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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Oct 25. 2024

마트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는데 웃음이 나왔어요.

내가 아직도 모르는 이야기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할 때면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는 바로 언니를 잃어버렸던 일이다. 엄마 아빠는 언니를 여러 번 잃어버렸는데 한 번은 할머니가 갓난아이였던 나를 업고 한 손에는 언니 손을 잡고 엄마 아빠 가게에 가던 중에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언니가 할머니 손을 놓고 앞장서 가다가 사라진 적이 있었고, 또 한 번은 시골에 다녀오다 들른 휴게소에서 언니를 잃어버렸던 적이 있다고 들었다.


다행히 그럴 때마다 언니는 항상 경찰서에서 하도 울어서 퉁퉁 부운 눈으로 아이스크림이나 사탕 같은 걸 먹고 있는 모습으로 발견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에야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으면서 하는 이야기이지만, 아직도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언니를 잃어버렸던 이야기를 할 때면 엄마는 마치 어제 일어난 일인 것처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휠체어 사용아동 이동성 향상 프로젝트>를 하며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만나고, 아이에게 몸에 맞는 휠체어와 동력 보조장치를 지원하고, 휠체어 교육을 한다. 상담을 하고 휠체어 사이즈 맞추고, 휠체어 사용 교육을 하고 나면 어느새 아이들과 부모님은 우리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도 잊지 않으시고, 프로젝트 덕분에 아이의 이동성이 크게 향상되어 일상이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사진과 영상과 함께 감사의 메시지로 보내주신다.


언젠가 한 어머님이 보내주신 메시지가 기억에 남는다. 아이를 데리고 마트에 갔다가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이야기였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한참 물건을 고르고 있었는데, 방금까지 옆에 있던 아이가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어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아이 이름을 부르려던 순간 ‘이제 나도 아이를 잃어버릴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항상 유아차에 태우고 다니던 아이가 이제 스스로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거죠. 다행히 아이는 근처 다른 코너에서 구경을 하고 있었어요.” 


어머니의 생생한 이야기 덕분에 그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했다. 그 순간 느끼셨을 놀람, 기쁨, 그리고 안도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에도 기쁨과 함께 ‘아이를 잃어버릴 수 있게 된 현실에 웃음이 나왔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는 아직도 모르는 이야기가 너무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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