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모두 다른 욕망을 하는 존재니까요.
내 대답은,
“그건 사람마다 다르겠지.”이다. 지금부터 이 당연한 소리를 조금은 길게 해보려고 한다.
과거에는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여전히) 장애를 주로 신체 또는 정신적 결핍이나 부족으로 보는 관점이 일반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은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거나 ‘보완’ 해야 할 ‘문제’로 여겨왔다.
현대적인 장애 인식에서는 장애를 개인의 결핍으로 보는 대신 ‘정체성’으로 받아들인다. ‘무엇을 할 수 없는 상태(disabled)’인 장애란 개인의 신체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없게 만드는(disabling)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나의 신체적 상태인 장애를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는 휠체어 사용자를 휠체어에 묶여 있는(*wheelchair-bound) 완전하지 못한 사람(*handicapped, 불구자)으로 봤다. 그렇기 때문에 휠체어 사용자들은 ‘못’ 걷는 불완전한 상태에서 회복돼 다시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길 바랄 것이라는 생각은 철저히 ‘비장애인’의 관점에서만 생각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지금껏 비장애인 중심으로 장애인을 마음대로 인식해 저지른 비장애인들의 만행을 돌이켜보면 충분히 공감되고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런데 모든 휠체어 사용자가 걷지 못하는 자신의 상태를 ‘정체성’으로 받아들여 ‘내가 무엇을 할 수 없게 만드는 환경’만 해결된다면 결코 걷고 싶지 않을까? 나는 정말 모르겠다.
내가 휠체어 회사를 다니며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은 모두 다른 저마다의 이유로 휠체어를 탄다. 휠체어를 타고 있다는 현재의 상황만 같을 뿐, 언제부터, 어디서, 왜 휠체어를 타게 되었는지 그 사연이 모두 다르다.
그중에는 언젠가 과학 기술의 도움으로 다시 서서 걷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고 또 누군가는 다시 일어나 걷는 걸 바라는 대신 오늘 내가 휠체어를 타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길 바란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하다. 모든 사람은 모두 다른 욕망을 하기 마련이니까.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통하는 나만의 방법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적당한 비유를 하나 찾아 나에게 적용해 보는 것이다. 과연 나라면 어떨까. 그럼 생각보다 명쾌하게 답이 나올 때가 많다. (단, '내'가 그러니까 '너'도 그러겠지 라는 오류만 저지르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대부분 질문 자체가 우문인 경우가 참 많다.
나는 90년대생 미혼 여성이지만 내 친구 중에는 결혼을 한 친구도, 나와 같은 미혼인 친구도, 그리고 '결혼은 하지 않을 거야'라는 다짐을 한 비혼 친구들도 있다. 결혼을 한 친구들 중에서도 엄마가 되고 싶어 아이를 낳은 친구도, 아이를 고민하고 있는 친구도, 그리고 아이는 인생 계획에 없다는 딩크족도 있다. 모두 바라는 것이 다르다. 우리는 모두 다른 것을 욕망하는 존재기 마련이니까. "누군가 나에게 너는 90년대생의 대한민국 여성이니 아이를 낳고 싶을 거 아니니?" 혹은 " 마땅히 아이를 낳아야지"라는 말을 한다면, 나는 정말 "네가 뭔데?"라는 대답을 날려주고 싶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 네 ㅎ" 정도로 사회화를 거쳐 순화된 말이 나가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상대방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굳이 다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내가 미혼인 상태이지만 결혼이 하고 싶은지 비혼인지, 그리고 자녀 계획을 어떻게 세우고 있는지는 누가 어떤 상황에서 묻느냐에 따라 전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또 기꺼이 깊이 있게 이야기하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휠체어 타는 사람은 걷고 싶을까?
아마 그건 사람마다 다를 테고 다시 생각해 보니 전혀 할 필요 없는 질문인 것 같은데, 꼭 물어보고 싶다면 관계와 상황에 따라 잘 물어보자. 어쩌면 "아, 네 ㅎ"라는 대답이 돌아올 수 있으니까.
*글에서는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차별적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휠체어 사용자는 “Wheelchair-bound”가 아닌 “Wheelchair user”로, 장애인은 “handicapped”가 아닌 “person with a disability”가 현대적이고 포용적인 용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