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대상항상성
우리의 감정은 순간의 상태 변화이며 어떠한 감정이든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감정임에도 의식적이라고 한다. 상대방과 내가 같은 공간에 있지 않더라도 우리는 <사랑하고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대상영속성과 대상항상성을 떠올렸다.
생후 24개월부터 36개월 경에 형성이 되기 시작한다는 이 인지 능력은, 예를 들어 부재중인 엄마를 오감으로 느끼지 못하더라도 엄마가 어딘가에 존재하며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발달 심리학이 성장기에서 그치지 않고 평생 발달이론으로 확장되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알려졌다. 대상영속성 등의 인지능력도 유아기에 모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발달을 한다고 한다. 우리 역시 지금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 오더라도 상대방이 어디엔가 존재한다고 믿으며 이 의식적인 감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을 지속할 수가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각자의 일로 부모님은 늘 부재중이었고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초등학생 고학년이 될 시점에는 주양육자가 없다시피 했고 타고난 기질이 독립적이기도 했지만 독립적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었다.
안정 애착을 형성하고 경험할만한 기회는 많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애정결핍을 앓았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그 점을 의식하진 못했다. 내게는 외로움과 심심함 그리고 그리움은 경계가 모호한 감정들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의 핵심감정은 늘 그리움이었다.
항상 그리워해야 할 대상이 있다는 점과 어린 나이부터 시기 별로 겪어 온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은 나의 대상영속성을 여러 의미로 발달하게 했다.
길가의 들꽃에도 마음을 주는 나 같은 사람에겐 잔인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나는 항상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리워했다. 비단 연애감정이 아니라 우정이나 인류애에 가까운 케이스가 많았지만 그걸 제외하고 연애감정으로 국한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짝사랑은 당연한 일이었다. 철도 들기 전부터 내 감정을 상대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 가지 경험으로 알게 되고 가끔은 그 터질 것 같은 무수한 감정들을 쏟아내거나 어리석은 짓도 많이 했지만 나는 그가 없는 곳에도 그를 좋아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위안이 되고 하루를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원하게 되더라도 바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늘 이별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비관해서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인연이 다하면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고 해도 사라진다는 것을 그저 조금 빨리 깨달았을 뿐이다. 오히려 상대가 내게 보이지 않을 때는 스스로 절제할 수 있는 그 마음도 상대를 마주보고 있을 때는 불안으로 넘쳐났다. 나는 불완전하고 성급했다.
유를 만나는 동안에 나는 늘 쫓기는 사람 같았다. 나는 항상 그가 내 눈앞에 있길 바랐다. 나와 있는 게 행복해서 그대로 숨을 멈추고 싶다고 말하던 그의 옆에 있으면서도 눈앞에 있는 그조차도 그리워했다. 언젠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가 각자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이 시한부 같은 내가 정한 마지막 사랑의 순간을 조금이라도 허투루 날려버리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매 순간 내일 당장 그를 볼 수 없게 된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 사랑을 했다. 그게 나라도 혹은 그가 되더라도 우리가 이별과 영원한 이별을 맞이해도 더 해주지 못해서 마음 아파할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기진맥진 엉망진창으로 달려온 4년. 내가 한 줌뿐인 가능성을 제외하고 마음을 닫아버린 세계에서 미래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그.
이제 나는 네가 없어도 너를 사랑할 수 있다. 이 4년의 시간은 온통 너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