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디울 Oct 16. 2024

소설 _ 15. 수상한 손님

소설 _    15. 기억이 났다.

어쩌면 나는 진짜 마녀가 아닐까?


아버지와 같이 사기를 당했던 한 분이 내게 연락을 해오면서 아버지의 후배 구길한이 칼을 맞고 쓰러졌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는 누군가의 원한이 자신을 관통하고야 말 것이라는 직감을 했는지 손수 돌보던 가게를 아내에게 맡기고 지방으로 숨어들었는데 그런 그 사람을 찾아 칼부림을 한 사람이 생긴 것이다. 


그분은 구길한을 찌른 사람이 정확히 아버지가 입은 사기 건의 같은 피해자 중 한 사람인지 아직 밝혀진 것은 없지만 그가 평생을 반복했던 사기 수법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어서 종단에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했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는 법망을 묘하게 피해 간 그를 찾아가 ‘누구라도 그러했을 수 있었다’란 가정의 ‘누구’라는 무리가 있었는데, 듣고 있던 중 저절로 그 맨 앞으로 선 내 모습이 그려졌다. 


그날 길을 건너가 던진 것이 내 책이 아니라 품에 품고 간 예리한 칼날이었다면, 원한의 힘을 받은 그것이 예상치 못하게 적중해 그의 가슴에 내리 꽂혔다면, 그를 찌르고 제 스스로 걸어 들어가 자수를 했다는 그 사람은 얼마든지 나였을 수 있었지 않나.


그것은 가정이기보다 마치 확률이 높은 룰렛 게임에 더 가까웠을 뿐인데, 내게서 미루어져 다른 사람에게 돌아간 것은 아니었을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한 둘이 아니라는 우리는 어쩌면 서로 제 손을 빌지 않고 일을 치러 줄 누군가가 앞에 나타나 주길 기다리고 있었던 아니냐는 거다.


이름 모를 그는 누구인가? 모두의 짐을 떠맡고 불길 속으로 뛰어든 또 다른 나는 누구였을까? 

제 분을 못 참고 일을 내 버린 그 사람은? 


전화를 끊고, 그저 얄궂은 한 끗 차이로 그와 나의 운명이 갈렸을 뿐이라는 것을 또렷이 알고 있었던 내 마음에 낯 모를 그 사람에 대한 동정심이 일었다.




내 기억으로는 그날부터였다. 구길한의 소식을 전해 받은 그날부터 가게가 한가해지는 두시 정도면 어김없이 들어와 가게 벽 면 코너의 1인용 테이블에 앉아 매일 같은 정식을 먹고 가는 사람. 며칠은 인지를 못했는데 닷새가 지날 때쯤 나는 그가 누구인지 기억이 났다.

 다른 테이블을 치우다가 동작을 멈추고 설만큼 ‘아!’ 하고 생각이 나버린 얼굴이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도 매일 어김없이 찾아와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는 그를 보고 내가 먼저 아는 척을 해야 할지 생각을 해보았지만 나 역시 모른 척 아무 말 없이 그저 조용히 내 일을 했다.


그가 시킨 음식이 나온 쟁반을 들고 그에게 향하는 발걸음부터 테이블에 이르러 음식을 내려놓기까지 그 사람은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나 또한 그에게 다다랐을 때 그의 얼굴을 보지 않고 음식을 내려놓고 와 멀찍이서 가끔 그를 쳐다볼 뿐이었는데 그는 묵묵히 밥을 먹고 나서 조용히 카운터로 가 계산을 하고 사라질 뿐이었다.


며칠 동안 서로가 알지만 아는 척을 하지 않는 관계로 그 남자를 보던 이 날도 어김없이 가게의 마감 시간은 찾아오고 여덟 시가 넘은 시간에 집으로 향했다.


그 시간이 되면 형석은 가게 마감으로 바쁘고 테무르 아저씨는 주방 뒷정리에 정신이 없었는데, 늘 무비나와 쯔엉과 나 세 사람은 먼저 퇴근을 하며 가게를 나서곤 했다.


 가게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나와 쯔엉은 고개를 들어 구름에 가려 어딘가에 있는 달을 찾곤 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 남쪽 하늘에 희미한 유령처럼 숨어 있던 낮달이 어두워진 서쪽에서 환히 제 모습을 드러내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우리 둘은 달을 찾은 순간에 멈춰 서서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먼저 눈을 뜨는 사람은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앞으로 몇 발작 앞 서 걸어가며 그 기도와 같은 읊조림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다시 발을 맞춰 걸어갔다. 


그날도 멀리 전봇대 위로 걸린 상현달을 바라보고 걷는데 위로 던진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돌린 순간 길 모퉁이에 서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그때 나의 시선을 느낀 그 사람이 움직이는 바람에 얼핏 보긴 했지만 나는 한눈에 분명 그가 바로 구석 테이블의 그 남자임을 알 수 있었다.


상가 세 개를 지나는 정도의 근거리에서 나를 보다가 천천히 골목으로 쓱 사라진 그를 본 것이 틀림없어 그가 사라진 골목 즈음에 다다를 때, 고개를 빼고 그를 찾았지만 더 이상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언니 왜 누구 찾아?”

“어? 아니야.”



바로 집에 돌아온 후 내 방에서 옷을 벗고 나와 쯔엉을 찾는데 쯔엉은 보이지 않고 웬 낯선 남자가 떡하니 거실에 서 있었다. 


또렷한 얼굴은 모르겠지만 그 형체를 보고 큰 공포를 느낀 나는 너무 놀라 질린 나머지 아무 소리도 못 내고 그 남자를 피해 바로 베란다로 뛰어나가 두 손으로 난간을 잡고 간신히 매달렸다. 하지만 창밖에 매달리게 된 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손에 힘이 풀려버린 나는 난간을 놓치며 하릴없이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크게 양팔을 벌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땅으로 떨어지는데 슬로우 모션처럼 집에서 멀어지는 감각이 고스란히 느껴지며 곧 몸이 땅에 박혀 산산조각 날 것 같다는 전율이 일었다. 남자를 피해야 한다는 공포가 죽음의 공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11층 우리 집이 아득해지며 아파트 정원 바닥에 몸이 곤두박질 치려던 찰나, 갑자기 떨어지는 속도감이 멈추며 공기의 쿠션이 나를 떠 받치듯 몸이 살짝 뜨더니 누운 채로 떨어질 뻔한 내 몸이 부드럽고 안전하게 땅에 이르렀다. 그때, 죽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온몸에 퍼지며 절로 벌렸던 팔을 감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렇게 살았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  손을 펴고 앞을 보니 내 눈앞에  아버지가 보였다. 그는 내 앞에 서서 아무 말 없었지만 분명  날 살린 것은 아버지의 힘이었다는 걸 나는 그저 알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거나 할 새 없이 눈을 떠 보니 꿈이었다. 달의 기운 때문이었는지 그날 나는 몇 가지나 되는 꿈을 연이어 더 꿨는데, 마치 꿈속을 헤매기 위해 잠이 든 것처럼 밤새 몽환적인 상태가 이어진 듯하다.


그중 또렷이 기억이 나는 꿈은 추락하는 나를 살려준 아버지의 꿈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매일 보름 가까이 가게에 와서 밥을 먹는 그 남자와 관계된 꿈이었다.


나는 종종 꿈에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미지의 통로가 현실과 어떤 확장된 다른 세계와 함께 연결돼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의 존재에  대한 정신분석적 접근이나  그런 것이  아닌 예지력이나 운명의 인도 같은 느낌 말이다. 그래서 미신이라 일컫어지는 쪽의 해석이 오히려 아직은 과학의 범주가 다올 수 없는 영역이 아닌가 하며 믿어지는 것이다.


내 느낌대로, 꿈을 꾸고 난 그 이튿날 밤 바로 그 남자로부터 어떻게 나를 찾아오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꿈 때문인지 더욱 한 번은 그와 어떠한 얘기라도 나눠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나는  왠지 형석에게는 말을 하지 못하고 조금 일찍 가게를 나와 그 수상한 손님을 만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전 14화 소설 _ 14. 마음속의 대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