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캠핑은 언제나 맑음
캠핑을 다니시는 분들의 SNS 사진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감성적인 풍경을 담은 사진도 그리고 보기만 해도 입가에 군침이 도는 먹음직한 음식을 찍은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진들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아 저도 캠핑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고, 캠핑을 하게 되면 저도 감성이 상한가 치는 그런 사진을 찍고, 완벽한 플레이팅의 음식을 준비하고 사진 속에 담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SNS 같지 않고 냉정했습니다. 견딜 수 없는 장비의 크기와 무게감 때문에 감성 캠핑은 포기하게 되었고, 요리 솜씨와 맛에 대한 센스가 바람에 날아 자유를 찾아 떠난 머리숱만큼이나 없는 아저씨이다 보니 먹음직한 음식 사진보다 '사람이 이걸 먹는다고?.' 하는 의문이 생기는 사진을 남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 같은 똥손도 캠핑을 다니는데, 다른 이유도 아닌 요리 때문에 캠핑을 망설이는 분들에게 '이런 놈도 캠핑을 다니는구나.'라는 용기를 드리기 위해 그동안 제가 캠핑을 다니며 망했던 음식들 사진을 공개합니다. 더 많은, 그리고 다양한 음식을 도전했지만, 사진으로 남은 음식들만 공개합니다.
1. 전
위 사진의 어떤 음식인 것 같으신가요? 바로 감자전입니다. 아들과 둘이 캠핑 갔을 때 열심히 다른 아이들과 방방장에서 뛰어놀고 있는 아들에게 간식으로 주기 위해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담은 감자전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레시피대로 감자를 갈아 반죽을 준비했고, 캡틴 아메리카의 비브라늄 방패보다 튼튼한 위용과 묵직한 무게를 자랑하는 무쇠 그리들을 꺼내 아낌없이 콩기름을 둘렀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머릿속에서는 맛있게 감자전을 먹으며 "우리 아빠 최고!" 하며 엄지 척을 발사하는 아들의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하지만 감자전은 라면만 간신히 끓일 줄 아는 아빠에게 결코 호락호락한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영상으로 봤을 때 다른 분들은 앞 뒤로 착착! 뒤집기만 하면 노릇노릇하고 맛있는 감자전이 완성되는데, 마음처럼 감자전이 뒤집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기름이 부족한가 싶어 콩기름을 거의 붓는 수준으로 했지만 오히려 바닥에 더 눌어붙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출출한 아들을 생각하니 어떻게라도 먹을 수 있게 만들었어야 했습니다. 바닥에 눌어붙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감자전이라 부르고 싶지만, 결코 감자전이라 부를 수 없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홍길동 같은 전을 만들어냈습니다.
아이들과 신나게 놀고 온 아들은 텐트로 오자마자 "아빠 배고픈데 간식 줘!"를 외쳤고 저는 수줍게 아들에게 제가 만든 감자전을 꺼냈습니다. 순간 아들의 "아빠가 나를 음식으로 암살하려 한다."라는 표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삼삼아, 아빠가 너에 대한 사랑을 듬뿍 담아 만든 감자전이야, 한 입만 먹어 봐."
그렇게 저는 맛으로 결코 표현할 수 없는 부정(父情)을 듬뿍 담은 감자전을 아들의 입에 쏙 넣어줬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부정(父情)을 부정(不正)하며 "퉤.." 하고 뱉었습니다. 그리고 "아빠 맛없어. 다른 거 줘!"라고 했습니다.
저는 맛이 없을 수가 없다며 남은 감자전을 집어 입에 넣었습니다.
"퉤.."
그리고 저를 바라보고 있는 아들을 향해 한 손을 뻗고 못난 아버지를 둔 아들에게 "미안하다!"라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투표를 마치고 혼자 캠핑을 떠났습니다. 3월이지만 산속에 위치한 캠핑장이라 그런지 한겨울 날씨처럼 추웠고, 따뜻한 음식에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며 몸을 녹이고 싶어 김치전을 만들어 먹기로 했습니다.
인간은 본성상 망각하는 동물이라는 말처럼 과거 괴물전 아니 감자전을 망쳤던 경험을 잊어버리고 김치전에 막걸리를 먹고 싶다는 식욕만을 앞세운 채 김치전을 준비했습니다.
역시 인터넷에는 다양한 레시피들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쉬워 보이는 레시피를 따라 김치 등의 재료를 넣어 반죽을 하고 이번에는 그리들이 아닌 구이바다의 전골 팬 위에 반죽을 붓고 전을 부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모양이 틀어지기는 했지만 전이 뒤집어지고, 바닥에 전혀 눌어붙지도 않고 겉으로 보기에 적당히 익은 모습을 보며 오늘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김치전을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냉장고에 넣지 않고 밖에 놓기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얼음이 얼어 있는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신 뒤 외관상 멀쩡해 보이고 향도 김치전 특유의 향이 나는 김치전을 입에 넣었습니다. 김치전의 따뜻함이 입안을 넘어온 몸으로 번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 제가 느낀 것은 냉장고에서 금방 꺼낸 김치를 한 입 씹었을 때 느끼는 차가운 아삭아삭함과 익지 않은 반죽 뭉치였습니다. 이것만 그러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른 김치전을 집어 먹었을 때도 역시 비슷한 겉바속촉 한 맛이었습니다.
치킨도 아니고 겉바속촉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바로 다시 전들을 전골 팬 위에 올려 다시 부치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속까지 제대로 익혀야겠다는 생각에 불을 가장 강하게 하고 뒤집개로 전을 꽉꽉 눌러가며 부쳤습니다.
결과는 차마 사진으로 찍지 못했지만, 내가 김치전을 부친 건지 밤하늘을 부친 건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겉탄속탄이었지만 나름 바삭바삭한 맛에 위안 삼으며 막걸리와 함께 다신 캠핑에서 어떤 전이든 도전하지 말자라고 다짐했습니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 영감님께서 만일 저의 이런 모습을 보셨다면 "내가 저러라고 까마귀에게 간을 쪼여가며 불을 가져다줬나." 하며 자괴감이 드셨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프로메테우스 영감님..
다음에는 면 종류, 고기 종류 음식의 망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