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와 오래된 애인의 공통점
아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잘생겼고 세련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전자기기들은 온통 애플이었고 가구들은 삐죽 나온 곳 없이 아주 잘 정돈되어 있었다. 옷 잘 입는 회사 동료가 종종 자랑하던 그 브랜드를 자주 입었고 방 안은 고급지고 세련된 향이 났다. 머리나 피부에도 꽤 신경을 썼으며 그가 갖고 있는 소품 하나하나에도 군더더기가 없었다.
셀럽같은 사람이었다.
셀럽과 나의 관계는 '좋아요'를 누르는 구독자 정도로 결말을 맺었다.
동경하는 사람과 내 삶은 달랐다. 내게 맞지 않은 옷을 입듯 조심스러웠고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게 뭐 주변 요소 때문만이겠냐마는 난 적당히 수더분함을 편안하게 느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취미도 마찬가지이다. 한 때 취미를 찾으려 안 해본 클래스가 없었다. 좋아 보이는 것들, 구미가 당기는 것들은 클래스로 한 번쯤은 해야 직성이 풀렸다.
한 번은 클라이밍을 신청했다.
가끔 드라마를 볼 때 PPL로 주인공이 엄청난 갈등에 시달려 생각을 정리해야 할 때 생뚱맞게 실내 암장에서 등반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내용에 개연성은 없었지만 비주얼로서는 적당했다. 시기적절하게 '암벽여제 김자인'이란 타이틀로 한창 스포츠클라이밍에 관심이 쏟아질 때라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
'흥미진진할 거야.'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기대보다 적당히 즐거웠다.
충분히 매력적인 스포츠였지만 지속적으로 다닐 만큼 나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오래 하게 되는 것들을 보면 '나'를 닮아있다.
'습관처럼 되는 것'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그래서 내가 다시 그림을 그렸을까. 어렸을 적 벽에 그림 그리던 유년시절의 끈을 놓지 않고 이렇게 그리게 된 걸까?
이모의 댄스타임
엄마가 동영상을 보면서 손발 스텝을 더듬더듬 따라 하는 것을 보았다.
'이게 뭐야?'
'응. 이모 라인댄스 대회 나간 거. 엄마도 해보려고'
'응? 이모가 춤을 춰?'
춤을 춘다는 사실이 놀랍다기보다 벌써 대회에 나갈 만큼 오래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이모는 흥이 많은 사람이다. 실제로 내게 흥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기회만 된다면 그 흥을 어딘가로 쏟을 것만 같은 사람이었다.
두 아들을 데리고 빠듯한 직장생활을 하는 이모에게 춤은 단비 같은 시간 들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춤을 추는 이모의 표정이 짐작이 갔다. 좋아 보였다.
수다스러운 그녀의 바느질
그녀는 말이 많다. 빠른 말투로 쉴 새 없이 떠든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얘기하기 전에 웃음이 터져 상대보다 먼저 웃고 길게 웃는다. 그런 그녀가 종종 뜨개질을 한다. 취미라고 하기에는 그리 자주 하는 것 같지 않지만 한 번은 코 바느질. 어떤 때는 노끈으로 라탄 백 만들기를 또 어떤 때는 옷을 만든다.
형태는 다양하지만 그녀는 패브릭으로 끊임없이 가내수공업을 한다.
'그거 재밌어?'
'할만해. 시간이 잘 가'
그녀는 절대 재밌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분명 재밌어서 하는 일이다. 내가 안다. 바느질은 수다스러운 그녀와 잘 맞는다. 역동적이고 복잡한 것에 집중하기에는 그녀가 너무 심각해질 것이다.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그녀의 수다만큼 손동작이 빨라 꽤나 공장처럼 뽑아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취미생활을 자꾸만 찾고 있다. 이미 찾았는데 말이다.
바느질은 그녀의 일상에 스며든 수다 친구 같은 취미이다.
거울을 보았다.
연인은 함께 있으면 닮아간다고 했었던가.
내 취미는 조잘거리며 추임새를 넣는 애인일까.
내 흥을 맞춰주는 흥 많은 애인일까.
새벽 감성에 함께 노래 들어줄 애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