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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이름대로, 계급 없이 '너'로

by 조달리

6학년 모임에서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는 중이었다. 1800년대 초중반의 런던 빈민가를 헤매던 ‘올리버’의 이야기가 현재의 우리나라 수도권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닿을지 약간의 염려가 섞인 채로 모임을 시작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학생들이 흥미롭게 빠져들어서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이 시간을 학생들 이상으로 나도 기다리게 되었다. 학생들 눈으로 고전을 읽으면(읽으려고 노력하면) 생각하지 못한 단어 앞에서 자주 멈추게 된다. 혼자 읽었더라면 '그냥저냥 장소 이름'으로 넘겼을 '뉴게이트'가 상징하는 것을 찾아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존재했던 성문이지만, 너무 유명한 감옥이 오래오래 자리했었다고. 지금은 사라진 감옥이지만, 런던 사람들이라면, 영국인이라면 '뉴게이트'를 들었을 때 감옥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거라는 설명이 더해지면, 책이 좀 더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낯선 배경, 시대에 천천히 몰입하던 학생들이 어김없이 헷갈리고, 헤매기 시작하며, 어떤 경우에는 책 자체에 대한 흥미까지 잃게 만드는 것이 바로 사람 이름과 각종 대명사들!

아무리 스토리가 쉽고 재미있어도, 서술어를 끌고 가는 주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등장인물이 헷갈리면, 쉬운 스토리가 꼬이고, 당연히 메시지가 와닿지를 않는다.

부잣집에서 은식기를 털려고 하는데 몸집 작은 올리버가 필요했던 '윌리엄 싸익스'는 다음 챕터에서 갑자기 '빌리'로 불린다. 또 다른 챕터에서는 '빌'이 된다. 영어 문화를 잘 이해하거나, 자연스럽게 이 관계가 파악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비단 학생뿐만 아니라) 어려워한다. 너무너무 쉬운데도 낯서니까 어렵다. 특히 이야기 초반에 이렇게 호칭이 달라지면, 새 등장인물인지 헷갈리는 건 당연한데도(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이에 대한 설명이 잘 없다. 우리나라로 치면 민숙이를 ‘숙’이라 부르고, 어떤 사람은 ‘민’이라고도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인물들에 별명까지 달리면 더 미로!


한자어로 번역된 호칭이 붙은 서양인 이름도 비슷하다. '오만과 편견'에서 '다아시'의 이모인 '캐서린 드 버그 부인'은 '루이스 드 버그 경'의 미망인인데, 한자어가 낯선 학생들은, 읽기 경험이 적은 학생들은 '경'이 호칭인지 이름인지부터 헷갈린다. 어렵게 호칭이라는 걸 알게 되어도 남자를 지칭한다는 사실도 잘 모른다. 게다가 '미망인'은 또 뭐지? 결혼 전 이름을 성까지 겨우 익혔는데, 소설 속에서 결혼 후 호칭이 달라지는 것도 설명을 듣고 나면 ‘아! 아~맞다’며 끄덕이지만, 혼자 읽을 때는 여전히 헷갈린다. 남매였나, 부부였나.


서양 인물을 지칭할 때, 외국 소설로 모임 할 때, 세세히 살펴야겠다 생각하던 중, 복병을 만났다. 우리나라 고전 소설도 만만치 않구나.


5학년 친구들과 '박씨전'을 읽고 있는데 생각보다 호칭이 어렵다는 것을 학생들 눈으로 이제야 깨닫는다. 주인공 박 씨의 시아버지 이름은 '이득춘'인데, 높은 재상이었다. 재상은 임금을 보필하던 최고 책임자를 총칭하는 말이다. '재상'이라는 벼슬을 알려줬으면 '이득춘 재상'이라고 하던가, '이 재상'이라고 하던가. 갑자기 '상공'이 등장해서 '이 상공'이 되니까, '이 상공'이 사람 이름인 줄 알고 또 헷갈린다. '상공'은 '재상'을 높이는 말이다. 즉, 이득춘 = 이득춘 재상 = 이 재상 = 이 상공 = 상공. 그런데 '박 처사(박씨부인의 아버지)'를 만난 상공이 느닷없이 '소인은~'이라고 말을 시작하는데 허허.. 소인은 또 누구신가? 존대의 호칭과 자신을 낮추는 호칭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어렵다.


*처사: 벼슬을 하지 아니하고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

*소인: 예전에 신분이 낮은 사람이 신분이 높은 사람을 대하여 자기를 낮추어 가리키던 말


부끄럽지만, '베니스'와 '베네치아'가 같은 장소인지 꽤 커서 알았다(이탈리아에 안 가봐서 그렇다고 변명해 보지만.... 이 또한, 허허). 예전부터 알고 있던 두 단어가 내게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았고, 책에서, 잡지에서 수없이 보았지만 나와 상관없었으므로 찾아보지 않았던 게 원인이라고 우겨보지만, 자기 이름이 자기 이름대로 불리지 못하는 상황이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면도 있다.


성경을 잘 모르는 내가 많이 들어 본 성경 속 인물은 '바울'인데 이 '바울'이 '바오로'인지 연결하지도 못했다. ‘기독교와 가톨릭, 성공회의 번역이 다르고, 한국에 들어온 시기가 달라서’라고 친구가 설명해 줬다. '바울'의 원래 이름은 '폴 Paul'이다. 복음을 전하는 예수 제자의 이름들이 다 이런 식이라고. '마태 복음'할 때 '마태'는 매튜 Mathew, '누가 복음'의 '누가'는 '루크 Luke'. 다윗은 David, 마가는 Mark, 베드로는 Peter다. 도마는 Tomas(식칼로 썰 때 밑에 받치는 판 아니다). 요한은 John이다(요한이 존이었어요?).

압권은 '방지거'다. 80년대 후반, 사촌 동생이 개에 물려서 급히 간 곳이 '방지거 병원'이었다.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몇십 년 동안 그 이름을 잊기조차 어려웠던 '방지거'는 '프란치스코'의 한자어 표기라는 것도 친구가 알려줬다.


수업 준비든, 모임 준비든, 내 읽기든 인물을 지칭하는 말이나, 호칭 정리를 잘하면서 사는 것은 내 몫이지만, '베니스'와 '베네치아'를 몰랐던, '바울'과 '바오로'를 따로 알던 나를 무시하지 않고 차근차근 알려준 내 친구 같은 친구가 없는 사람들은 어떡하나.

국경을 넘어도 이름은 이름 그대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가 홍길동도 아니고, 왜 '폴'을 '폴'이라 부르지 못하고 '바오로'라 불러야 하나. 영문 이름 옆에 '리오날도 디캐프리오'라고, '와킨 피닉스'라고 병기하면 왜 안 될까.


내게 와서 '꽃'이 될지도 모를 그의 이름을 '그의 이름'대로 부르고 싶다. 계급 없이 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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