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나는?이라고 물어왔다
죽음을 떠올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일상적인 장면에서 찾아온다. 이번에는 그랬다. 자기 전 침대에 누워서 폰을 만지작 거리는 와중이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벅차게 느껴지고 내가 발버둥 친 들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감정과 함께 왔다.
어떻게든 되겠지. 가 입버릇임에도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온다. 만성 우울장애를 겪고 있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다. 일상의 불행은 촘촘히, 그리고 켜켜이 쌓여 내게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라고 속닥였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어지자 내 옆에 있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내가 삶을 이어가는 것에 있어 위험요인이자 보호요인이기 때문이다. 이 역설적인 문장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를 파괴하러 온 나의 구원자라는 영화의 한 대목이 아니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야말로 나를 가장 크게 상처 입힐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무심한 톡 말투 하나에도 쉬이 상처 입는다.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든 <알 바 아닌> 그 말과 행동들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기에 깊은 상처가 되는 것이다.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바라보자 입 모양으로 왜? 하고 물어온다. 말해서 좋을 이야기가 아님에도 나는 유에게 말했다.
"그냥 다 그만둬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배운 것들이 아깝지 않아?"
"어떻게든 해보려고 뭐든 한 거지만 사실 상관없잖아. 이기적으로 내 생각만 하고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 그만두면."
"... 그럼 나는?"
말의 속 뜻을 깨달은 유는 무드등의 흐린 불빛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의외의 반응이었다.
"자긴 내가 없어도 잘 살 거야. 내가 없을 때도 잘 살아왔으니까?"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 표정이다. 하지만 격렬한 반응이나 무심한 반응은 아니었다. 나는 이런 걸로 농담을 하지 않는 사람이고 내가 한계를 넘은 상태로 오래 지내온 것을 그도 안다. 감정적인 문제나 피상적인 부분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부분으로 그런 말을 한 거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를 살려온 것은 엄마도 그도 아닌 나의 고양이들이었다. 내가 없으면 돌봐 줄 사람도, 키워 줄 사람도 없을 이젠 나이 지긋한 고양이들. 엄마와 그는 나를 잃어서 극심한 슬픔을 겪거나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더라도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고양이들은 내가 없다면 세상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 무게를 묵묵하게 감당하고 그 아이들을 잃어 극심한 펫로스를 겪을지라도 내가 먼저 가지 말아야겠다라고 버텨왔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 같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다만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게 지워진 책임감을 끝까지 완수하려는 나만의 견고한 룰이다.
그 역시 이 바운더리에 근접했다지만 고양이 같은 자이긴 해도 유는 역시 사람이며 성인 남성이므로 굳이 내가 책임지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갈 것이고 다소 상처받는다고 해도 내가 만약 정말로 죽는다면 나는 그 책임을 벗어던지고 도망친 것이라 이미 책임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의 삶을 스스로 힘들어하는 만큼 유의 삶 역시 눈앞이 보이지 않는 길고 좁은 터널과 같은 상황이다. 우리는 터널의 초입에서 만났고 그 터널은 우리의 생각보다 지나치도록 길게, 영원처럼 이어지고 있다.
"나도 힘든데 내가 버틴 건 자기 때문인데..."
유의 말이 딱히 거짓일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정말로 그랬다. 몇 번이나 서로를 부둥켜안고 길고 혹독한 겨울과 칠흑 같은 밤을 지났다.
"죽고 싶다는 건, 살고 싶다는 거야."
"그게 말이 돼?"
"응. 지금 이대로 살고 싶지 않은 거지, 간절히도 살고 싶으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니까."
그는 잠자코 느릿한 나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고 짧은 침묵 뒤에 나름의 최선을 다해 말을 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진 모르겠어. 자기와 보내는 시간이 아주 오래 이어지길 바라게 됐어."
"왜?"
"이 사람이라면, 물론 지금도 우리는 너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그럼에도 유의 이야기는 결혼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 역시 결혼을 말하지 않듯이. 서로의 마음과는 별개로 한국의 결혼이라는 제도는 서로에게 너무 많은 의무를 떠넘기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이야기로 호도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이번화를 쓰기 직전에 유에게 물었다.
"그럼 우리가 법적으로 아무런 책임이 없다 해도 평생 나와 의리를 지킬 생각이야?"
"그러고 싶다니까 왜 매번 물어봐? 못 믿는 사람처럼."
볼 멘 소리가 돌아온다. 입을 삐죽이는 것이 퍽이나 사랑스럽다지.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고 감정도 상황도 변한다. 그 무수히 많은 변수에서 우리의 대화는 추억이 되어 아무런 힘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한들 무슨 상관일까. 우리는 영원히 오늘을 살아갈 것인데. 내일도 오늘이 오면 또 다른 오늘인 것처럼.
4주년이 2주도 채 남지 않았다. 반듯하고 깨끗하게 이어져 온 관계는 아니어서 멍들고 여기저기 낡아 해지고 구겨진 마음을 손으로 자꾸 펴면서 온 시간이지만 제법 긴 시간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오늘을 살기로 다짐했다. 내게 오늘이 오지 않는 날까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위해 몰두할 거고 친구와 함께 같이 갈 곳 리스트를 잔뜩 써내려 갈 것이다. 요즘 들어 나의 요리법을 배우려고 하는 유와 함께 밥을 해 먹을 거고 언제까지 내 옆에 있어 줄지 모르는 나이 지긋한 내 고양이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을 것이다.
오늘은 마치 어제와 같아 내일을 바꾸려면 오늘을 바꾸어야 해
알고 있어 알고 있지만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마음이 텅 비어버렸기 때문이야
채워지지 않는다며 울고 있는 것은 분명 채워지고 싶다고 바라기 때문이야
내가 죽으려고 마음먹은 것은 당신이 아름답게 웃어주기 때문이야
죽을 생각만 하는 이유는 분명 살아가는 것에 진지하기 때문이야
내가 죽으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직 당신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야
당신 같은 사람이 태어난 세계를 조금은 좋아하게 됐어
당신 같은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에 조금은 기대해보려고 해
僕が死のうと思ったのは(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