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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nie Sep 14. 2021

내가 선택한 1인 기업

정답은 N잡이었다!

단순히 나만의 공간에서 조용히 일하고 싶다는 욕심이 1인 기업가의 길로 이끌었다. 요즘에야 1인 기업의 강점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은데, 예전에는 그저 '프리랜서'라는 말이 있었을 뿐이었다. 당연히 이 길에 어떻게 들어서야 할지,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모른 채 현실에 부딪혀야 했다.


1인 기업은 주로 지식서비스 분야나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개인이 창업한 기업을 말한다. 스마트 스토어를 운영하거나 마케터,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분들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1인 기업은 보통 디지털 노마드로 생활하고 있는데, 이런 환경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르겠다.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여행하듯 일하는 삶이 주는 여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선택했던 건 '일러스트레이터'로써 일을 하는 것.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어 걷기 시작한 길이었다. 그렇게 내가 모르는 사이 나는 1인 기업가가 되어 있었다. 이 과정에서 고민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먼저, 취미가 일이 되니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오는 행복이 이전 같지 않았다. 게다가 경제적 자유가 생기면 시간이 없어지는 기이한 일이 생겼다. 일하는 시간은 점차 늘어났고, 이 안에서 어떤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자유로울 수 없을까?

내 스스로가 사장님이 되니 일하는 만큼 수입이 생겼다. 보통 사장님은 '일하는 만큼 벌어요.'라고 하지 않던가. 그게 딱 내 이야기였다. 그렇다 보니 '시간=돈'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내 꿈은 적게 일하고 적당히 버는 것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매일 똑같이 일을 하다 봄이 오니 공방에 손님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야 하는 이야기인데, 공방의 성수기는 봄이었던 것 같다! 나는 갑자기 바빠졌고, 회사 다닐 때의 월급 두 배 이상의 돈을 만져보게 되기도 했다. 정말 바빠서 개인 시간이 별로 없었지만, 내게도 새로운 기회가 찾아와서 좀 더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정답은 N잡이었다!

공방 수입에 대한 고민이 무색해질 정도로 생각보다 많은 기회들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공방에서 수업을 하는 것만 고려했는데, 각종 문화센터에서도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백화점과 도서관, 센터 등 여러 곳으로 출강 의뢰가 들어왔다. 작업실에서는 2-4명의 소인원으로 수업하던 터라 20명 가까이 되는 수강생분들과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얼마나 두근거리고 무서웠는지 모르겠다. 


같이 판매하던 천연비누도 답례품 제작 의뢰가 들어오면서 전세가 완전히 역전됐다. 한 달에 300개 이상의 비누를 만들어 납품해야 하는 상황으로 엄마와 같이 비누를 포장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던 공방 일이 이때에는 환영받는 일로 자리매김했다.


항상 수입에 대한 불안감이 내 곁을 맴돌았는데,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바빠지면서 감정을 돌아볼 틈도 없어졌다. 이 모든 일들이 공간이 있음에 찾아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나'라는 사람을 대변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서는 N잡이 필수 요소로 자리 잡혔다. 당시에는 N잡이라는 단어도 흔하지 않아, 내 정체성을 찾는 데에 꽤나 많은 시간을 쏟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해온 것들이 N잡으로 불리는 것이었고, 별다른 소속 없이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 공방은 그림 작업이 위주인 그림 공방이지만, N잡에 관련해서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비슷하게 적용될 것 같다. 가장 쉽고 시간만 쏟으면 되는 것은 '아르바이트'인데, 직접 해본 결과 삶의 만족도가 낮고 내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아 급한 불을 끄고 나서는 하지 않았다. 다음으로는 강의 업무가 꽤 안정적인 수입을 안겨주었는데, 클래스를 이어가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아마 다른 공방의 선생님들도 클래스로 얻는 안정감이 있으시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아무도 안 만나고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림작가가 되고 싶어요.



하루는 어떤 수강생이 찾아와서 이런 이야기를 건넸다. 짧은 순간이지만 굉장히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내가 강의 업무를 하지 않았을 때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내가 집에서 외주 작업만 했을 때에도 아무도 만나지 않았던가?'

전혀 아니었다. 조금 더 큰 작업일수록 직접 만나서 미팅을 해야 했고, 책을 출간할 때에도 담당자분들을 직접 찾아뵙고 계약서를 작성했다. 때에 따라서 어떤 프로젝트는 주기적으로 만남을 가져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비대면으로 하는 일들이 많았지만 얼굴을 보고 진행하는 일들도 있었던 기억들이다.

강의 업무는 주기적이지 않은 작업 의뢰를 보완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고, 안정적으로 창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정말 실력이 뛰어나 혼자 작업을 하는 것에 경제적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면, 혼자 일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결국 공방 창업은 나를 만능 엔터테이너로 만들어주었다. 항상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었지만, 나의 한계를 계속해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내게 대화를 건네었던 이 친구가 이런 것들을 이해했을는지 모르겠다. 다만, 그 친구도 본인이 원하는 길을 잘 찾아서 걸어갔으면 좋겠다.



이메일 slonie@naver.com

인스타그램 @workroom921 / @by_slo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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