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소연 Jul 24. 2023

강도당한 사람의
마음을 아는 일 (2)

영화 <쓰리 빌보드>(2018)


밀드레드는 경찰서에서 윌러비 서장과 각을 세우며 언쟁을 벌이다 췌장암 투병 중인 서장이 그녀의 얼굴에 피를 토하자 곧바로 언쟁을 멈추고 사람을 부르러 달려 나간다. 밀드레드의 바로 그 난감한 얼굴. 나만큼이나 저 사람도 고통스러운 투쟁 중임을 자각했을 때의 난감하고 당황한 그 얼굴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윌러비 서장은 투병의 고통을 끊어내기 위해 자살하기 전 3명의 사람에게 유서를 남긴다. 아내, 밀드레드, 딕슨 경관. 그중에서 밀드레드에게 보낸 편지는 무고한 이의 죽음을 막지 못한 공동체의 책임감을 고백하는 통렬한 사과였다. 

지금 우리는 현실에서 무고한 죽음들을 목격한다. 지난 3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시청 합동 분향소에서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와 진상 규명, 특별법 제정을 위한 열흘간의 전국 순례 버스에 올랐다. 참사 150일 만에 그들은 연대하여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기 시작했다. 진실 버스에 오른 한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살아 있는 딸과 꽃구경을 가도 모자랄 판에 진실 버스가 웬 말인가 싶어 무너지다가도
 아이의 억울함에 다시금 짐을 싸게 됐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 가영이와 팽목항에서 한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잘 봐둬라, 그리고 기억해라. 정치가 저급해지면 너희들의 미래를  
 뺏기게 되는 것이다’라고 가영이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만 하고 행동하지 못한 결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빼앗겼습니다.
 이제는 다시 되찾아야 합니다. (…) 
 반드시 남아 있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되찾아 돌아오겠습니다.”*     


가영이의 어머니는 지금 여기의 밀드레드다. 그리하여 오늘의 밀드레드는 말하고 또 말하며 ‘언어’로 진실을 세우려 한다. 누군가의 방화로 화염에 휩싸인 광고판 앞에 무릎을 꿇고서 밀드레드는 통한의 눈물을 흘린다. 딸을 보호하지 못한 죄, 그녀의 열망을 헤아리지 못한 죄는 불길처럼 치솟아 올라 검은 밤하늘을 휘감는다. 이제 밀드레드의 분노는 경찰서로 향한다. 그녀가 투척한 화염병이 경찰서를 불을 질렀을 때, 그 불에 딕슨 경관이 화상을 입었을 때 두 사람은 비로소 서로를 알아보기 시작한다. 서로의 존재를 헤아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서로를 찾을 때까지, 우리는 혼자다

- 에이드리언 리치, 「굶주림」 중**     


밀드레드는 혼자서 싸웠지만, 그녀의 싸움을 TV로 지켜보던 익명의 누군가가 광고판의 광고비를 후원하고, 딕슨 경관은 밀드레드의 분노에 기꺼이 동참한다. 그 분노의 방향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누구와 함께하는가다. 나는 어머니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글을 쓰고 이 글의 방향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알고 있다. 그것은 내가 헤아리지 못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 향하는 것이다.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는 나의 고통이 우리의 고통이 될 때, 그 고통이 ‘공통 언어’로서 말해질 때, 그 고통은 세상을 지배하는 힘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 몸에 새겨진 고통이 공통 언어가 될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찾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  박가영 씨의 어머니 최선미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의 호소 발언(2023.03.27.)

** 에이드리언 리치 지음, 『공통 언어를 향한 꿈』, 허현숙 옮김, 민음사, 202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