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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은 Dec 26. 2023

#4. 사, 칠 그리고 팔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단편소설

   화요일과 금요일은 희주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강의는 오후로 잡아 두었기에 면회 스케줄이 문제 될 건 없었다. 간혹 선배들에게서 현장이 그립지 않냐는 연락이 오기도 했다. 희곡을 쓰고 연극을 연출한다는 건 다른 나라의 이야기처럼 생경한 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학교로 돌아와 연극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도 차차 연극을 지워나갔다. 소파에 앉아서 영화를 보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가 잠드는 게 하루의 전부였다. 밤이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아침이 찾아왔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작은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기는 희주가 보냉 가방에 넣어 배달한 모유를 통해 조금씩 자라났다. 차이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하루에 이십 그램은 꼭 늘고 있다고 했다. 한 시간에 약 일 그램씩이었다. 시간의 흐름을 느낄 때마다 문득문득 희주의 아기가 떠올랐다. 학생들이 우르르 빠져나간 텅 빈 강의실에 남겨지면서, 연하게 번져가는 노을을 마주하면서, 앞차의 붉은 브레이크 등을 바라보면서도 그랬다.

   희주는 면회 때마다 숨죽여 울었다. 아기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며 입을 꼭 닫고 울음을 참고 있었다. 신생아 중환자실의 낯선 기기들과 치료 경과를 알려주며 미안한 듯 웃어 보이던 주치의의 표정,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질 때 울려대던 경고음과 손닿는 거리에서 뒤척이던 아기의 찡그린 얼굴은 집에 돌아와서도 잘 지워지지 않았다. 면회가 끝나면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도 아기는 일 그램씩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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