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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의 1분 1초, 육지의 여행자들에게는 낭비할 수 없는 소중한 시간들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잠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제주의 흐르는 시간을 느끼며 멍 때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멍 때리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뇌를 쉬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멍 때리기의 효과는 주목할만 한데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전전긍긍할 때보다 오히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릴 가능성이 높다고 해요. 오죽하면 멍 때리기 대회라는 것이 생기겠어요. 하지만 냉혹한 경쟁사회 속 현대인들의 일상에서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닌것 같아요.
그 어려운 일도 쉽게 해낼 수 있는 장소가 저에게는 제주랍니다.
그날 제주의 아침은 비가 참 많이 내렸어요. 숙소를 나서기 위해 준비를 마쳤지만, 우산이 없어 비가 잦아지기만을 기다렸답니다. 하지만 잠깐 내리고 지나갈 요량은 아니었는지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소리는 더욱 요란해졌죠. 이를 어쩌나 창밖을 바라보던 저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벌러덩 침대에 누워버리고 말았어요.
그리고 가만히 눈을 감은채 내리는 빗소리에만 귀를 기울였죠. 몇 분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복잡했던 머릿속은 고요해지고, 우산을 어디서 구해야할지, 가방을 안 젖게 하려면 얼마나 뛰어야 할지 하는 생각들은 이내 잊어버리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잠시 무념무상의 바다 속에 둥둥 떠있는 동안, 어느새 시간이 지나 체크아웃 시간이 돌아오고 말았답니다.
결국 그때까지 비는 그치지 않았어요. 어쩔 수 없이 저는 내리는 비를 맞은 채, 숙소를 나서야 했죠. 하지만 걱정을 덜 해서 그랬을까요? 생각했던 것보다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더라고요.
손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일.
수시로 들락날락하던 SNS에 무관심해지는 것.
해답 없는 일들에 무던해지기.
이 별것 아닌 것들이 육지의 일상에서는 왜 그리 어렵게 느껴지던지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제주에서는 몸과 마음을 게으르게 내버려 두어도 그리 죄책감이 들지 않는답니다. 아마도 제주가 저의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겠지요. 그냥 바라만 보아도 좋은, 언제나 제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는 존재 앞에서는 굳이 주고받고의 계산 없이 그저 그 행복을 느끼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육지의 여행자들은 제주에서의 1분 1초도 낭비할 수 없죠. 낭비하기 아까운 시간들이니까요. 하지만 때로는 잠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멍 때리는 시간을 갖는 것도 참 좋은 것 같아요. 제주의 흐르는 시간을 오롯이 느끼면서 말이죠.
멋진 풍경, 맛있는 음식이 주는 힐링이 아닌, 제주에서 내 안의 나를 찾는 또 다른 여행. 여러분들도 그 특별한 매력을 멍 때리는 시간을 가지며 느껴보세요.
· 협재 호텔 아길라
나를 위한 작은 사치가 필요할 때 추천하고 싶은 곳이에요. 번화한 협재해변과 조금 떨어져 있어(걸어서 10분 거리)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랍니다. 전 객실이 바다 전망이라 눈을 뜨면 바로 침대에서 비양도를 마주할 수 있어 좋아요.
· 중문 펜션 에리두
중문 관광단지 내 작은 마을 대포동에 위치한 감성 숙소예요. 1층 카페에 앉아 감상하는 저녁노을이 일품이죠. 독립성이 보장된 객실 앞에는 아주 작은 정원도 마련되어 있는데 볕 좋은 날에는 캠핑 의자를 펴고 앉아 멍 때릴 수 있어 좋은 곳이랍니다. 가끔 주말에 열리는 플리마켓은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요.
· 성산 펜션 오조리 B&B
마당에서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숙소에요. 밤이면 웅장한 성산 일출봉의 실루엣을 감상할 수도 있답니다. 숙소가 위치한 오조리는 한적한 마을이에요. 그래서 머무는 동안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답니다.
· 함덕 야호비치하우스
함덕해변 서우봉 아래 위치한 바다전망 펜션이에요. 복층 구조에 마련된 작은 침실에서 바라보는 함덕해변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아침내내 침대에 누워있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곳이에요.
· 위미 콴도제주
동백나무군락으로 유명한 위미리에 위치한 콴도제주. 주인장의 세심한 손길로 탄생한 건물이라 특급호텔급 시설과 방음을 자랑한답니다. 창문으로 보이는 귤밭이 인상적인 곳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