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그림, 그리움은 다 같은 곳에서 온 말이듯
브런치를 만든 건 꽤 예전의 일이었다. 아마 2016~7년쯤이었다. 작가가 평생의 드림잡이지만 전업 작가가 될 자신은 없었다. 언젠가는 써야지 하며 빈 채로 둔 지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브런치를 비밀 일기장으로 써왔다. 굳이 이야기하면 누군가 내 서랍을 열어 볼 수는 있겠지만 그런 일은 쉬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며 제멋대로 안심해 버린 채로.
일기라곤 했지만 대부분의 날이 무슨 일을 했고 무얼 먹었다로 다섯 줄 이내로 간략하게 쓰이다가 어떤 이슈가 생기거나 희로애락이 강한 날이 있으면 내용이 길어지는 특징을 스스로 하위 호환 난중일기라고 농담할 정도의 소소한 개인 기록물이었다.
일기를 1년 반쯤 지속했을 때 유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기이하게도 1년 간은 일기를 쓰지 않았다. 참 이상하게도 그 순간을 기록하고 싶지 않았다. 생애 처음이라 느낄 정도로 행복했는데 마음에만 담아두고 싶었던 거였을까. 그때의 일기를 써두지 않은 걸 나는 가끔씩 후회할 때도 있었다.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던 게 첫 이별의 예감이 왔을 무렵이고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슬퍼하며 나 자신을 다잡고 추스리기 위해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는 자연스레 내 일기의 주 된 테마가 되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고약한 성미의 나였기에 아주 오랜만에 재활을 위한 기록물, 그것이 일기였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란 게 약간 불행한 정도가 딱 좋은 온도가 아닌가 생각을 한다. 너무 행복해도, 너무 불행해도 글을 쓰는 일은 힘들어진다. 유와의 관계는 소소하게 행복하고 잔잔하게 일상과 같은 템포로 불행했다. 그렇기 때문에 짤막한 글들을 남겨놓았다.
생업이 디자이너였지만 그림에 소질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마음이 흘러넘칠 것 같은 순간에 잠가놓은 sns에 짧은 문장을 쓰는 것으로 한 데 없는 나의 그리움을 촘촘하게 모아두었다.
< 조각 >
세상 모든 것에서 너의 조각들을 본다
그리고 그것들을 빠짐없이 사랑하기로 한다
< 자기 합리화 >
닮으면 닮은 점이 좋아서
과자 취향 한 둘 쯤이 같아도 운명 같아 벅찬 마음
다르면 다른 점이 반짝여서
우리가 온 별이 달라서 만났겠다며 터져 나오는 웃음
< 주휴수당 >
주 5일제쯤 너는 밤이든 낮이든 내게로 온다
주휴수당이라도 챙겨주어야 할 것처럼
< 카톡 >
카카오톡 알림을 꺼버렸다
유일하게 울리던 카톡은 너의 것이어서
알림 소리에 철렁하는 마음에
시라는 것은 글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제멋대로 끄적인 글들이 시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 낱말들에게 정해진 주인이 있다는 것만큼은 제법 시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늘 꺼끌 하고 서툴렸지만 작고 따스했다.
앞으로도 그런 시간 속에 부딪혀서 깨어지고 또 추슬러서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그 모든 순간들이 사랑이다. 눈에 보이는 성과나 결과로 이루어져 증명하는 게 아니라 매 분, 매 초를 변하는 감정과 함께 우리가 상대방을 하나의 소우주임을 알고 서로의 세계를 조금씩 넓혀가는 이 과정 전체가 사랑이라고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글을 쓰고 여전히 내 곁의 그를 그리워한다. 생을 두고 그리워할 사람이 있어 나의 이야기는 아주 오래 이어져 갈 것임을 알 수 있다. 나의 결과가 아닌 나의 과정인 너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