 청소까지 한다니 그냥 식당 아르바이트만으로도 몸져누울 지경이던 나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얘기를 듣자 하니 유학 중 아버지의 사업이 파산하면서 갑자기 학비 지원이 딱 끊겼고 그 이후로 모든 것을 혼자 부담하며 이어 오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힘들면 저리 닭똥 같은 눈물을 펑펑 쏟을까? 나름대로 그녀를 성의껏 위로해 줬지만 그때 내 말들이 그 친구에게 진심 어린 위로가 됐을지는 모르겠다.


그 친구와 엇비슷한 경험치를 갖고 있긴 해도 그때까지 혼자 모든 걸 짊어지고 애타는 심정으로 일을 해 본 경험은 없었던 듯하다. 만약 내게 그녀 버금가는 사연이 있었다면 그냥 같이 울어 줄 수 있었을 텐데. 진심 어린 공감은 딱 그만큼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현실을 보는 와중에 난 어디에나 계급이 있음을 느꼈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보였던 그곳 사회에도 분명 계급이 존재할 테고 이렇게 시공간을 초월해서 노동형 흙 수저들이 어디에나 있음이 분명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 우리는 올더스 헉슬리 소설 ‘멋진 신세계’의 ‘감마’나 ‘델타’ 계급쯤의 인간이었던 듯하다.


깨끗한 환경 속 좋은 집에 사는 외국에서 희망이란 성분으로 제조된 소마를 맞으며 행복하고 가치 있는 노동을 하고 있다고 여겼지만 눈물을 보이게 된 그녀는 그 소마에 내성이 생겨 자각하게 된 건 아닐까? 지금 한국에도 그때의 우리와 같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내국인이 꺼려하는 힘든 일을 맡아하고 있고, 각 나라의 잉여 노동력은 여전히 또 다른 세계의 계층으로 흡수되고 있다.

지금은 옛말이 되어 버린 시드니의 집값은 그때보다 열 배가 넘게 뛰었고 당연히 현지 청년층도 내 집 마련하기가 별 따기가 되었다고 하니, 세상 어디서나 빈부격차는 더 심화되고 노동자를 위한 기업이 있다고 믿는 순진한 사람은 없게 되었다. 그만큼 살아내기 위해 눈물 쏟는 사람도 더 많아졌다는 사실일 것이다.


서민층이 두터워지니 세계 서민 연대가 두터워졌다고 기뻐해야 할까?

계급에 대한 화두와 양극화의 문제는 더욱 활발해지고 이런 사회 계급화는 출산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니, 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는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계층’의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생각한다.


글 · 그림 반디울

이전 09화 아이 없는 삶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