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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소연 Jul 23. 2023

강도당한 사람의  마음을 아는 일 (1)

영화 <쓰리 빌보드>(2018)


여기 분노하는 산처럼 타오르는 모성이 있다. 영화 <쓰리 빌보드>의 밀드레드는 도로변 길가에 방치된 세 개의 광고판 위에 딸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세 개의 문장을 ‘세운다’.


1. 윌러비 서장, 어떻게 돼가고 있지?

2. 아직도 체포하지 못했다고?

3. 죽어가면서 강간당했다      


그녀의 딸은 강간당하고 살해되었으나 증거 부족으로 범인을 찾을 길이 막혀 수사는 오리무중에 빠진 지 오래된 상태다. 타인에 의해 자행된 무고하고 참혹한 죽음과 그 부재를 견뎌야 하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만이 있고 가해자를 찾을 수 없을 때, 그 분노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밀드레드가 생각해 낸 묘안은 이 마을의 경찰서장인 윌러비를 저격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말’로써 자신의 분노를 알리고 딸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국법을 어기고 자신의 혈족에 대한 애도를 단행한 안티고네처럼 밀드레드는 마을 신부의 만류와 남편의 윽박에도 제 딸을 죽인 범인을 찾아내야 한다는 의사를 관철시킨다. 밀드레드가 윌러비 서장을 저격한 이유는 마을 신부를 향해 한 말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같은 옷을 맞춰 입고, 자신들의 아지트가 있는 조직(갱단)에 들어갔으면, 그 일원(갱)이 죄를 자행했을 때 그 위층에서 담배를 피우며 모른 척한 당신 또한 죄가 있다. 이런 이유로 윌러비 서장 또한 자신의 마을에서 일어난 범죄에 대해 모른 척한 죄가 있다. 그러므로 윌러비 서장, 책임져라, 내 딸의 죽음에 대해.     


강도와 강도당한 사람의 마음을 아는 일
이 도시, 이 세기, 이 삶에서 살아내려는 여성이라면
그래야 하듯……
우리 각자 단정하거나 흐트러진 아름다운 몸을
나무나 음악보다 더 사랑했다. (마치 몸인 듯, 그리고
몸이지만,
우리의 문자 그대로의 인생에서 대략
아직 헤아리지 못한 존재들의 몸을 사랑하며)

- 에이드리언 리치, 「의식과 기원의 역사」 중*      


죽음은 자신이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존재의 부재를 일깨운다. 밀드레드가 딸과 말다툼을 하다 서로에게 격렬한 저주를 퍼부은 바로 그날에 딸이 죽은 것은 무슨 신의 장난인가? 그렇다면 살아남은 자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에게 주었던 상처와 죄책감을 곱씹으며 살아야 할 형벌만이 남은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일부인 기억을 지워 버린 채 살아야 하는 미아의 길만 남은 것인가?

우리에게는 그 부재의 고통 속에서 하나의 감각을 ‘되살려’ 내는 길이 남아 있다. 바로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는 길. 내가 언제라도 누군가에게 고통을 가하고 상처를 줄 수 있는 존재일 수 있음을 자각하는 일. 내가 “아직 헤아리지 못한 존재들의 몸을 사랑하는” 일.  



* 에이드리언 리치 지음, 『공통 언어를 향한 꿈』, 허현숙 옮김, 민음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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