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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징카 Aug 17. 2018

핀란드 대서사 3 : 애프터 파티

자전거 페달이 없어도 유로피안 매너

아침에 눈을 떠도 여전히 어둑한 밤인 핀란드에 온화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 날 아침은 이상한 불안감으로 잠에서 깨어 몽롱한 상태에서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어제 부터 고민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같이 온 한국 친구들과의 관계부터 새로 만나는 유럽 친구들과의 관계 등, 이곳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어지고 싶었지만 어딘가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 대범하지 못한 소통 능력이나 가끔 말문이 막히는 경험들로 부터 작아지고 있다.


그러던 날의 저녁에 오울루 시내에서 벌어지는 게임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City Rally라고 하여 시내의 여러 펍을 돌아다니며 팀별로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다시 모르는 이들과 모이게 되었고, 그 속에서 혼자 아시안이라는 부담감도 있었으나, 여럿 가운데서 어리숙하게 말하는 걸 들키기 싫었다. 그렇다고 조용히 적극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시안 스테레오타입을 생성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그것 또한 싫었다. 마냥 편안하고 즐거운 자리가 되지 못했다. 나의 어눌함을 이해 해 보려는 사려깊은 유로피언들의 질문도 친절 보다는 견디기 힘든 일로 느꼈던 것 같다. 농담을 이해하지 못해서 두 세번 물어봤다. 민망했다. 


애프터파티는 오울루의 클럽에서 이루어 졌다. 이 도시의 클럽이 틀어주는 노래는 올드했다. 모든 스테이지나 여러 시설들이 모던하지 못했고 촌스러운 느낌마저 주었다. 같이 파티에 참석했던 한 언니는 이태원과 홍대의 장소들을 떠올리곤 이 놈들 서울 한 번 왔다가는 기절하겠구만하고 말했다. 


클럽에서 같은 팀이었던 헝가리안을 만났다. 그의 옆에 있는 것이 편안하지만은 않아서 기분이 딱히 나아지진 않았는데, 그는 나의 기분을 신경쓰는 듯 했다. 나와 대화를 하고 싶은지 여러가지를 물었는데 나는 아주 엉망으로 대답을 했다. 그날따라 아무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다소 촌스러운 음악이 시끄러웠다. 내가 별 말이 없자 그는 한국에선 아마 아니겠지만 서양에선, 이라며 볼에 굿바이 키스를 하고 떠났다.


그렇게 재미없고 부담스러웠던 파티가 끝이 났다. 그러나 재미있는 점은 클럽이 오전 2시나 3시면 문을 닫는 다는 것과 아델의 Hello 같은 질척한 발라드가 나오면서 파티의 끝을 알려준 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재미있는 점은 멋지게 파티를 마친 사람들은 다소 모양 빠지게도 직접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야밤에 대중교통은 없고 택시비는 미친듯이 비싸기 때문이다. 클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전거를 두고 와 다시 걷기를 귀찮아 하던 참이었다. 그러던 차에 더치를 만났다. 네덜란드는 자전거의 나라.


걸어간다고?

네덜란드는 자전거의 나라야.

그리고 난 더치지

내가 태워줄게


라고 옆에 있던 언니에게 이야기 했는데, 더치 옆에 있던 슬로바키안이 얼떨결에 나를 태워주게 되었다. 다행히 얼어죽을 듯 추운 날씨는 아니었으나 그 눈 밭에서 합하여 100kg는 넘을 무게를 자전거가 버틸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랬더니 아주 쿨한 척 "No problem"이랜다. 그래서 모른척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고 자전거는 아주 무겁게 간다. 


야니, 자전거가 왜 이렇게 느리게 가지?

아냐, 문제 없어


그러다가 오르막을 만나서 걷게 되었다. 몇 번이고 무겁냐고 괜찮냐고 물었지만 그는 계속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 꽁꽁 얼은 눈길에 자전거를 굴리는 일은 혼자라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결국 집 근처에서는 함께 내려 네 명이서 걸었다. 


그 쿨남들은 우리 집 앞에 다와서야, 자 이제 우리 갈게. 라고 하였는데 갑자기 "헐, 내 페달!" 하는 것이다. 매우 웃겼다. 자전거 한 쪽에 페달이 없다. 그래서 모두 길 한 복판에서 어디갔냐고 숨도 못쉬고 웃었는데, 이 와중에 나는 죄책감과 책임감 사이 정도의 기분이 되어 몹시 걱정했다. 그랬더니 그는 돌아가는 길에 찾으면 된다고 아주 여유롭게 말하더니, 아니면 그냥 이렇게 타면 되지 뭐, 하더니 절름발이로 자전거를 킥보드 타듯 타고 사라졌다. 


아, 유로피안 매너는 이런 것인가? 그 눈 길 위에서야 비로소 애프터 파티 기분이 들었다.



ps. 얀코, 야니, 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던 그는 이후 핀란드 생활 동안 이리저리 함께 여행을 다니던 친구들 중 한 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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