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라 Jun 13. 2023

시계, 나의 시계(2)

밤마다

나를 노려보는 하나의 눈동자, 그건 시계

동그란 시계

오똑오똑 나를 바라보는 하얀 눈동자


솔직히 말할게요,

나는 시계의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시계에게 삶을 구걸한 적 있습니다

시간 한 칸만 달라고,

가장 작은 칸이라도 좋다고,

두 손 비비며 애원하던 나에게

초침, 거꾸로 돌기 시작하며

분침, 빠르게 달리기 시작하며

천장과 바닥을 좁혀오며 하는 말


노예,

멈추지 마

걸어, 계속 살아


그 뒤부터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2와 9에 숨겨진 구부러진 등

4와 8에 갇힌 절규의 소리

노예처럼,

노예처럼 숫자를 짊어지고 걸어가는 사람들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들 지금 어디로 가고 있어요?


사람들은 엉금엉금 대답했습니다

나는 1에서 2로 가고 있습니다……

나는 2에서 3으로 가고 있습니다……

나는 3에서 4로 가고 있습니다……

나는 4에서 5로 가고 있습니다……

나는 5에서 6으로 가고 있습니다……

나는 6에서 7로 가고 있습니다……

나는 7에서 8로 가고 있습니다……

나는 8에서 9로 가고 있습니다……

나는 9에서 10으로 가고 있습니다……

나는 10에서 11로 가고 있습니다……

나는 11에서 12로 가고 있습니다……

나는 12에서 1로 가고 있습니다……


나는 참다못해 시계의 광장 한가운데로 뛰어나가 외쳤죠

시계, 사라져

다시, 사라져

풀어줘, 숫자, 가져가, 시간


그런데 말예요,

시계에는 왜 OFF 스위치가 없나요?


그 순간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열 두 개의 눈동자

시계, 당신의 시계


째깍째깍, 째깍째깍……

이전 06화 시계, 나의 시계(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