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인 바깥양반 역할을 하고 있는 아내가 요즘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늦게 끝나는 날이 많아 요즘
아이를 재워야 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9살이면 혼자 잠들 법도 한데 아직 저희 아이는 엄마나 아빠의 손을
꼭 잡거나 등을 계속 토닥여줘야 잠이 들기 때문에 항상 옆에서 아내 또는 제가 잠드는 모습을 지켜봐야 합니다.
아내도 그렇지만 저도 아이를 재우기 전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주로 아이가 말하는 것을 들어주는 편인데,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았던 이야기, 태권도장에서 친구, 동생들과 피구 한 이야기, 요즘 아이가 푹 빠져 있는 포켓몬고의 포켓몬 이야기 등을 다양한 이야기를 하다 잠이 듭니다.
어제는 학교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제게 "아빠, 그런데 이번 주에는 우리 캠핑 가는 거야?"라고 물었습니다.
이번 주말에 제가 약속이 있어 캠핑을 갈 수 없다고 아이에게 말했더니 잠들기 위해 누워 있던 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대성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빠! 왜! 왜! 이번 주도 캠핑을 안 가는데, 지난번 핼러윈 이후로 우리 한 번도 안 갔잖아. 아빠는 이제 나랑
캠핑 다니기 싫은 거지!"
핼러윈 이후 주말마다 아버지 제사, 김장, 친척 방문 등 캠핑을 갈 수 없는 상황들이 발생했습니다.
아이에게 그동안 있었던 사정 때문에 캠핑을 가지 못했다고 차분히 설명했지만, 아이는 여전히 "나는 아빠랑 캠핑 가고 싶단 말이야." 라며 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번 주는 힘들 것 같고, 상황 봐서 다음 주에 캠핑을 가자고 해도 아이는 여전히 울며 이번 주에 꼭 캠핑을 가고 싶다고 합니다. 아이를 달래던 저는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삼삼이는 아빠랑 캠핑 가는 게 왜 좋니?"
"아빠랑 캠핑 가면 아빠가 나랑 많이 놀아주고 이상한 요리도 같이 하고 재밌단 말이야."
생각해보니 평일에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지 않다 보니 아들과 둘이 캠핑을 가면 안전과 다른 캠퍼분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아이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려 했던 것 같습니다. 활동량이 많은 아들을 매너 타임에 맞춰 떡실신시키기 위한 연인들이나 할 법한 '나 잡아봐라' 놀이를 비롯한 다양한 놀이와 평소 집에서 보지 않던 '브래드 이발소' 아이와 함께 보기, 아들과 함께 요리 하기 (유튜브에서는 먹음직하게 만드는 데 이상하게 저와 아들이 만들면 암살용 요리가 됩니다.) 함께 불멍 하며 부자가 나란히 멍 때리거나 별자리 찾기, 곤충 채집 등 아들과 캠핑을 다니면서 여러 가지 추억을 쌓은 것 같습니다.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데 아들은 제 팔을 잡고 이제 애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빠! 이번 주에 캠핑 가면 차에서 핸드폰만 하지 않고 아빠랑 이야기하면서 갈게. 아니 핸드폰 놓고 갈게. 우리 캠핑 가자."
아들이 자신의 보물 1호인 핸드폰 (개통하지 않은 제가 쓰던 핸드폰인데, 아들은 집에서 이 낡은 핸드폰으로 게임도 하고 유튜브도 하고 영상을 찍어 편집하고 유튜브에 올리기도 합니다.)을 가져가지 않겠다니 좀 놀라기는 했습니다.
"삼삼이, 그 정도로 캠핑을 가고 싶니?"
"응, 아빠 이번에 가면 아빠 말도 잘 들을게. 우리 둘이 캠핑 가자. 수블라키도 같이 만들어서 먹고 (요즘 아들은 느닷없이 수블라키라는 그리스 꼬치 요리에 푹 빠져 있습니다.) 연도 날리고 하자. 아빠도 캠핑 가고 싶잖아."
사실 저도 아들과 함께 캠핑을 가고는 싶지만 이번 주말 후배와 약속이 있는데 멀리서 오는 후배라 약속을 미룰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아이를 설득했지만, 아이의 울음소리는 더 커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 머릿속을 뭔가 떠올랐습니다.
"삼삼아, 그럼 이렇게 하면 어때? 이번 주는 한 주 쉬고, 다음 주에 캠핑 가면 아빠가 캠핑장에서 아빠가 구몬 시키지 않을게."
아들은 갑자기 눈물을 멈추더니 저를 '오~ 이 아저씨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는데' 하는 표정을 짓더니
"그래! 좋아. 그럼 자자."
아들은 빠르게 현실에 타협을 한 뒤 '이리 와서 내 손이나 잡아줘'라는 말과 함께 수면 총에 맞은 것처럼 바로 잠들었습니다.
오늘 하루 피곤했는지 눕자마자 곤히 잠든 아이에게 네가 캠핑장에서 금요일부터 구몬을 하지 않으면 캠핑을 다녀온 일요일 몰아서 해야 한다는 말을 해줬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것이 바로 연륜에서 나오는 조삼모사(朝三暮四) 다. 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소중한 녀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