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프롤로그] 나는, 명상하러 간다

누구에게나 나름의 계기는 있다 

"사람들은 주로 슬플 때 명상을 찾지. 어느 정도 마음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하지만 슬플 때만 명상하고 기도하면, 가슴 깊은 곳을 흔들 수 없어. 가능하면 자주, 오래 명상하도록 해봐. 오래 할 수 없다면 매일 짧게라도 자주. 그러면 삶의 모든 측면에서 내가 나아지고 있구나 느끼게 될 거야. 명상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우린 심각해지지 않아. 이미 마음속에 답이 있으니까. 우리는 이미 평화로니까."


아직은 무더운 9월, 태국 아유타야에 있는 불교 사찰 명상센터에서 만난 수행자 눔폰(Numporn). 그녀는 나보다 열 살 정도 많은 언니였다, 그녀와 함께 온 남편은 오래전 동자승 생활을 해서 그런지, 이미 명상 마스터 수준. 불교 모임에서 만난 둘은 결혼생활 수십 년 동안 매일 저녁 함께 명한다고 했다. 가끔은 이렇게 일주일 정도 같이 명상센터에 와서 집중 수행하기도 하고.

나는 200-300명 되는 명상 수행자 중 유일한 외국인, 그것도 태국어라고는 달랑 "코쿤카" "사와디카" 정도만 알고 있는 수준에, 불교 신자도 아니고, 명상도 처음인, 그야말로 답 없는 유일한 외국인 수행자였다. (태국인들 위주 프로그램 운영하는 곳에서, 이런 나를 받아준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묵언수행이 기본 원칙이건만, 기본적인 생활 규칙이나 명상하는 법도 모른 채 내가 혼자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고, 눔폰은 매번 도움을 주었다. 태국 전통 수행복 입는 법도 알려주고, 식사 시간도 놓치지 않게 알려주고, 엄격한 센터 규칙과 명상 일정들도 놓치지 않게 챙겨주고.

그리고 나의 슬픔을 읽어서였을까. 마지막 날, "슬플 때만 명상하려 하지 말고" 매일매일 짧게라도 명상을 하라고 당부했었다. 서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사이, 만난 지 며칠 되지 않는 낯선 이방인일 뿐인데, 누군가 나의 슬픔을 알아봐 주었다는 것,  나의 위태로운 마음을 눈치채고 위로해주려고 했다는 것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는 마지막 택시를 잡고 떠나는 순간까지, 내 손을 잡아주었다. 슬픔은 잊고,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얻어가길 바란다며.


그렇다. 대개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큰 상처를 입고 마음의 평화를 절실하게 필요할 때 명상을 찾게 된다. 아니면 인생의 중요한 큰 선택이나 결정들을 앞두고,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명상을 찾는다. 나 또한 그랬다.

병원약이나 상담만으로 해결되지 않고, 선배들과 친구들 위로도 더 이상 힘이 되지 않을 때. 마치 허리케인에 강타당해서 살던 집도 떠내려가고, 산사태가 나서 길도 다 끊겨 버리고 그렇게 막막하게 폐허에 홀로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말이다.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은 째깍째깍 다가오고, 나는 마치 처형을 기다리는 것처럼 초조해지고. 나의 불안과 두려움, 슬픔과 분노가 최고조에 달하고, 몸도 아프기 시작했다. 내과, 이비인후과, 가정의학과, 매주 다른 증상으로 각기 다른 병원을 전전했다. 몸속의 염증은 매일 이곳저곳 옮겨 다녔다. 의사 선생님들은 면역체계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며 스트레스 관리에 신경 쓰라는 말만 해줄 뿐이었다.


그때 친구가 얘기했었던 명상여행 이야기가 떠올랐다.


“예전에 태국에서 한 달 동안 명상한 적이 있었거든. 일주일씩 몇 군데 사찰을 다녔었어. 새벽 4시쯤 법회에 참석하고, 명상하고, 아침은 간단히 죽 먹고, 점심은 11시 반에 끝나. 그게 그 하루 식사 끝이지. 오후 명상 마치고 4시쯤 차 한 잔 주기는 하는데, 식사는 그렇게 하루 한 끼 먹었어. 대신 9시쯤 일찍 잠이 드니까 할 만했어. 무덥고 배고프기도 하고, 하지만 인생에서 한 번쯤 해볼 만한 것 같아. 핸드폰 없이, 하루종일 명상만 하면서 온전히 자기 자신과 함께 하는 시간 말이야."


재작년 가을 즈음, 친구가 이 얘기를 해주었을 때는, 막연히 부럽기도 하고 또 그저 남 얘기 같기만 했다. 친구는 원불교 교무님이니까, 종교인이니까 명상수행 오래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난 일주일만이라도 그런 데 가보면 좋겠다. 그렇게 막연하게만 생각했었다.

그래, 최첨단 기술 선봉에 서 있는 구글 같은 기업에서는 직원들에게 명상수업을 권한다던데, 세계 유명한 CEO, 셀럽들도 다 명상을 한다고 한다는데, 나도 언젠간 해봐야지 그 정도. 그렇게 막연하게 상상하다, 내 삶의 위기가 와서야, 동아줄 잡는 마음으로 명상을 찾게 되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지금이 가장 나에게 적기였을 것이다. 남이 아무리 권했던들,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렇게 진지하게 마음의 평화와 명상을 찾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내가 명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마치 미리 다 계획되었던 것처럼, 내게 도움 주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우려의 조언을 해주는 이와, 따뜻한 마음으로 도움 주는 이, 따끔하게 가르쳐준 이, 그리고 다음 단계 나아갈 수 있도록 가이드해 주는 이. 절실하게 원하는 것은 온 우주가 기운을 모아 도와준다고 했던가, 마치 그런 도움받는 것 같았다.


이제, 중요한 결정의 순간은 끝났다. 나는 15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인생 처음으로 무직상태가 되었다. 중요한 결정 이전 태국에서 일주일 정도, 퇴사 이후 한 달 남짓 명상마을에서 온전히 명상에 집중한 시간.

퇴사 이후 변해버린 나의 삶도,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명상도 아직 적응 중. 이렇게 온전히 나 자신에게 깊이 집중해 본 시간은 마흔 중순 이르는 인생동안 처음이다. 그러니 아직 우여곡절 당황스러운 일들 투성이지만.


나는 오늘도 명상하러 간다.

따뜻한 침대 안이든, 불편한 책상 앞이든, 도시 소음 속 길 위든 상관없다.

명상은 나를 마주하는 시간. 언제든, 어디든 상관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