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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유 Feb 07. 2024

예술가는 어떻게 안식을 얻는가

본태박물관에서 만난 <쿠사마 야요이>

나는 예술가들이 좋다. 어렸을 때 아이돌 그룹을 덕질했던 것처럼 지금은 예술가들을 덕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들이 가진 특유의 멋진 똘끼(?)와 이를 펼치는 방식에 매료된다. 그리고 역시나 덕질에서 가장 즐거운 부분은 바로 작품을 만든 그 예술가란 사람 자체에 대해 알아나가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예술가의 말이나 글을 통해 그의 삶을 유추해 보는 것을 좋아한다. 이 과정에서 예술가의 삶이 미술 작품에 드리운 그림자를 발견할 때, 그리고 그 그림자에서 또다시 나의 모습이 비칠 때 작품과 예술가를 더 좋아하게 된다. 


나는 제주살이를 시작한 뒤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 작가에 대해서 완전히 새롭게 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바로 그 유명한 쿠사마 야요이였다. 


<호박>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작은 누가 뭐라 해도 <호박> 일 것이다. 자연의 호박과는 괴리감이 있는, 쨍하고 화려한 노란 바탕에 큰 검은색 동그라미가 덮인 사람만큼 거대한 호박. 색감도 모양도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어 인증샷을 SNS에 올리기에 딱 좋은 호박.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조형적으로 예쁘고 화사하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좋아할 만한 작품의 배경에는 당연하게도 슬픔의 흔적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여러 곳에서 보았음에도 특별히 그녀에 대해 알아보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러다가 제주의 본태 박물관을 가게 되었다. 본태 박물관에서는 쿠사마 야오이의 작품 2점을 영구 소장하고 있는데, 하나는 그 유명한 <호박>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무한 거울방-영혼의 광채>다.  무한 거울 방에 들어가기 위해서 대기하던 중에 벽면에 쓰인 쿠사마 야요이의 한 문장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 예술은 오직 나만 볼 수 있는 환각에서 시작된다.


나만 볼 수 있는 환각이라니. 환각은 제정신이 아닐 때만이 볼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미쳐있음을 고백하는 것인가? 궁금해하면서 입장하게 된 작품 <무한 거울 방>. 작고 어두운 이 방은 천장부터 바닥까지 거울로 완전히 뒤덮인 방이다.  


<무한 거울방-영혼의 광채>


이 밀폐된 공간 안에서 나는 30초 동안 그녀가 나를 위해 켜놓은 형형색색의 불빛들이 영원처럼 사방으로 펼쳐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위로 아래로도, 사방 어느 곳을 보아도 아름다운 불빛들만이 나를 감싸고 있다. 영원한 우주에서 아름다운 별빛들을 보며 둥둥 떠있는 것 같은 기분. 그야말로 몽롱한 환각이다. 


그날 미술관에서 그 문장과 작품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평생 동안 그녀가 어린 시절의 학대와 전쟁의 트라우마로 고통받았던 사람임을 몰랐을 것이다. 그녀가 고통스러운 유년시절로 생긴 강박증을 극복하기 위해 계속해서 아름다운 점을 찍어내야 했던 것도, 그리고 그 점이 그녀에게는 바로 자기 자신이자 우주 안에서 연결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도. 


그녀는 7세 때부터 개와 꽃들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을 보았고 얼마 가지 않아 자신의 주변의 물건들이 이상하리만큼 번쩍이는 섬광과 광채를 내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정신질환에 대해 많은 것이 연구되지 않았던 시절, 그녀의 부모는 이 모든 게 교육이 부족한 탓이라 생각하며 심한 매질로 이를 고치려 했다. 


아마 그렇게 질환은 더 악화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20대 초반부터 심각한 수준의 공황 발작을 일으켰고, 강박과 불안이 정신을 태우려 할 때마다 점을 그리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를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유년시절에 시작되었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하여 예술을 추구할 뿐입니다. 나는 매일 고통, 불안, 두려움과 싸우고 있습니다. 병을 완화하는 유일한 방법은 계속해서 예술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녀는 48세부터 현재까지 일본 도쿄의 Seiwa 신경정신과 병원 바로 옆에 스튜디오를 지어, 병원에 입원한 상태로 스튜디오를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점을 계속해서 그려나가다 보면, 결국 고통을 느끼는 나라는 주체조차 사라졌던 걸까. 결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고통 속에서 계속해서 점을 찍어내며 생존을 위해 지금도 분투하고 있는 쿠사마 야요이. 



그 모든 과정에도 그녀는 자신이 이 우주의 한 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스스로가 이 영원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한 부분임을 꼭 기억하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에게 고통만을 안겨줬던 아름답지 않은 이 세상을, 그녀는 아름다운 점들로 덮으며 용서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를 더 잘 알게 된 이후로 나는 빨간색 점박이 옷에 빨간 가발을 쓴, 100세가 다 된 특이한 할머니인 그녀가 사랑스럽다. 조금 우스운 표현이지만, 나는 그녀가 '곱게 미쳤다'라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불안과 강박으로 항상 고통받아왔던 그녀가 점을 그릴 때만큼은 안식을 얻었음이 다행스럽다. 그녀가 그 어두운 고통을 승화해 내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밝고 아름다운 점들을 방패 삼았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언제나 마음의 안식을 절실하게 원하고 있는 나. SNS도 잘하지 않고 인증샷은 더더욱 찍지 않는 나지만, 다음번에 그녀의 작품을 우연히 만나게 되면 꼭 인증샷을 찍어보려 한다. 

94세인 그녀가 남은 생애동안에도 건강하게, 그 <영원한 강박>을 계속해서, 아름답게 풀어내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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