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처음으로 아들과 단 둘이 가평의 모 캠핑장으로 백패킹(?)을 다녀왔습니다.
금요일 저녁 처음 배낭에 짐을 싸기 전 배낭이 너무 큰 거 아닐까 고민했지만 이것저것 '이것은 반드시 필요해.'라는 의식의 흐름으로 집어넣다 보니 오히려 짐을 넣을 공간이 부족해 아들의 책가방까지 짐을 넣게 되었습니다. 저의 뱃살처럼 점점 부풀어 오르는 배낭을 바라보며 '내가 과연 이걸 짊어머니고 걸을 수 있을까?', '꼭 필요한 것만 넣었는데 왜 이러지.' 하며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출발하는 토요일 아침...
앞으로 짊어 멜 삶의 무게만큼이나 큰 배낭을 바라보는 와이프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며 말합니다.
"이걸 메고 간다고? 내가 버스 정류장까지라도 데려다줄까?"
하지만 저는 이 가정의 듬직한 가장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에게 강한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니, 괜찮아. 나름 백패킹인데 이 정도는 들어야지."
그 말과 동시에 '오늘은 내가 산다니까'라고 당당히 말하며 비틀거리며 제 자리로 쓰러지는 취객처럼 배낭을 메고 몇 번 주저 않는 제 모습을 보더니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준다고 합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가평의 캠핑장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고 싶습니다. 생명을 위협받는 순간 굴리는 잔머리 하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제가 와이프에게 번뜩이는 생존의 아이디어를 제안합니다.
"잣 칼국수 먹고 갈래? 우리 가는 캠핑장 근처에 잣 칼국수 유명한 식당이 있는데 너 빼고 둘이 먹기가 그러네. 우리가 고생은 함께 하지 않아도 몸에 좋은 건 함께 해야지. 잣. 잣. 잣."
"잣(여기서 모음 ㅏ의 발음을 약간 ㅗ와 비슷하게 냈습니다.) 같은 소리 하네. 그냥 힘드니까 데려다 달라고 해."
차마 와이프에게 '너의 남편 체력이 걸음마를 배우는 301호 아가와 맞먹는 체력이라 배낭을 메고 걷기는 힘들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하자던 너와 나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나를 데려다줘야 한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와이프는 아들과 저를 한 번 바라보더니 내가 삼삼이 때문에 데려다준다.. 이러며 캠핑장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습니다.
생각보다 막히지 않게 가평에 도착한 우리는 빠르게 몸에 좋고 값도 은근히 비싼 잣 칼국수를 한 그릇씩 비운뒤 캠핑장으로 갔습니다. 그 캠핑장은 잣나무 숲 속에 있어 덥지도 않고 오히려 시원하며 사방에서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를 난사하고 있었습니다.
데려다만 준다던 와이프도 아이와 함께 산책도 하며, '여기 되게 좋다!'라는 말을 합니다. 막상 와 보면 생각이 달라지나 봅니다.
그때 아들이 엄마에게 대뜸 "엄마, 엄마도 그럼 우리랑 같이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가!"라는 제 속마음에 있는 말을 과감히 합니다.
"삼삼아, 엄마도 아빠랑 삼삼이랑 같이 있다 가고 싶은데, 텐트도 작은 거 가지고 와서 엄마가 잘 자리가 없어."
와이프는 아들을 보며 웃으며 이번 캠핑은 장비 때문에 함께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눈치가 없는 저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습니다.
"차 트렁크에 우리 항상 4인용 텐트 넣고 다니잖아. 그리고 차에 캠핑 장비 다 있어."
순간 와이프가 분노에 찬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며 입모양으로 "***"라고 합니다. 입모양이 뭔지 알 수 없어 다시 한번 묻습니다.
"뭐라고?"
제 귀를 잡더니 작은 목소리로 JYP라고 할 줄 알았는데, "죽을래?"라고 합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하자던 쌍방의 약속을 한쪽이 일방적으로 파기하려 합니다.
결국 와이프는 함께 캠핑을 하지 못해 아쉽다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급 연기를 펼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납니다.
아들과 함께 텐트와 장비 정리를 하는데, 오토캠핑과 다르게 모든 게 순식간에 끝납니다. 배낭에 뭔가 가득 넣은 거 같았는데, 막상 펼쳐보니 평소 캠핑 다닐 때보다 부족한 것이 더 많게만 느껴집니다.
키즈 캠핑장만 다니던 아이라 놀거리도 없고 친구도 없어 아이가 심심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는데, 이 아이 혼자서 너무도 잘 놉니다. 혼자 수도꼭지에 물을 담아 놀기도 하고, 듬성듬성 자란 버섯 구경을 하며 포자를 날리기도 합니다. 물론 저와 함께 개구리도 잡고 쭈쭈바 하나 먹기 위해 30분을 걷기도 했습니다.
코펠을 두고 와서 부득이하게 일회용품을 썼습니다. 아오.. 중요한 밥그릇을 안 챙기다니..
백패킹이라고 와서 핸드폰만 하면 안 되는데 하는 걱정은 잠시 접어도 될 것 같습니다. 아이와 실컷 놀고 나니 슬슬 배가 고파집니다. 아이가 요즘 푹 빠져있는 스테이크가 불리는 서양식 고기구이를 함께 먹으며 저는 술 한잔을 그리고 아이는 콜라를 마시며 풀벌레 소리, 숲내음이 가득한 자연에 취해봅니다.
"삼삼아, 너 그동안 다니던 캠핑장과 다르게 친구들도 없고, 방방장 같은 놀이기구도 없어서 심심하지?"라고 제가 물었을 때 아들은 저를 바라보며 "아니, 난 재미있어. 아빠가 많이 놀아주잖아."라고 대답합니다. 평소 아이와 많이 놀아준다고 생각했는데, 아이 입장에서는 여전히 아빠랑 노는 시간은 부족하고, 함께 노는 시간이 재미있나 봅니다.
오늘 뭐가 제일 좋았냐고 물어보니 저는 더워 죽는 줄 알았던 쭈쭈바를 사러 방황했던 30분의 시간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개구리를 잡았을 때나 파이어스틱으로 둘이 불장난했던 순간을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순간을 이야기해 왜 그때가 좋았냐고 물어봤습니다.
"아빠 손 잡고 함께 걸어서."
와이프와 연애할 때 그녀의 손을 잡고 걷는 순간이 제일 행복했는데 (물론 지금은 안 잡아줘요. 훠이~ 하며 저리 가래요.) 이 아이에게 제일 행복한 순간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걷는 시간이라니 많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아이의 아빠라서 '행복하다'라는 생각도 듭니다.
좁은 2인용 텐트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영화를 한 편 보고 슬슬 잠이 들 시간입니다. 아이는 엄마, 할머니와 영상통화를 하며 오늘 하루 너무 신난다고 합니다. 제 기분도 덩달아 좋아집니다. 와이프와 어머니는 아이에게 잘 자라는 인사와 밤에 춥지 않으면 좋겠다고 걱정하십니다. 제 걱정은 안 해주네요. 저도 알고 보면 귀한 자식인데...
다음날 아침 새소리, 바람소리에 일어났습니다. 아이가 일어나자마자 하는 말은
"아! 어제로 돌아가고 싶다."
저도 똑같은 마음입니다. 하지만 이제 아침을 해결하고 짐을 정리한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아침은 아이가 좋아하는 칼국수입니다. 사진으로는 맛이 더럽게 없어 보이긴 하지만 맛있었습니다. 왜냐면 아빠의 사랑이 듬뿍 들어갔거든요. 후훗..
다시 배낭에 주섬주섬 짐을 넣고 아이와 함께 캠핑장을 나섭니다. 약간의 짐이 줄어 아주 조금 미세하게 가벼워지긴 했지만, 휘청휘청합니다. 하지만 정류장까지 열심히 걸어야겠죠.
완벽하게 오지로 떠난 백패킹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 부자에게는 다른 어느 캠핑보다 더 기억에 남는 백패킹이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들에게 다음에는 아빠 혼자 백패킹 다녀와도 될까?라고 물으니 만일 그런다면 제가 잠든 새벽에 짐을 모두 빼 버리고 자기가 배낭 안에 들어가 있을 거라고 합니다. 무서운 자식
** 헬리녹스 체어 투 들고 가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체어 원 사러 갑니다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