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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찬가

제인 구달 박사님도 강아지에게 배우셨군요!

by 안락한 은둔


산책을 다녀온 후 한 사발 가득 밥을 먹은 미로가 거실 한가운데 천장을 향해 배를 까고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짧은 네 발이 무방비 상태로 대롱대롱 공중에 떠 있습니다. 저는 숨을 죽이고 그 장면을 지켜봅니다. 매일 보는 장면인데도, 조심스레 전화기를 들어 또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 속 분홍색 배와 발 끝 하얀 털을 확대해 보며 히죽히죽 웃기도 여러 번 합니다. 지금 미로가 안심하고 만족스러워하고 있다는 증거를 확보하면 저에게도 평화가 찾아옵니다. 미로는 자기표현이 비교적 분명한 강아지이지만, 그래도 미로의 말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하니 내가 잘하고 있나 걱정될 때가 많습니다. 미로는 행복한가 하는 생각도 자주 합니다. 그래서 미로의 기분이 분명히 보이는 이런 순간들이 소중합니다. 미로를 키우며 저는 종종 궁금증과 걱정과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미로를 보며 답을 찾기를 반복합니다.


IMG_6040.jpg 상당히 자유분방한 자세로 낮잠을 즐기는 편입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제인 구달 박사의 인터뷰를 봤어요. 그중 가장 와닿았던 내용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 무엇인지에 대한 그의 답이었습니다. 제인 구달은 침팬지 연구로 유명했었지만, 그의 선택은 강아지였습니다. 침팬지는 사람과 너무 닮아 별로 착하지 않은 애들도 있지만, 강아지는 다르다고 이야기합니다. 강아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너무나 충실하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준다고요. 그는 강아지가 없는 세상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저는 이 짧은 인터뷰를 몇 번이나 돌려 봤습니다. 그의 대답뿐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제인 구달의 목소리와 표정도 어쩐지 위로를 주는 것 같았어요.


내가 강아지도 아닌데, 왜 그의 대답이 그렇게 듣기 좋은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제가 강아지를 보며 늘 드는 의문에 대한 대답도 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강아지를 보면 과연 인간이 강아지를 키울 자격이 있는지 끝없이 묻게 됩니다. 이런 존재가 살아있다는 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이 생명체를 (역시나 제인 구달의 말대로) 어쩔 때는 참 별로인 인간들이 주인 행세를 하며 키워도 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IMG_6062.jpg 역시 강아지이지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강아지가 불쌍한 인간에게 내려진 선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도대체 사랑이라는 것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그렇기에 다른 존재를 사랑하기도 힘든 인간에게 사랑 그 자체를 살아있는 생물로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 강아지인 듯합니다. 사랑이 재료이다 보니 외모도 눈이니 발이니 꼬리니 좌우지간에 안 귀여울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 강아지를 학대하는 것은 사랑을 학대하는 것, 강아지를 내팽개쳐 두는 것은 사랑을 내팽개쳐두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짓을 하는 것이 인간이지요. 자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강아지를 옆으로 불러와 그 사랑을 즐기기만 하고 강아지에게 사랑을 주는 데에는 서툴거나 인색하거나 이기적입니다. 강아지를 볼 때마다 이 두 존재의 간극이 버겁게 느껴집니다.


강아지가 사랑이기에 인간에게 선물과 같은 존재인거지 강아지의 존재 이유가 인간에게 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그 사랑을 배우는데 평생이 걸리는 종일 겁니다. 인간이 강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본다는 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이런 축복이 인간에게 너무나 쉽게 주어지는 것이 의아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죄책감마저 듭니다.


IMG_6372.jpg 미로는 얼마 전 네 살이 되었습니다. 생일이고 뭐고 이런 걸 씌우는 것이 영 못마땅한 미로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저에게 강아지를 가장 좋아한다는 제인 구달의 말은 인간이 강아지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알려주는 듯했습니다. 우리에게 자격은 없지만, 그래서 미안하기도 하지만, 인간도 강아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게 위안이 좀 됩니다. 제인 구달은 그런 강아지의 사랑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강아지라는 축복을 온전히 누리는 사람이요. 그건 그의 말처럼 강아지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강아지의 사랑을 인간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빌미로 사용하는 저는 아직 이르지 못한 단계일 것입니다.


미로는 예민한 강아지라 한밤중이 아니면 깊이 잠드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낮잠을 자다가도 푸드덕 잠에서 깨어 찌그러진 얼굴로 제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합니다. 제가 그대로 있는 것을 확인하면 다시 풀썩 엎드리거나, 그 사이 배가 촐촐해졌다면 슬금슬금 다가와 기지개를 켜며 강렬한 눈빛을 보냅니다. 괜스레 가까이 와서 엉덩이를 붙이고 다시 잠에 들기도 하는데, 고양이 급의 새침데기인 미로에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닙니다. 가장 곤란한 때는 갑자기 기운이 솟아서 공을 물고 와 툭 던져놓고 베실베실 웃을 때입니다. 도저히 모른 척할 수 없는 얼굴입니다. 강아지에게는 원래 표정이 없는데 인간의 얼굴을 보고 표정을 배운다고 합니다. 저렇게 웃는 것을 저한테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미소를 보면 저도 따라 웃게 되는 것은 확실합니다. 강아지가 사람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 것은 아마 대부분 이런 형태일 것입니다. 미로는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동이지만, 이 모든 순간, 어디서든 상처 입고 어떻게든 메말라있는 지친 인간은 사랑을 느낍니다. 신비로운 일입니다. 아무리 사진을 찍어대고 부드러운 등을 양껏 쓰다듬어도 인간은 이 사랑을 다 배울 수 없을 것입니다.


IMG_5697.jpg 공과 고기 앞에서 가장 예쁘게 웃습니다.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다면, 이미 사랑으로 가득 찬 강아지가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우리에게 사랑을 달라고 꼬리를 흔들고 궁둥이를 붙이며 촉촉한 눈을 마주치는 이 모순을 마음껏 즐깁시다. 그리고 강아지가 없는 분들은 마음껏 부러워해도 좋아요. 어쨌거나 우리는 아직도 배울 게 많이 남아있습니다.


IMG_6366.jpg 다른 강아지들에게는 사랑을 베풀고 싶은 마음이 없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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