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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작 Nov 12. 2019

짖지않는 개

7편 :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채사라는 분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재벌의 혼외자식이라는 젊고 사연있고 부유한 남자친구를 둔 잘나가는 여자였다. 그런데 그놈이 범죄자에 알거지였다니!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 속였지. 사실을 알게 된 건 이틀 전이었다. 네일샵에서 손톱손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전화가 왔다. 강남경찰서 지능수사과 형사라며 자기 소개를 하는 소리가 이어졌고 백주대낮에 왠 보이스피싱인가 피식 웃으며 끊으려는데 저쪽에서 곧이어 황지철 씨를 아시나요? 라고 했다. 그 소리에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통화에 집중했다. 요 며칠간 그이가 카톡도 안 읽고 인스타에 댓글도 안 달아주고 무슨 일이 생겼나 슬슬 걱정되던 차였다. 

 “ 남친인데요. 무슨 일 있나요?” 

라고 묻자 형사는 기가 차는 스토리를 얘기했다. 황지철 씨가 차량 렌트 사업자라며 지금 일이 있어서 본인 명의로는 차를 못 뽑는데 한 달에 50만원 씩 대여료를 주겠다며 사람들을 꼬드겨 그 사람 명의로 차를 리스차를 뽑게 한 후 돈을 주다가 한달 전부터 잠적했다는 거다. 저금리시대에 이름만 빌려주면 50만원 씩 돈을 번다는 생각에 불법인 걸 알면서도 명의를 빌려주고 리스차를 뽑게해줬던 피해자들은 본인은 보지도 못한 외제차 때문에 차량 캐피털 업체에 매달 이삼백씩 갚아야하는 상황이 되자 황지철을 찾았다. 그러나 연락두절, 황지철은 그들에겐 주소도 이름도 다 달리 알려줬었다. 어떤 피해자 앞에서 그는 본인을 렌트카 사장 아들이라고 하였고, 어떤 이에게는 압구정 클럽을 관리하는 조폭 화륭파의 막내라고 하였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피해자들은 모여서 대책회의를 벌였고, 모든 정보와 인맥을 동원해 며칠간 조사한 결과 그의 본명을 알아냈다. 황지철. 그리고 sns에서 그와 사진을 찍은 여러장의 사진을 올린 여자가 있었는데 그의 여친, 채사라였다. 경찰의 전화가 오고난 후 그녀의 sns에는 피해자들의 비난, 호소하는 글들이 달렸다. 자수시켜달라. 남친이 사준 조말론 향수, 구찌 선글라스, 버버리 원피스 모두 우리 등친 돈이었다. 양심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뱉어내라. 평소 쿨하고 시크한 사진들과 찬양글로 가득찼던 그녀의 sns가 구질구질 걸레가 되어버렸다. 무엇보다 화가 나는 건 이걸 알고 입방아를 찧을 친구들이었다. 평소 남친에게 값비싼 선물을 받는 그녀를 반은 부러워하고 반은 시샘하던 애들이 얼마나 고소해할까. 아, 짜증나. 이제는 반대로 본인이 애가 닳아 형사에게 전화했더니 형사는 황지철은 10일 전쯤 태국으로 도피한 것 같다고 하였다. 그때는 형사가 전화오기 전으로 사랑한다며 카톡도 하고, 전화도 하던 때였다. 이런 쌍놈의 새끼. 그녀는 복층형으로 위층은 침실로 아래층은 주방과 화장실, 거실로 쓰는 복층형 오피스텔에 앉아있었다. 어제까지는 찬란하던 성이었는데 이곳은 폐허가 되어버렸다. 뻔한 사기꾼의 말에 홀랑 넘어가버린 겉만 번지르르한 여자가 있는 구질구질한 성.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초조하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녀가 앉아있는 곳으로 강아지가 조용히 걸어올라왔다. 까만 강아지, 바로 그 개새끼가 사준 개새끼였다. 똥을 싸는 게 경악스럽고 귀찮아서 요 며칠 밥을 안줬더니 배가 고파서 이 집 유일한 인간인 자신을 찾은 것 같았다. 평소에는 내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하더니... 이놈이나 저놈이나 쌍놈의 새끼. 그녀는 흘긋흘긋 자신을 쳐다보며 빙 돌아 천천히 다가오는 강아지를 쳐다보았다. 눈에는 눈꼽이 붙어있었고 털도 꾀죄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처음 올 때와 달리 이젠 한 손에 들어오는 앙증맞은 사이즈가 아니었다. 강아지를 바라보다가 그녀는 일어나서 천천히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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