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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Apr 24. 2020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해 본 사람의 <부부의 세계>


 금요일 토요일만 되면 ‘82쿡’이 난리다. <부부의 세계>에 대해, 숨 막히게 몰입했다는 찬사와 지친다는 성토가 봇물을 이룬다. 거기다 한 술 더 떠, 배우에 대한 외모 평가, 옷, 인테리어까지 관심을 가지는 걸 보면 과연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것 같다.


뒤늦게 합류를 해서 한국 버전과 영국 버전 모두를 주말 내내 봐 버렸다. 드라마를 다 본 후 여초 커뮤니티에서 댓글들을 살펴보는 것이 또 하나의 재미이다. 커뮤니티 댓글에 본인도 남편의 외도를 겪었다는 사람이 있었다. 극 중 지선우의 심정이 공감이 되지만 자기는 의사도 뭣도 아니어서 이혼을 했지만 여전히 위장병을 달고 산다는 내용이었다. 이 댓글 때문에 글을 써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드라마에서, 잘 나가는 의사이고 남편의 회사도 직접 차려줄 만큼 능력 있는 지선우가 남편의 외도를 알아도 금방 이혼을 결정하지 못했다. 하물며 ‘의사’가 아닌 많은 여자들은 오죽할까?


댓글 중, 요즘 애들 말로 ‘빻은’ 한 줄을 발견했다. 이태오와 여다경의 결혼사진을 보니 역시 나이차가 나야 그림이 예쁘다며, 여다경이 너무 예쁘다는 글이었다. 무슨 이런 길들여진 노예근성의 글이 다 있을까 싶었다. 여자가 남자의 사랑을 받으려면 어리고 예뻐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 온 탓이다. 여자 남자의 성공을 위해 보조를 해 주는 존재로만 알고 있으니 나이 들고 안 예쁜 여자(무려 김희애)는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듯했다.


 <부부의 세계> 첫 회에서 지선우는 가족사진을 만지며,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완벽했다”라고 말한다. 지선우의 삶이 완벽해 보였고, 본인의 자부심도 있었을 것이다. 성공한 의사와 잘생긴 남편, 행복한 가정에 대한 자부심까지 보이면 어떻게든 흠을 잡고 싶은 사람이 그득했을 것이다. 그러니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이태오의 외도를 알고도 오히려 협조를 했다.


완벽한 인생이란 무엇일까?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야 하고 부부는 화목해야 한다. 거기에 공부 잘하고 반듯한 아이들이 있어줘야 하며 시어른의 간섭은 최소여야 한다. 이런 조건을 맞추기가 힘들긴 하지만 영 불가능하진 않아서, 주변에 한 둘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은 질투를 받는데 성격까지 좋으면 미워하기도 힘들다.


실제로 친구들 모임에서 경험 한 적이 있었다. 오래된 친구들 모임에, 부족함 없어 보이는 한 친구를 두고 다른 친구가 말했다. 그 친구 남편은 분명히 바람피울 거야. 사회생활을 잘하는 성공적인 남자들은 거의 다 외도를 하더라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질투의 시스템을 이해하게 되었다. 설령 진짜 그렇다고 하더라도 남편의 외도를 직접 겪은 나는 그런 상상을 하기도 싫고 입 밖으로 내는 건 더 싫었다. 사이좋은 부부라면, 평생 모르다가 80이 넘은 후에 알게 되든지 말든지 하는 게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구의 ‘거의 완벽해’ 보이는 모습에 그 친구 남편은 바람을 피울 거라고 추측하는 것은 추측이 아니라 저주에 가깝게 들렸다.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것은 본성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애당초 완벽한 구도 근처에도 가기 힘든 많은 평범한 사람은 질투만 하면서 살아야 하나? 남의 행복에 ‘저 사람도 나름의 고민이 있을 거야.‘ 라며, 보이지 않는 불행으로 내 위안을 삼는다면 너무 슬프지 않은가?


나는 많은 행복해 보이는 가정을 부러워했다. 부럽다 못해 보기가 괴로워 미워하기도 했다. 딸아이가 어느 날 물었다. 같은 반에 있는 어떤 아이가 너무 미운데 왜인지 모르겠다고. 나는 그 아이의 무엇이 미우냐고 물었다. 딸아이는, 친구는 예쁘고 공부도 잘하며 발표도 잘하는 아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엄마는 학교에 아이를 태우러 자주 온다고 했다. 명확하게 딸아이의 질투가 보였다. 나는 딸에게 말했다. 그 아이는 네가 갖고 싶은 모든 것을 가졌기 때문에 질투가 나는 것이라고. 다음부터는 부러운 점이 보이면 바로 칭찬을 해 주라고 했다. 초등학생 딸이 겪은 질투는 나도 겪고 있었고 나에게도 적용이 되는 방법이었다. 빨리 입밖으로 칭찬을 내 뱉는 것.


지금 내가 쓰는 방법은 한 단계 더 공정을 거친다. 엄청나게 부러운, 완벽해 보이는 사람을 보면 축하와 찬사를 맘껏 준다. 질투의 맘이 생길라 치면 얼른 내 맘을 다독거린다. “질투하면 안 돼. 지금 간신히 찾은 이 평화와 안락함이 질투로 줄어들게 할 순 없어.”라고. 남편의 외도를 알고 이혼과 싱글맘의 세월을 거치면서 나날이 행복의 평수를 조금씩 넓혀왔다. 그렇게 한 뼘 한 뼘 키워온 내 행복이 남 보기엔 대수롭잖아도 요것 만큼은 온전히 내 몫이다. 남을 부러워하고 질투를 하면 지금 허락된 내 몫 마저 뺏기는 벌을 받는다고 주문을 건다. 요만큼의 평안도 감사하게 누리고 지키려는 맘이 생기면, 신기하게 마음이 수습된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각종 질투가 눈에 보였다. 그 드라마에 몰입하게 하는 힘도 여자들의 ‘질투’를 활용한다. 드라마 전체를 살짝 뒤에서 한 번 보자. 잘 나가는 주인공 여자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니 갑자기 불쌍해 보인다. 성공을 한 여자도 남편의 외도 앞에서 맥을 못추는 모습을 보이면, 갑자기 별볼일 없는 내모습도 우월해 보인다. 드라마의 남편이 만나는 여자는 젊고 부잣집 딸이다. 이제 마음 놓고 그 불륜녀를 미워하면 된다. 남편의 외도만 아니면 너무 완벽해서 질투의 대상이 되었을 지선우가 이젠 내 편이 되고 ‘내’가 된다. 드라마의 주인공에게 내 마음이 이입이 되어야 재미가 있다.  의사인 지선우의 복수는  여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준다.


많은 댓글에, 도대체 여다경은 왜 이태오에게 빠지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부잣집 딸이 뭐가 아쉬워서 와이프한테 얹혀사는 무능한 남자와 결혼까지 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었다. 그것은 아주 쉽다. 부잣집 딸이기 때문에 연애의 방어벽이 약하다. 남자가 선택해 주길 바라기 보다 내 감정에 더 치중하게 된다. 남자의 능력이 아쉽지 않은 것이다. 여자가 남자를 고를 때 자신의 위치가 불안하면 불안할수록 남자의 경제력을 살핀다. 다시 말해, 여자의 경제력이 되면 남자의 외모와 자상함을 선택하지 경제력은 덜 보게 된다.


여다경은 든든한 아버지가 있고 지선우는 자신의 능력이 있다. 연애의 경계도 약할 뿐 아니라 이별도 주체적이다. 자신의 능력이 있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힘이 있다. 또한 맘에 들지 않으면 버리는 힘도 있다. 지선우는 자신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미련 한 톨 없이 복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바람을 한 번도 안피울 수는 있지만 바람을 딱 한 번만 피우는 남자는 없다고 한다. 그것은 많은 여자들이 한 번의 외도 쯤은 용서를 하기 때문이다. 극중 지선우가 남편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용서를 빌 것을 몇 번 요구 했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 때도 거짓말로 모면을 하려고 했다. 나는 이 장면에서 내 심정이 기억났다. 전남편이 끊임없이 상간녀 탓을 하며 책임을 회피 할 때, 내 마음은 더 무너졌었다. 전남편이 더 못나고 한심해 보였었다. 그 당시 나는 경제적 능력이 없었기에, 최소한 전남편이 덜 한심해 보이기만 해도 살았을 것이다.


지선우는 자신이 실질적 가장으로 산다. 용서를 해 줄 수 있는 입장이었다. 용서와 이해는 동등하거나 약간은 위에 있어야 가능하다. 나처럼 약자의 위치에서는 용서나 이해가 아니라 체념이고 합리화였다. 전남편의 찌질한 모습에 체념마저 괴로웠었다. 그런데도 이혼을 망설이는 내 자신이 못나 보여 속병이 났었던 기억이 살아났다.


여자의 인생에는 남자의 사랑을 전부로 삼는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자도 남자에게 사랑을 못 받으면 그 성공은 헛것이라 여긴다. 사회적 지위가 없지만 남편에게 사랑 받는 당신이 위너라고 주입하며 더 사랑 받으려 노력하라는 남자들의 논리이다. 물론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이 큰 행복이다. 하지만 똑같은 기준을 남자에게 들이대지는 않는다. 남자에게는 사랑따위는 사적인 것이라며 가볍게 여기라고 교육한다.


이성간의 사랑은 내 삶을 좀 더 재미나고 생기 있게 해 준다. 그러나 내 인생의 승패를 좌우하는 전부는 아니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한 남자가 사랑에 목숨을 걸고, 자신의 행복은 자신의 연인이라 말한다고 가정해 보자. 다들 우습게 볼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한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난 후 자기의 경력을 모두 버리고 남자의 사랑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어떻게 느껴지는가?


사람과 하는 사랑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마음이 변할 수도 있고 환경이 변 할 수도 있다. 세상에 불륜이 흔해 빠졌다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나에게만 일어나지 않는다고 절대적으로 믿는 것이 비 상식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나 자신과 하는 찐한 사랑이다. 나와의 사랑은 지금까지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그리고 가끔 연인이 있으면 사랑의 유효기간까지 잘 누리자. 없는 것보다는 낫다.


현 남편은 나에게 사랑 고백을 자주 한다. 남편이 “ I love you.”라고 하면 나는 언제나 대답한다.

“I love you too, FOR NOW( 나도, 지금은)”라고. 현 남편은 사랑에 대해 나처럼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어쩔 수 없다. 나는 나를 더 사랑한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고, 늦게사  재혼을 해 본 사람이 보는 <부부의 세계>에는 각종 질투가 보였다. 그리고 또 하나.  사랑, 그까짓 게 뭐라고? 있으면 좋고 없으면 할 수 없는 게지. 이런 퉁명스러움이다.


너를 사랑하지만 나를 훨씬 더사랑하지 berry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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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red7h2k/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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