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편 : 서울-강남- 2017-00005번
경기도 양주, 드라마 ‘전원일기’에 나올 것 같은 시골 동네로 1호선인 양주역 근처에만 병원과 상가가 형성되어 있을 뿐, 조금만 벗어나면 산과 들판이 끝없이 이어지는 한산한 지역이다. 민가들이 모여있는 양주의 읍내를 지나 허허벌판 공터가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한참 가다보면 산 중턱에 회색 철조망으로 둘러쌓인 회색빛의 커다란 건물이 나오는데 이곳이 우리의 주인공이 옮겨진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였다.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는 20년 전 국가의 지원을 받아 세워진 비영리기업으로 건립 당시에는 야생동물을 보호, 관리하는 목적으로 지어졌었으나, 10년 전부터 유기동물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유기동물을 수용하는 시설로 바뀌었다. 서울의 22개 지자체와 위탁계약을 맺어 서울시에서 발생하는 유기동물 대부분이 이곳으로 보내졌다. 길을 잃은 유기동물의 주인을 찾아주고, 버려진 유기동물의 재입양을 주선한다는 것을 모토로 삼고 있었으나 1800마리의 동물이 수용 가능한 곳에 매달 1400마리가 넘는 유기동물들이 밀려 들어와서 늘 자리가 모자랐다. 그래서 공고 기간 10일을 넘기면 어쩔 수 없이 안락사가 시행되었다. 안락사는 들어온 지 오래된 개, 질병이 있는 개가 우선적으로 선별되어 시행되었다. 특히 전염병에 걸린 경우는 날짜를 불문하고 즉시 안락사 대상에 올랐는데 계류장에 적게는 서너 마리, 많게는 15마리 이상씩 집단계류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염병의 확산은 치명적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 이 시설에 들어온 개의 36.7%는 안락사되었고, 17%는 자연사하였는데 매년 1만 마리 중 절반인 5천 여마리가 이곳에서 마지막을 맞았다.
우리의 주인공도 이곳에 들어왔다. 2017년 1월 11일, 수서119안전센터 근처 다세대 주택가에서 벽에 붙어 걷던 개를 주민이 발견하여 신고하였고 개는 수서소방서에서 포획하여 이곳으로 보내졌다. 소방관들이 포획하려 다가갈 당시 개는 겁에 질려 잔뜩 굳은 채로 주저앉았는데 소방관들은 귀를 뒤로 활짝 접히고 주저앉아서 눈도 못마주치는 개를 조심히 안아서 포획 케이지에 넣었다. 빠르게 도망가거나 사납게 반항하는 개에게는 그물을 이용하거나 마취총을 사용했지만 이 개는 조금도 으르렁거리지 않았고 사람들이 잡는 그 순간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포획하기 쉬운 개였다. 119안전센터에서 협회에 유기동물을 인계할 때는 어떤 장소에서 어떤 방식으로 포획하였는지를 간단히 메모하여 넘겼는데 소방관은 마지막에 순함이라고 힘주어 써서 보냈다. 사람이 무서워 덜덜 떨면서도 이를 드러내지 않는 소심하고 안쓰러운 개였다. 개는 이곳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에 들어오며 협회 소속 수의사가 쓴 특이사항이 기재되었는데 순함이 지워지고 그곳에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쓰였다.
양귀쫑긋, 코검정, 눈곱약간, 피부질환/ 몸 곳곳 탈모, 양뒷발 며느리발톱, 단미 안됨. 우리 주인공에 대해 처음으로 작성된 기록이자 공문서인데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