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 운명
샵매니저는 하얀 면장갑을 서랍에서 꺼내 양손에 끼더니 강아지들이 진열된 유리케이스 중 한쪽으로 황지철을 데려갔다. 거기에는 새하얗고 앙증맞은 강아지가 있었는데 하얀 솜사탕처럼 생긴 개였다.
“ 비숑프리제. 프랑스, 벨기에 품종견입니다. 톱스타들이 키우는 강아지로 송혜교, 수지가
가 키우는 강아지이고요. 요즘 젊은 여성분들이 가장 좋아하고 찾는 강아지입니다. ”
“ 음. 얘는 약간 나이가 있는 것 같은데요. 몇 개월이죠? ”
“ 이제 막 4개월 되었습니다.”
“ 좀 그러네요. 말티즈랑 비슷해서 흔해보이기도 하고요. 이번 여친은 스페셜한 걸 좋아
해서요.”
샵매니저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른 유리케이스 앞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자그마하고 까만 강아지가 있었다. 강아지의 생김새는 독특했는데 까만 잉크로 강아지를 만든 후 하얀 잉크가 흐르는 얕은 강을 걷게한 듯한 모양이었다. 강아지의 얼굴과 등과 귀, 다리 윗부분은 새까맸지만 반대로 목 부분과 꼬리 끝, 다리 아랫부분, 배 부분은 새하얬다. 특히 인상적인 건 강아지의 얼굴이었는데, 강아지의 얼굴 정중앙에는 하얀 줄이 머리 위에서부터 콧등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이 줄무늬로 인해 강아지의 얼굴은 데칼코마니를 한듯한 느낌을 주었는데 이 줄은 자칫 칙칙해보일 수 있는 까만 얼굴을 조명판을 댄 듯 화사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아몬드 모양으로 쳐진 새까만 눈동자와 하트모양의 검정 코, 핑크빛 혀까지 열이면 열, 마다할 수 없는 매력적인 개였다.
“ 셔틀랜드 쉽독이라는 종인데요. 크기는 지난 번에 구매하셨더 웰시코기 정도로만 성장하는
개이고요. 목축견이라서 머리도 아주 비상한 편입니다. 이제 2개월, 50일도 안 된 애예요.”
“ 이거 그거 아닌가요? 제가 그 웰시 전에 샀던 애 있잖아요. 2년 전에요.”
“ 미니핀? 닥스훈트?”
“ 아니요. 그 전에 전에 샀던 거요.”
“ 그 전전이면 슈나우저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그 슈나우저와는 다른 종으로
한국에서는 대중화되지 않았지만 저희가 미국 애견클럽 캔넬들 쪽과 연락하여 특별히
엄선하여 데려온 귀족견입니다. 스페셜한 걸 원하시는 고객님들을 위해서요”
“ 음, 괜찮네요. 얼마죠?”
“ 최하 280인데 저희 vip손님이시니까 270에 드릴게요.”
“ 아니요. 그럼 그냥 갈게요. 저는 200 정도 생각해서요. ”
“ 쉽독은 200에는 안 되는데요. 그러면 다른 개를 추천해드릴게요 ”
“ 그럼 됐어요. 스페셜한 거만 좋아하는 애라서요”
황지철이 혀를 차며 발길을 돌리려 하자 샵매니저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손님. 그러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250에 드리고 대신 저희가 꽃다발과 함께 상자 안에 넣어 배달서비스 무료로 해드릴게요. 원하시는 장소로요.”
황지철은 잠깐 생각하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샵매니저는 신이 나서 카운터로 그를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카드를 받아 계산을 하며 그에게 분양계약서에 사인을 부탁했다. 황지철은 계약서를 건성으로 읽고 사인했는데 그곳에는 고객의 변심으로 인한 환불 불가, 중대한 하자 발생시 3일 이내 타제품과 교환 가능 등의 약관이 써있었다. 치리릭, 기계에서 카드명세서가 나왔다. 유리케이스 안의 까만 강아지는 몰랐겠지만 이번 거래로 이 강아지는 목숨을 건졌다. 황지철이 처음 안내받았던 비숑은 오늘을 끝으로 이 펫샵에서 새끼를 빼는 번식장으로 보내졌다. 그 비숑은 샵매니저가 4개월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5개월이 넘었고 이 펫샵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개였다. 펫샵의 강아지들도 제조일자, 태어난지 며칠되었나 하는 신선도가 제일 중요했다. 유리케이스 안 강아지들에게 가장 큰 적은 시간이었다. 이 펫샵의 가장 맏형이었던 비숑은 운이 좋지 않았다. 그동안 몇 번 팔릴 뻔 했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주둥이가 짧은 다른 비숑에게 밀렸다. 그 죄로 내일부터는 조명이 비치는 유리케이스가 아닌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번식장 케이지 안에서 살다가 생식기가 망가지는 순간 개 도축장에 보내져 보신탕용으로 팔릴 신세였다. 자기를 낳은 어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