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문학창작기금 단편소설
자가 호흡이 급선무래.
희주가 말하는 동안 나는 겨울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가늠해 보고 있었다. 어딘가 수척해 보이는 희주의 검은색 롱패딩이 계절에 맞지 않게 느껴졌다. 퇴근길을 서두르는 사람들이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겨울의 끝을 지나는 사람들 속에서 희주는 외따로 한겨울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왜 나를 찾아왔어? 당연히 물어야 할 말이지만 할 수 없었다. 지금 희주는 혼자 다른 계절에 있었다.
기저귀, 물티슈 그리고 영양제까지 신생아 중환자실에 주고 오는 길이야.
그러니까 네가 아기를 낳았다는 거야?
희주는 건너편의 신호등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호등의 초록이 얼마 남지 않아 경고음이 울리고 있었다.
우리는 횡단보도를 건너서 죽 전문 식당으로 들어갔다. 희주는 미역이 들어간 죽을 주문했고 나는 먹지 않기로 했다. 티브이에서는 튀르키예의 지진 피해 현장이 나오고 있었다. 건물이 무너지는 영상이 몇 번씩 반복되고 그때마다 거대한 분진이 계속해서 화면을 메우고 있었다. 소리가 꺼진 티브이 화면은 폐허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고요함이 주는 어떤 황폐함이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희주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죽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희주가 죽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고 우리는 식당 앞에서 헤어졌다. 그날 기억나는 건 이런 정도였다. 나는 축하와 위로 사이에서 아무것도 고르지 못했다. 옷깃을 여미며 극장까지 빠르게 걸어가면서 어쨌든 아직은 겨울이라고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