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편 : 유기
강아지는 밥을 주려는 줄 알고 느리게 오던 발걸음을 더 빨리 해서 그녀 가까이 왔다. 그녀는 멈춰서서 강아지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강아지가 자신의 발 가까이 오자 축구공을 차듯 뻥 세게 강아지를 찼다. 강아지는 순간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오피스텔의 계단 아래로 턱턱 소리를 내며 굴러떨어졌다. 몇 번 계단에 튕겼다가 바닥에 툭 떨어진 강아지는 끼깅끼깅 우는 소리를 냈다. 채사라는 뭔가 후련한 듯한 표정으로 개가 떨어진 계단 아래로 걸어내려갔다. 계단을 내려오는 채사라의 발소리에 개는 일어나려고 네다리를 버둥거리며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몸이 말을 안 듣는지 물 밖에 나온 생선처럼 퍼덕퍼덕거릴 뿐이었다. 채사라는 서서 무서워서 퍼덕거리는 개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가득찬 눈으로 개는 휘파람같은 신음소리를 냈다. 무섭겠지. 그러게 왜 내 눈 앞에 알짱댔니? 그녀는 개를 향해 무게를 실어 발길질을 했다. 강아지는 그때부터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날 밤, 채사라는 긴 패딩점퍼에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강남구 수서동 KT콜센터 앞으로 갔다. 예전에 잠깐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알았던 공원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누런 골판지로 된 라면박스가 있었다.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아무도 없는 것을 발견하고 CCTV가 설치되어있지 않은 공원 잔디밭 위에 상자를 놓았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홀가분한 발걸음이었다.
상자 속에 있던 강아지는 잠을 자고 있었다. 아니 기절을 한 거였는지도 모른다. 처음 채사라를 만나러 가던 때처럼 상자 속에서 강아지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벌어질 일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상자 속에서 강아지는 채사라의 오피스텔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평온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강아지의 온 몸이 바깥에 노출되고 데굴데굴 굴렀다. 한겨울 까만 밤하늘과 축축한 이슬이 가득한 잔디밭이 강아지 앞에 튀어나왔다. 폐지를 줍는 할머니가 쓸만한 라면상자가 잔디밭에 있는 것을 보고 들어올려서 털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라면상자에서 굴러 나온 까만 강아지를 바라보았다. 강아지도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잠시 온 세상이 소리를 죽였다. 별빛도 달빛도 소리를 죽였다. 그리고 몇초 후, 할머니는 상자를 곱게 접어 작은 손수레를 끌고 나아갔다. 강아지는 계속 그 잔디 위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