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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달하 May 23. 2019

카톡도 이민이 필요할까요?

이제 멀어질 용기가 필요할 때인가 봅니다

8,000km가 넘는 거리에 있는 남자와 연애를 하고 결혼 했다. 아마도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까. 이메일, 스카이프, 페이스북, 그리고 수많은 메신저들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운명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우연이 되었을 것이다. 독일에 와 살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도 SNS나 메신저들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가족들과 언제든 무료로 연락할 수 있고, 내 소식을 친구들에게 알릴 수도 있으니, 4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지독한 외로움보다는, 가끔 퇴근 후 술 한 잔 기울이던 소소한 날들의 그리움만 있을 뿐이다.




"이번 정기모임은 어디서 할까요? 강남이나 광화문에서 봤으면 하는데 시간 장소 정해 볼까요?"


대학시절 학교 내외로 모임이 많았던 나는 직장인이 되어서도 정기적인 모임을 이어나갔다. 한국에 있을 때는 시간을 내어 가능한 한 많은 모임에 참석하 애썼으나, 타국에 있는 지금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들 내가 독일에 있는 것 알지만, 여전히 단체 채팅방에 있는 나를 고려치 않고 전체 공지가 날아온다.


"안녕, 다들 잘 지내지? 나도 가고 싶은데 아쉽네. 다들 베를린으로 모여! 하하!"


독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싱거운 농담을 날리며 안부를 전하고 그저 조용히 새 글 알람을 끄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나는 조금씩 투명 인간이 되어가는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어차피 참석하지도 못할 이번 주말의 저녁 약속을 잡기 위해 나를 초대한다던가, 내가 자고 있는 사이 수 백 개의 메시지를 주고받는 그룹 채팅방을 확인할 때면, '왜 굳이 독일에 있는 나를 여기에 초대한 것일까'하는 궁금증과 함께, 대화가 잠잠해 지기를 기다려 살며시 '나가기' 버튼을 누른다.






"뭐하냐"


혹은,


"보고 싶다"


시차가 있는 만큼 자주 연락하지는 못하지만, 뜬금없이 툭하고 문자를 보내오는 친구들도 있다. 한국에서처럼 '이번 주말에 뭐해?'하고 바로 약속을 잡을 수는 없지만, 내가 한국에 갈 날을 기다려주고 바쁜 시간을 쪼개 주는 친구들이 있기에 먼 타국에서의 생활이 그리 힘들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제는 이름도 가물가물한 지인들이, 나를 의미 없는 카톡방에 초대할 때면, 이제는 ‘카톡도 이민 준비를 해야 할 때가 아닐까’하고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고 무작정 메신저를 지워버리기에는, 자주 연락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기에 쉽지가 않다.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보라는 친구들의 권유도 있었지만, 아직은 완벽히 온라인 이민을 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정말 이 끈을 놓아버리면, 영영 잊힐 테니까. 다시 볼 일 없는 사람들 때문에, 다시 보고 싶은 사람들을 잃을까 봐 겁이 난다. 그리고 무미건조한 와츠앱(Whatsapp)의 깜깜한 채팅창을 바라보다, 카톡의 밝고 귀여운 이모티콘들을 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아직까지도 한국의 것들을 그리워하는 내 마음의 한 부분인 것 같아 씁쓸해지기도 한다.


이렇게 외국생활을 하고 있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서서히 잊히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추억 속 언젠가 매일매일 얼굴을 보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만큼 친했던 사이도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사라진 지 오래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매일 멀어질 준비를 한다. 그리고 잊힘에 상처 받지 않으려 무심한 척 연기를 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외국에 산다는 이유로, 외국인이 되었다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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