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입니다.
할로윈 캠핑 이후 드디어 캠핑을 다녀왔습니다.
그동안 아버지 제사, 김장, 어머니 생신 등 다양한 경조사 때문에 캠핑을 가고 싶어도 가지 못했는데, 아들과 작년에 이어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은 마음에 캠핑을 다녀왔습니다.
(아들도 캠핑을 가고 싶어 하긴 했지만, 사실 제가 더 가고 싶었죠. 새로 산 장비도 있고..)
아내에게 "올해는 너도 캠핑장에서 특별한 캠핑을 보내지 않을래?"라고 제안했지만, 아내는 단호하게 "싫어."라고 대답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왜?"라고 물었을 때 "추워"라고 답합니다.
그렇습니다. 저희 아내는 추위를 많이 탑니다. 그래서 연애할 때 겨울이 되면 손도 잡아주고, 안아주고 했는데... (연애할 때 추위를 많이 타는 아내를 따뜻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포옹한 거지 절대 4B 연필보다 더 진한 흑심으로 안았던 것은 절대 아닙니다.)
지금은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불타오르는 용광로 같은 제 품에 안기는 거보다 저보다 사이즈는 작지만 은은한 발열효과를 가진 핫팩 같은 아들 품에 안기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출발 전 캠핑 장비를 준비하는데, 날씨도 추워졌고 겨울 캠핑 안전에 대한 뉴스를 많이 접한 아내는 노파심이 드는지 이것저것 저를 따라다니며 점검하기 시작합니다.
"일산화탄소 경보기 2개 챙겼지? 등유는 넉넉하게 준비한 거야? 핫팩도 몇 개 더 챙겨. 아이 옷이랑 내복도 몇 벌 더 가져가고."
아들과 둘이 가는 캠핑이기에 짐을 최소한으로 챙기고 드디어 출발합니다.
아들은 이미 친구들에게 이번 크리스마스 캠핑을 얼마나 자랑했던지, 제 전화기를 뺏어 친구들에게 "나 캠핑 간다!"라며 자랑 전화를 합니다. 수화기 너머로 아들의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목소리가 들리네요. 이 순간만큼은 캠핑을 시작한 것이 뿌듯해집니다.
평소 아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려 노력하지만, 평일 저녁이면 저는 일에 지쳐 퇴근한 상태고 아들은 구몬에 지친 상태라 저희 부자는 서로 잠들기 바빠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합니다. 하지만 캠핑장을 가는 차 안에서 저희 부자는 평일에 나누지 못한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물론 대화의 대부분은 아들이 제게 쉴 새 없이 말하는 것인데, 학교, 태권도장, 친구들 이야기, 그리고 요즘 푹 빠져 있는 포켓몬 이야기 등입니다.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캠핑장에 도착했습니다. 저희가 예약한 사이트에는 그동안 사람이 방문하지 않았는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걱정 없습니다. 제게는 방수포도 넉넉하게 2장이 있고, 겨울 캠핑인데 이 정도는 각오하고 온 것이니까요.
아들은 도착하자마자 함께 살펴봤던 수영장을 얼려 만든 빙판 위에서 다른 아이들처럼 썰매를 타기 시작합니다. 아이에게 간단하게 안전에 대해 설명해준 뒤 저는 텐트를 설치하러 갑니다.
아들과 제가 1박 2일 동안 있을 아늑한 쉼터를 빨리 만들고 싶은 마음에 서두르는데, 제 등에 눈덩이 하나가 날아듭니다. 뒤를 쳐다보니 아들이 눈뭉치를 들고 "캬캬캬!" 하며 웃고 있네요. 저희 때는 아버지를 포함한 어른에 대해 동경심과 일종의 겁 같은 것이 있었는데 아들은 지금 이순간만큼은 겁대가리를 일시불로 상실한 것 같습니다. 이럴 때는 과거 홍제동 랜디 존슨이라 불리던 아버지의 묵직한 사랑의 돌직구를 담은 참교육이 필요한 순간인 것 같습니다.
아들과 눈싸움을 한 뒤 (뭐.. 거의 홍제동 랜디 존슨이 눈 좀 맞아줬습니다. 크리스마스인데 아이한테 져 줘야죠.) 텐트를 치고 나니 벌써 저녁을 먹을 시간입니다.
이번 캠핑에서 저녁은 아들이 한 달 전부터 다음에 캠핑 가면 먹고 싶다고 노래 부르던 바로 '수블라키'입니다. 낯선 이름이라 생각 드는 분도 있겠지만 이 요리는 그리스에서는 수블라키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꼬치"라 부르는 음식입니다.
고기와 파프리카, 방울토마토 그리고 버섯을 골고루 아이와 함께 나무 꼬치에 하나씩 끼워 넣는데, 캠핑에서 아이와 요리를 함께 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아이는 한 번씩 꼬치를 저를 찔러보기도 하고, 제게 눈 감고 '아~' 해보라고 한 뒤 생고기를 제 입에 집어넣네요.
이 녀석 아들만 아니었다면 눈에 파묻은 뒤 1시간 후에 꺼내오고 싶습니다.
아이와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꼬치에 꿴 수블라키를 구이바다 위에 올려놓고 굽기 시작합니다. 정말 구이바다는 캠핑에서 모든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혁명적인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듭니다. 아이는 아직 익지도 않았는데, 옆에서 빨리 달라고 성화입니다.
적당히 먹음직스럽게 익은 고기만 골라 먹으려는 아들에게 그렇게 편식하면 캠핑에서 다시는 수블라키는 없다!라고 협박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파프리카와 방울토마토도 먹기 시작합니다. 얘가 누구 닮아 이렇게 편식하나 싶었는데 저를 닮았네요.
수블라키로 특별한 크리스마스이브의 저녁을 마친 저희 부자는 이제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아이는 제 핸드폰을 뺏어 포켓몬 고를 하기 시작하고, 저는 2023년부터 3일에 한 권의 책을 읽기로 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날 샀던 책을 꺼냅니다.
딴 돈의 절반만 가져가는 타짜의 고니처럼 대인배스럽게 번 돈의 절반을 책도 읽고 망해가는 출판업계를 살리고도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하고 번 돈의 10%를 책을 사서 독서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 원대한 꿈으로 선택한 첫 책은 <데일 카네기 성공의 법칙>이라는 책인데, 새로운 한 해가 오기 전 저도 성공에 대한 책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아들이 책을 뺏더니 자기가 포켓몬 잡는 것을 지켜보고 옆에서 응원해달라고 합니다.
아이와 포켓몬 고를 함께 하고, 같이 넷플릭스로 만화를 보다 보니 벌써 시간이 매너타임을 향해 달려갑니다.
캠핑장에서는 바른생활 어린이로 돌변하는 아들이 캠장님의 "매너타임입니다." 하는 외침에 이제 우리도 자러 가자고 합니다. 역시 제가 적어도 캠핑장에서만큼은 아이 교육을 잘 시켰구나 싶어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아이와 함께 쉘터 안에 설치한 2인용 텐트에 들어가 나란히 눕습니다. 지금은 공간이 넉넉하지만 이 아이가 조금 더 크면 공간이 부족해지겠지요. 그 시간이 최대한 천천히 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아들은 누워서 "아빠 오늘 너무 재미있어" 하며 저를 안아줍니다. 제 품에 안겨 있는 아이에게 "삼삼아 너 몇 살 때까지 아빠 안아줄 거야?" 라고 물으니 "당연히 죽을 때까지!"라고 합니다. 이 녀석이 중학생이 되어서도 이렇게 안긴다면 살짝 징그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빠 품이 좋다는 아이를 보니 여러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너 자꾸 왜 내 찌찌를 만지는거니....
그리고 저를 바라보며 중요한 질문은 던지네요.
"아빠, 그런데 내 크리스마스 선물은?"
"크리스마스 선물? 아빠와의 캠핑이 너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지."
"아니, 아빠 장난하지 말고 이제 선물 줘야지!"
"선물은 머리 위에 양말 걸고 자면 그 안에 산타 할아버지가 넣어놓고 가시는 거야. 지금 선물이 어딨 어?"
"그래? 그럼 양말 걸어야겠다. 아빠 그런데 내 양말은 작은데 아빠 양말 걸고 자면 안 돼?"
결국 저희 부자는 머리맡에 제 양말 한 켤레를 한 짝은 제 머리 위에 다른 한 짝은 아들의 머리 위에 두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들 머리 위에 놓인 양말에는 신비아파트 키즈 폰이 들어 있었고, 아들은 산타할아버지가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을 주셨다며 아침부터 기쁨의 괴성을 질러댔습니다.
아들아.. 미안한데 그거 너희 엄마가 이미 다 막아놔서 전화만 된단다.
아빠, 엄마랑 전화 통화 많이 하자! 많이 많이 우리는 가족이라 통화 무제한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