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한 달. 오늘도 나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똑딱똑딱 걸어간다. 아침이 되면 달이 뜬다. 커튼이 나를 걷는다. 조명이 나를 켠다. 글이 나를 쓴다. 아무도 없는 이른 밤, 나는 화이트스크린 앞에 출석하여 맨 앞줄에 앉아 있다.
글쓰기는 내가 어렵다. 나는 글쓰기를 극진히 불신한다. 그 내도록 불신의 시간이 바로 글쓰기의 시간이다. 쓰여지지 않음이 가장 잘 쓰여짐이다. 가장 못생긴 문장이 맨 앞줄에서 손을 번쩍 든다. 그리고 어벙하게 말한다. 저 그…… 제 손을 잡아주시겠어요? 자취방에서 어딘가 하나씩 모자란 문장들이 탄생한다. 그래도 귀엽잖아. 나는 갓 태어난 문장들에게 나를 조금씩 분양한다. 문장들아, 세상을 향해 이제 네 스스로의 힘으로 헤엄쳐 가거라.
라면이 나를 먹는다. 술이 나를 마신다. 시끄러운 냉장고는 나를 부술 뻔한다. 부양받는 쪽은 언제나 자신이 부양받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내가 집을 부양하고 있는데 아무도 몰라. 집아! 행복해라! 너만은 행복해야 한다.
은행은 내 삶을 저당 잡았다. 나는 다달이 통장에서 나를 쥐어짜 이자로 지불한다. 나는 늘 내가 부족하다. 아끼고 아껴도 남는 게 없다. 내가 없는 나는 가난하다. 은행들은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어휴, 요즘 대출 안 끼고 자기 100%로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누구나 자기 없는 자기를 사는 '자기 긴축 시대'다.
생각을 길어올리려는 순간, 생각이 나를 끌어 내린다. 생각의 바다가 휘청거린다. 그 여파로 커피에 잔물결이 인다.
신발이 현관에 앉아서 나에게 잘 가시오, 한다. 몸은 곤히 잠들어 있어서 신발을 신을 수 없는데, 정신은 천지강산 맨발로 잘도 돌아다닌다. 글쓰기는 이렇게 가위눌림이다. 몸은 잠들어 있는데 정신은 깨어 있는 것. 갑자기 어림 반푼이 같은 문장들에게 새 신발을 사주고 싶다. 얼마 전 매대에서 봤던 흰색 나이키 운동화가 좋을 것 같다. 거기까진 쿠폰이 해 줄 수 있다. 그렇다면 거기 너, 손 들고 인사하는 법을 배워볼까? 신발 선생님, 안녕하시오?
마음은 그저 빨랫줄에 걸린 빨래처럼 흔들린다…… 마른다…… 그 마음을 입고 언젠가 바깥으로 나서야겠지. 다시 때 묻고 구겨질 마음이 귀찮아서 밖에 나가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