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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은 Dec 26. 2023

#2. 사, 칠 그리고 팔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단편소설

   극장에는 관객들이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영화를 보러 온 건 작년 여름 이후 처음이었다. 팔 개월 만에 연락해 온 희주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함께 본 영화를 기억하는지 물어왔다.

   <애프터 양>일거야.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이 나온 거 기억해?

   그랬었나?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물론 기억하지.

   우리 만날래?

   나는 응, 하고 메시지를 전송했다.

   희주와는 삼 년 정도 거의 매주 함께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사이였다. 희주와 나는 세이렌이라는 영화 소모임의 회원이었다. 일곱 명이었던 멤버는 영화제 투어를 함께 다닐 정도로 가까웠다가 여느 무리가 그렇듯 한 커플이 탄생한 이후로, 결정적으로는 팬데믹에 의해 셋이 되었다가 결국 희주와 나만 남게 되었다. 그즈음 나는 꽤 복잡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떤 날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실감에 정처 없이 거리를 헤매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금요일 오후가 되면 희주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함께 볼 영화를 정하고 곧 달뜬 기분에 사로잡혔다. 극장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고, 영화가 끝나면 짧은 감상을 주고받는 게 전부였지만 금요일 밤을 정기적으로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나는 그 시간을, 어쩌면 희주를 되찾고 싶었다. 

   엔딩 크레딧의 마지막까지 확인하고 희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호흡이 필요해.

   나는 발끝을 내려다보며 극장을 나왔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텅 빈 복도를 걸으며 희주가 나를 찾아온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일 거라고 그렇게 믿기로 했다. 무수히 많은 금요일 밤을 나누어 준 희주를 위한 우정 같은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희주와 같은 계절에 있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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