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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차 Nov 17. 2019

손으로 직접 만듭니다

취미를 찾아가는 여정





시작부터 결과에 집중하면 그 가치를 찾을 수 없다.

정말 좋은 가치는 나에서 타인으로

그리고 다시 나에게로 오는 것이다.



여정 1. 향초 만드는 여자


한 창 소이캔들 바람이 불 때였다. 향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향초와 디퓨저가 쏟아지듯 나왔고 DIY 트렌드에 맞게 원재료를 사서 만들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냄새 제거에 탁월한 향초 나도 한번 만들자 생각해서 덤벼든 향초 만들기.

방산시장으로 달려가 여러 업자들 틈바구니에 껴서 가게 앞을 서성였다.

파라핀으로 만들지 않은 고운 하얀색을 띠는 초라니. 게다가 예쁜 용기에 향까지 덧입힌 그야말로 선물용으로 제격인 아이템이었다. 쉽게 도전해 볼 수 있고 만드는 방법 또한 어렵지 않은 향초는 많은 사람들의 신흥 부업으로 떠올랐다. 더욱이 좋은 것은 인스타와 블로그에서 답례품으로 많은 이들이 이미 상업적으로 이제 막 활용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이거 팔아봐도 좋겠는데?' 


생각으로 끝난 다짐이었지만 향초는 나름의 쓸모를 다했다. 사랑하는 이에게 줄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예쁜 케이스에 그에게 어울리는 향을 골라 소이 왁스를 부을 때면 감동받을 그의 얼굴이 떠올라 덩달아 행복해졌다.

하지만 목표를 너무 빨리 달성해서일까. 

내게 필요한 향초와 선물을 다 하고 나니 더 이상 만들 이유를 찾지 못했다. 생각보다 단순한 공정에 이것만이 지닌 매력을 찾지 못했다. 이렇게 향초 만들기는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버렸다. 



여정 2. 비누 만드는 여자.


바르셀로나 출장을 갔을 때였다. 


'여기 오면 사바테르 비누를 사야 한대. 옆 부서 사람들 다들 사 왔어'  


굳이 비누를 사러 구시가지에 들러 골목 사이사이를 누비며 도착했다. 누가 한국인 아니랄까 봐 두 번 다시 오지 못할 사람처럼 4~5년 치 쓸 분량을 쓸어 담았다. 평소에 폼클렌징 밖에 쓰지 않는 나로서는 큰 모험이었다.

한국에 들어와 이 신선한 비누를 영접하고 피부를 만지는 순간 반해버렸다. 


'비누.. 매력적인데?'


그즈음 저온 숙성비누체험이 한참 유명해지고 있었다. 비누의 베이스가 바르셀로나에서 사 온 비누처럼 올리브가 주 재료가 되어 피부에 순하다고 한다. 한번 보면 사고 싶을 정도로 비누답지 않게 예쁜 디자인이 가능해 더 매력이 있었다. 예쁜 것에 심취해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던지라 내 전공을 살려 디자인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겠다 생각했다. 들뜬 마음에 나는 온갖 재료들을 다 구비해 놓고 제2의 인생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래 이제 한 번 만들어 볼까나. 마음먹고 주방에 판을 벌였다.


여러 가지 식물성 오일을 배합하여 가열한다.

가성 소다수를 만들어 오일에 넣고 블렌더로 저어준다. 

하얗게 걸쭉해질 때까지 손 또는 블랜더로 한쪽 방향으로 저어준다.

걸쭉한 양잿물이 되기 전에 아로마향을 넣고 원하는 디자인에 따라 색소를 넣어 컬러를 연출한다. 

3가지 컬러가 필요하면 각기 다른 통에다 다른 색소를 넣고 굳지 않게 스피드 하게 준비해 놓는다.

오일이 굳기 전 고무판에 층층이 서로 다른 컬러를 붓고 뾰족한 꼬챙이로 문양을 낸다.


'어라? 내 로망과는 다르네?'


만만치가 않다.

동영상에 나온 것처럼 우아하고 예쁘게 문양을 내는 것은 생각도 못하겠고 걸쭉해진 반죽이 굳어져가 비누 범벅이 되었다. 1그램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아 모든 중량은 계량기를 거쳐야만 했고 블랜더로 저을 때는 내 주방 여기저기에 비눗물이 튀었다. 하루 종일 거품 나는 주방을 닦아야만 했다.

심지어 가성 소다수를 만들 때는 유독가스가 나온다고 하여 조심 또 조심하라는 경고에 따라 집 밖에서 희석시키고 와야 했으며 앞치마, 마스크, 팔토시는 필수였다. 

땡볕이 내리쬐는 더운 여름날에 하기에는 너무 고역이었다.

문양을 내는 대망의 아트웍 작업!

굳어가는 양잿물의 점도를 맞추기가 어려워 원하는 데로 디자인을 할 수가 없었다.

일련의 과정들은 생각보다 많은 노동이 들었고 위험요소가 있었다. 무려 세 번이나 만들어 보았지만 하면 할 수 록 나의 부업의 꿈이 작아져갔다. 흥미보다는 노동이었고 오래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없었다. 비누로 인해 예쁜 아트웍을 만들어 팔아보겠다는 나의 야무진 꿈은 점차 희미해져 갔다.

 


여정 3. 도자기 만드는 여자


도자기를 제대로 처음 접한 것은 대학생 때였다. 교양 수업에서 평생학습관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가 배우기 시작했다. 떠올려 보면 물레에 붙인 흙을 처음 만져봤을 뿐이지 제대로 배우지는 않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꽤나 괘씸한 교수다. 그래도 어렴풋이 접해본 도자기가 좋은 기억이었는지 계속 배우고 싶은 욕심은 내심 안에 있었나 보다. 우연한 계기로 집 근처에 발견한 공방을 보고 수강생이 되었다.


흙을 물레에 붙여 중심을 잡는다. 

흙을 위로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반죽을 하며 중심을 잡고 기물을 만들기 시작한다.

며칠 뒤 적당히 굳은 기물의 외형을 잡는 굽을 깎고 초벌에 들어간다.

원하는 색의 유약을 발라 재벌을 하면 처음에 만들고자 한 그릇이 탄생한다.  


이 하나를 만드는데 한 달이 걸렸다. 일주일에 고작 1번가는 수강생 입장으로는 최대한의 속도였다.

이 노동과 수강료를 따지면 매달 로열 알버트 예쁜 커피잔을 한 세트씩은 충분히 살 수 있었다. 

한 자세로 3시간씩 고정된 자세로 작업하는 것은 팔과 허리에 꽤나 무리가 가는 일이었다.

'나도 한 번 만들어 볼까?' 고민해보는 주위 사람들에게 우스갯소리로 차라리 예쁘고 비싼 그릇을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뱉은 말과는 반대로 나는 한 달 두 달 세 달.. 그렇게 년이 지나가도록 나는 아직 수강생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왜 나는 아직 도자기를 만들고 있을까?


느리고 답답하지만 그만둘 수 없는 이상한 매력이 있었다. 

옛날 필름 카메라를 맡겨 현상할 때와 같은 설렘과 기대감이 있달까. 그 재미로 세 달.

정말 가까운 지인들에게 선물했을 때 그 그릇을 쓰면서 좋아하는 얼굴을 볼 때 그 재미로 세 달.

어줍지 않은 실력으로 다음 작업을 구상하는 재미로 그렇게 이어져왔다.

지금도 내 책상 옆에 제 할 일 다 하고 있는 과자 그릇을 보면서 왠지 모를 뿌듯함이 있다. 이 과자 그릇은 내게 이도 도자기나 로열 알버트와 같은 유명 브랜드 못지않은 가치를 뽐냈다. 가끔 내 친구가 얼굴이 약간 찌부된 못생긴 자기 고양이더러 '아구.. 이 이쁜 내 새끼'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일 것 같다.


제일 큰 뿌듯함은 부모님께 선물할 거리가 생긴 것이다. 간혹 전화통화를 할 때면 


'요즘에는 뭐 만드니? 잔이 하나 필요한데'

'고객님. 원하는 디자인이 무엇인가요? 시일은 한 달 정도 뒤에 받아보실 수 있어요. 

 지불은 밑반찬으로 해주시면 됩니다.'


마치 주문 제작하는 것 마냥 장인 코스프레를 할 수 있었다. 주 고객은 가족뿐이지만 말이다. 흥미가 살짝 떨어질 때쯤 무뚝뚝한 아빠의 통화에 다시 힘이 나기도 한다.


 '이번 주도 만들러 가니? 저번에 만든 것 잘 쓰고 있네'


든든한 팬이 생겼다. 하지만 피드백도 얄짤없다.


'무거워'  

'좀 더 컸으면 좋겠어.' 

'좀 투박하네..'

'그림을 그려 넣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천천히 만들며 가족과 웃을 일이 생겼고 부모님께는 자랑거리가 생겼다. 그 모습을 보며 즐겁고 가치 있게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일이 누군가를 즐겁게 할 수 있구나.' 


시간이 나면 어떤 것을 만들지 가끔 구상을 한다. 3년 안에는 멋진 것을 만들겠노라 다짐도 하게 되었다. 

적어도 내가 사용하는 식기들은 내 손으로 만들어야지.

부모님 그릇세트는 선물해 드려야지. 

내 혼수는 내가 만들어가야지.


어설프지만 소박한 꿈을 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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