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문학창작기금 단편소
하루는 희주를 내려주고 오는 길에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확인해 보니 왼쪽 뒷바퀴에 바람이 빠져 있었다. 지나가던 택시 기사가 사거리 바로 오른편에 정비소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비상등을 켜고 정비소로 들어섰다. 수염을 잔뜩 기른 채 모자를 푹 눌러쓴 정비소 직원이 타이어를 살폈다.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인상이었는데, 고개를 들자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장례식장 먼발치에서 그가 이현의 남자친구라는 말을 슬며시 전해 들었을 뿐이니까. 그는 이현의 전화번호로 장례식장의 위치와 발인 시간을 전해온 사람이었다. 양이현 연인 정성준 드림. 이현은 내가 신작 준비로 한참 예민해 있을 즈음 입단한 막내 단원이었다. 나는 이현이 특출한 재능을 가졌다고 느낀 적은 없었지만, 중저음의 목소리가 묘한 매력을 만들어 낸다는 걸 눈여겨보고 있었다.
이현은 질문이 많은 배우였다. 연극이 대체 뭐죠? 선배가 말한 다른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거죠? 연극이 끝나면 정말 끝이에요? 소주잔을 앞에 놓고도 그런 질문을 던지는 후배는 이현 밖에 없었다. 이현은 대책 없이 취해버린 나를 붙들고 한 잔만 더하자고 떼를 쓰기도 했다.
넌 왜 하고많은 일 중에 연극을 선택했을까.
모르겠어요. 사실 전 해가 잔뜩 드는 한갓진 길가에 앉아서 책이나 실컷 읽으며 살고 싶었거든요.
그러면 되지 않나? 그런 거라면 아주 쉬울 텐데.
맞아요. 아주 쉬울 것 같아서 미뤄 두는 거예요. 언제든지 결심만 서면 되니까요. 그럼 선배는요? 왜 연극 같은 걸 하는 건데요?
나는.
이현은 나를 머쓱하게 만들 의도는 없었다는 듯 호탕하게 웃었고 나는 이 애는 웃음소리마저 좋구나, 생각하며 같이 웃었다. 정말이지 그 웃음은 누구라도 쳐다보게 만들 정도로 귀한 것이었다. 이현과 긴 대화를 나눈 건 그날이 다였다. 나는 왜 연극 같은 걸 하고 살았던 걸까. 분명 이유가 있었겠지만, 기억나지 않는 것보다 허망한 사실은 그게 무엇이건 이젠 아무런 소용이 없어져 버렸다는 데에 있었다. 우리 중 누구도 이현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까닭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끝끝내 그 작품을 올리지 못했다.
다 됐습니다. 공기압 점검해 보니 다른 쪽들은 괜찮고요, 이게 박혀 있었네요. 편마모도 없고, 펑크도 때워 뒀으니 지금처럼 잘 관리해 주시면 됩니다.
그가 내민 건 작은 큐빅 같은 액세서리였다. 그는 카드와 영수증을 건네며 내가 후진으로 차선에 진입할 수 있게 도로를 막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