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손을 잡는 것에 그렇게나 큰 의미를 두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높은 확률로 남자에게 애정을 느끼는 헤테로 로맨틱이자, 일정 이상의 친밀과 신뢰를 대변하는 라포 없이는 성적인 욕구를 거의 느끼지 않는 데미섹슈얼인 나에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던 것 같다.
손을 잡는다는 행위는 가장 쉬운 스킨십이지만 또 생각 외로 어려운 스킨십이라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누군가의 손을 잡게 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균형을 유지하는 걸 돕는다던가, 악수를 한다던가. 반대로 말하면 명분이 없이는 의외로 하지 않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이 친구 사이라고 해도 흔하지 않으니까.
누군가는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잡는 그 순간이 가장 짜릿했다고도 했다. 철저힌 남에서 사적인 사이로 들어서는 느낌이었다고. 전부 동의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사람의 결핍이란 대부분 부모로 인한 생애 초기의 도식(Schema)으로부터 새겨지고 나의 가장 견고한 결핍이란 지독한 유기불안이었다. 버려진다는 것에 병적인 두려움이 있었다. 사람마다 대응 방법이 다르듯 내가 자연선택하게 된 방법은 <필요>였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다면 버려지지 않을 거라는 관념은 나를 평생 따라다녔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그리고 버려지지 않기 위해 늘 상대방에게 필요한 사람이어야만 했다.
결핍의 원천인 엄마로부터 마음을 많이 건넸던 친구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게 된 이성들에게 나는 필요를 채우기 위한 노력을 했다. 하지만 노력이란 게 으레 그렇듯이 나의 의도가 어떠하든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마련이다.
그저 손을 잡고 싶었을 뿐이고, 그저 그 손을 놓지 않길 간절히 바랐을 뿐이다.
이처럼 손을 잡는다는 행위는 가장 쉬운 스킨십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과의 연결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연결이란 이어지고 또한 끊어질 수 있는 것임에도 다르게 살아온 새로운 세상과 연결되는 순간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 아무튼 둘 다 정상은 아니었지."
처음 만난 날의 일에 대해 묻자 유는 말했다. 그때 나에게 관심이 있었냐는 말에 이미 시간이 오래 지나 디테일한 건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자기 편의대로 기억하는 부분만 말하는 유였다. 처음엔 아무 생각이 없었고 나에 대해서는 이 여자 대체 뭐지?라는 의문만이 가득했으며 우리의 전개 자체가 너무 뚱딴지같았다고.
"손 줘봐요."
"...?"
이상한 걸 본 듯한 눈매, 주춤하며 한 발 물러서던 그. 사흘간의 대화로 그래도 서로 어느 정도는 호감이 있는 줄 알았는데 무안한 걸 티 내고 싶진 않아서 애써 어색하게 웃으며 출구를 찾아갔었지.
그 후로 고작 2시간 이내에 무슨 심경의 변화였는지 이태원역에서 처음 손을 잡았던 그 순간은 지금도 가끔씩 생각이 난다. 그대의 차가운 손. 아니, 그 순간에는 뜨거웠던 손. 우리가 서로의 껍질을 한 겹을 벗고 비어있는 두 손을 마주 잡았던 순간. 유라는 새로운 세상과 연결되었던 시간.
여름에는 땀이 나서, 겨울에는 손이 차가워진다며 손 잡기를 저어하는 그를 보면 어이가 없을 때가 많지만 나도 나대로 팔짱을 끼는 정도로 타협을 보게 되었다. 나의 연결이 손과 손의 이어 짐이라면 유의 연결은 허그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매일 손을 잡지는 않지만 매일 서로 안아주는 것으로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는 것을 확인하곤 한다.
여전히 너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