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린다는 건, 조금 다른 내가 될 수 있는 재료를 모으는 일
씁니다, 서점일기! #씀씀장구
지난 9월 8일은 망원동에 위치한 동네서점, 작업책방 씀의 (계약)1주년이었습니다. 펜데믹 속에서 기어이 책방을 열고, 이렇게나 미래적이고도 희망적인 시공간이 존재하다니 자조하다 보니 1년이 순식간에 가버렸네요. 아무래도 저희는 이런 나날들이 각자의 인생에 짧은 해프닝으로 그치기보다는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저런...) 서점에서의 날들을 기록으로 붙잡아 두면 책방의 수명도 길어질까요? <작업책방 씀>이 ‘씀씀장구’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름의 한가운데에서부터 일기를 하나씩 공개합니다. 도무지 비슷한 구석이라곤 없는 두 작업자의 같은 하루, 다른 일기를 즐거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21년 7월 30일
작업자 2호 혜은의 일기
미화언니를 기다리면서 밀린 일기를 쓰고 있다.
오늘은 혼자서도 괜히 분주했다. 온앤오프 데뷔 축하 카페를 다녀오고, 읽다 만 책(소설 보다 : 여름 2021)을 읽고, 소설을 조금 썼고, 어제 수리 작가님이 사다 주신 떡도 먹었다. 그런데도 언니는 오지 않고 있다. 손님도 한 명도 없다.
이런 날엔 이 공간이 허상 같다. 여기에, 이렇게 멋진 공간에 나 혼자만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데, 하는 생각. 결국 누군가를 기다리게 된다는 점에서 공간 운영자로서 나는 제법 알맞은 인간인지도 모른다. 나는 뭔가를 기다리는 게 지겹거나 싫지 않다. 기다리는 동안엔 나는 무엇이든 하고 있으니까. 그 시간을 보내려고 무엇이든 할 수밖에 없으니까. 기다리면서 나는 내가 계획하지 않은 것을 무심히 해가면서 뜻밖의 내가 된다. 하나로 완성된 나는 물론 아니고, 조금 다른 내가 될 수 있는 재료를 모았다- 정도가 적당하겠다.
7월이 다 갔다. 8월에는 소설만 써야지. 9월에도, 10월에도, 11월에도, 12월에도. 소설을 쓸수록 새로운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 신기하다. 메모장에 보잘 것 없는 소재나마 조금씩 쌓이고 있다. 에세이는 쓸수록 더는 못 쓰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소설은 그런 부분에서 ‘잘 기다리는 나’랑 꽤 잘 맞는 일인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무언가를 기다리는 동안엔 소설을 써보도록 할까? 언니는 아직도 오지 않았다.
오늘 읽은 책: 『소설 보다 : 여름 2021』
*오늘 일기에는 씀씀장구에 처음으로 등장한 댓글 사진을 첨부합니다. 작업자 1호와 2호가 서로의 일기를 읽으며 간헐적으로 주고받는 깨알같은 댓글도 재미있게 읽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