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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초록 Oct 12. 2024

함께 밥을 먹는 사이

식구라는 말처럼

외박 사건 이후로 나는 그를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다. 노력한다고 말은 했지만 그건 나에게나 중요한 일이지 그에게는 먹고사니즘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알고 있었다. 나에게도 연애가 가장 중요하진 않은 시기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잘 풀리지 않는 그 시기에 연애마저 엉망인 것이, 가장 힘이 되어주길 바란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점이 벅찰 뿐이었다. 


같이 산다는 것은 감정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우리는 표면적으로는 그럭저럭 잘 지냈다. 그야말로 생활을 영위해야겠다. 기분이 좋든 나쁘든 한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같은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물론 일부러 상대와 거리를 두고 상처를 주기 위해 돌발행동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다만 극심한 회피형 인간인 그가 그런 행동을 하려 할 때마다 나는 차분히 설교 아닌 설교를 할 수밖에.


    "우리가 싸우거나 서로 냉정하게 굴어봐야 좋을 건 단 하나도 없어. 당장의 불쾌함은 회피한다고 쳐도 그렇게 차갑게 굴고 서로 상처를 주고 밖으로 일을 하러 나가면 하루종일 기분이 좋을 리가 없잖아. 나는 싸우고 싶지도 않아. 그럴 에너지도 없고."


어지간한 일은 그렇게 진화되곤 했다. 대부분은 그의 무성의한 행동에 내가 화가 나는 케이스였지만 그 역시 나의 1차적 감정은 <상처를 받았다>라는 것이고 <분노>는 2차적 감정임을 상기하는 과정을 거쳤다. 물론 분노보다는 실망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나는 점점 관계에서 많은 걸 포기했다. 발씩 배려를 위해 점점 밀려나던 나는 어느새 벼랑 끝에 있었다. 더는 밀려날 자리가 없었다. 떨어져 버리던가, 눈앞의 사람을 밀치고 자리를 확보하던가.


떨어져 버리고 싶을 정도로 참다못해 터지면 나는 그를 상처주기 위한 말을 뱉었다. 그는 언제나 입을 잘 열지 못했다. 이미 좋지 않은 생각을 해버린 상대방은 본인이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했다. 그리고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걸 상기하게 된다고.


나는 갈등상황에 직접 부딪혀 해결을 하기 위해 대화를 바랐을 뿐인데, 그는 나와 이런 점에서 가장 다른 사람이었다. 결국 자기 잘못이라며 자조하며 자기 연민하는 꼴이 너무 화가 났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태도에 상처를 입었다. 후속행위가 없는 사과나 자기 연민 등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거라며 나는 그를 쏘아붙였다. 관계란 둘이서 하는 조별과제 같은 것인데 나 혼자 애써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극심한 번아웃에 반년 간 시달린 후에 예전에 일하던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며 나는 약간의 개인적인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묵묵부답인 그와 소통하기보다 날카롭게 벼리어진 나 자신을 다듬을 만한 방법을 찾았다.


상처를 받아 화가 나면 나는 청소를 하거나 설거지를 했다. 언제든 우리가 더는 같이 지내지 않게 되면 어차피 다 내가 할 일들이었다. 같이 살면서도 가사활동은 거드는 정도라고 생각하고 지내는 사람이니 늘 하던 일이었지만 더는 그 가사분배 같은 걸로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슬픔에 걸려 넘어져 울어야 한다고 해도 깨끗한 집에서 울고 싶었다.


그리고 음식을 조금 더 열심히 했다. 나중에야 어떻게 되더라도 지금은 그가 나에게 식구였다. 같이 밥을 먹는 사람. 태어나자마자 정해진 가족은 아니지만 내가 선택한 나의 가족이었다. 미운 마음은 차치하더라도 나는 그가 잘 먹고 잘 잤으면 했다.


점점 할 줄 아는 요리의 가짓수가 늘게 되었다. 원래도 음식 하는 걸 좋아하기도 했지만 나 자신을 주부라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서 내가 내키면 하는 수준이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내가 차려 낸 밥을 양껏 먹으며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면 언제나 마음이 묘했다. 혼자인 몸으로 나와 아들키우느라 음식을 해놓고 나가기만 해서 함께 밥을 먹지 못한 나의 엄마보다 이제 같이 먹은 밥그릇의 수가 많은 그였다.


그러다 보면 또 어느 한구석이 너그러워지는 것이다. 미래야 어떻든 지금 이 순간에는 따스함을 주고 싶었다. 열기가 서서히 사그라드는 이 마음이라 해도 심지 끝에 다다르게 되어 연소되기 전에는 제 몫의 불을 피워 올리는 촛불처럼 나는 그에게 아주 작은 빛과 온기를 주고 싶었다.



공백에도 의미가 있다면 우리가 보낸 시간은 천일을 훌쩍 넘겼다. 살아남기 위해 좀처럼 변하지 않는 완고한 그와 다르게, 살아가기 위해 언제나 변화를 추구하는 나의 간극은 점점 넓어진다. 우리는 끝내 아득히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다만 그렇다고 한 들, 지금의 이 순간들을 허투루 보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돌이켜 보면 우리에겐 어떤 기억이 남을지 알 수는 없다. 모든 것이 흐린 분홍빛이 되어 아련히 애틋한 기억들이 남을지, 무간지옥처럼 울부짖다 결국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던 일들만 남을지 알 수 없다. 그조차도 나와 그의 기억은 다르게 쓰이겠지.


내 마음대로 그 기억을 다듬어 기억할 수 있다면 나는 그를 <나의 식구>였다고 남기고 싶다. 영원히 내 곁에 남아줄 것 같았던 내가 택한 나의 가족이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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