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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은 Dec 26. 2023

#3. 사, 칠 그리고 팔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단편소

   조수석에 올라탄 희주는 지난번과 같이 검은색 롱패딩을 입고 남색 벙거지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때보다 얼굴이 부어 보였다. 무릎 위에는 아담한 크기의 보냉 가방이 놓여 있었다. 

   그대로네.

   정지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희주가 말을 걸어왔다. 

   클래식하지?

   나는 당연히 차에 대해 말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십육 년을 나와 함께 한 구형 SUV는 엔진에서 핸들까지 위태로운 소리를 냈지만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 출퇴근용으로 짧은 거리만 다니기도 했고, 일 년에 한 번씩은 점검을 받고 있었다.

   검지손가락 말이야. 어떤 노래를 따라 하는 건가.

   손가락으로 핸들을 두드리는 건 나의 오래된 습관 같은 거였다. 나는 아마도, 하고 대충 둘러댔다. 희주는 질문한 적 없는 사람처럼 창밖을 보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 영화를 보고 나와서 감상을 나눌 때도 이런 순간이 종종 있었다. 나는 희주의 그런 무심함이 편안했다.

   평일 오전의 종합병원은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희주는 보냉 가방을 든 채 빠른 걸음으로 앞장섰다. 엘리베이터에서도 말이 없던 희주는 6층 신생아 중환자실 앞에 도착해서야 가져오라고 했던 신분증을 달라고 했다. 인터폰 너머로 용무를 묻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희주는 보호자라고 짧게 대답했다. 두꺼운 자동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안에는 또 다른 문이 있었다. 문과 문 사이 짧은 복도에는 다른 보호자들이 보냉 가방이나 기저귀를 들고 서 있었다. 나는 희주를 따라 손을 씻고 일회용 비닐 가운과 비닐 장갑을 꼈다. 희주는 우리의 신분증을 간호사에게 건네고 출입 장부를 작성했다. 몇 분 후 정각이 되자 불투명한 유리문이 매끄럽게 열렸다. 면회 시작하겠습니다.

   넓고 환한 병실에는 자줏빛 위생복을 입은 의료진이 곳곳에 서 있었다. 소형 우주선 같기도 한 인큐베이터와 주변의 각종 기계, 숫자가 가득한 모니터가 눈에 들어왔다. 그 우주선 중 하나에 희주의 아기가 있었다. 아직 검붉은색을 띠는 아기는 기저귀를 차고 있어서 가까스로 아기처럼 보였다. 아기는 기도로 연결된 관을 통해 산소를 받아 숨 쉬고 있었다. 힘겹게 부풀어 오르다가 이내 오목하게 꺼지는 가슴이 아기를 더욱 위태로워 보이게 했다. 주치의가 아기의 상태를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해 주는 동안 희주는 소리 없이 울었다. 훌쩍임도 없이 눈물이 연달아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희주의 등에 손을 갖다 댔다. 희주의 등은 조금만 힘을 줘도 무너져버릴 것처럼 가녀렸다. 면회 끝낼게요. 간호사가 말했다.

   주차장으로 오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린 건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차창을 열고 긴 숨을 내쉬었다.

   사람이 숨을 참은 뒤에 본능적으로 하게 되는 건 들이마시기가 아니라 내쉬기야. 지금 아기가 해내야 하는 것도 바로 그거고.

   희주는 화가 난 사람처럼 무뚝뚝하게 말했다. 해는 쨍쨍했고, 먼지 하나 없는 근래 드문 봄날이었다. 주차요원이 다가와 차들이 밀려 있다며 지금 나갈 건지 물었다.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희주는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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