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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매일매일 엄청나게 용기

by 조달리
스포주의
장편동화 '사자왕 형제의 모험'의 주요 내용 및 결말이 본문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용 알기를 원하지 않는 분은 읽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사자왕 형제의 모험'의 핵심은 '줄거리' 그 자체는 아닙니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말괄량이 삐삐'로 유명한 스웨덴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또 다른 장편 동화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아픈 '칼'은 곧 죽을 아이다. 언제나 기침을 하고 걸핏하면 학교를 빠지는 아이. 이런 칼에게 아름답고 멋지고 근사한 '요나탄'이라는 형이 있다. 침대에 누워서 형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세상을 읽고 해석하는 칼. '칼'이 죽으면 '낭기열라'라는 곳에 가게 될 텐데 그곳에서 잠시만 기다리면 형이 따라갈 테니 걱정 말라고 위로하는 요나탄. 칼 눈엔 요나탄이 최고다.


어느 날 집이 불탔다. 2층 부엌에 누워 있던 칼을 구하기 위해 용감한 요나탄은 곧장 계단을 올랐고 칼을 업은 채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형의 등에 있던 '칼'은 무사했지만, 요나탄은 죽었다. 죽기 전에 웃음 지으려 애쓰며 칼에게 남긴 말은 '낭기열라'에서 다시 만날 거니 울지 말라는 당부.


'효율'이나 '순차'를 따지는 동네 사람들은 칼이 듣는데도 수군수군. 어쩔 수 없이 누군가 죽어야 했다면 어차피 곧 죽을 '칼'이어야 하지 않았느냐. 왜 멀쩡하고 근사한 요나탄이 칼 대신 죽었느냐. 삶과 죽음에 이유와 순서가 있다고 믿는 이들은 그 시절 스웨덴에도 당연히 있었겠지.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이다.


원래 아팠던 칼도 죽는다. 형이 말하던 저세상 '낭기열라'에서 요나탄을 만난 칼. 아프지도 않고, 걱정도 없는 '낭기열라'인 줄만 알았는데 그곳에 독재자가 있다. 옆 마을을 이미 헤집어 놓고,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 먹거리만 챙기는 독재자 '텡일'에 대항하는 그곳에서도 역시 멋진 요나탄 형. 사람을 죽이지 못하고, 쓰레기로 살고 싶지 않으므로 해야 할 일을 해 나가는 요나탄 형은 '레욘'이라는 성에 걸맞은 '사자왕'이다. 이런 '형'을 해바라기 하던 브라더 보이 '칼'이 형을 보고, 형을 배우며, 형을 지키고 싶어 하다 '용기'를 내어 결국 '사자왕 스코프판'이 되는 이야기. *'스코르판'은 과자 명칭인데 요나탄이 '칼'을 부르는 애칭


형을 찾으러 혼자 길을 나선 칼은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르면 조금은 용기가 샘솟는 것 같은 기분.


어떤 행동이 용기를 나게 하는지,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용기가 생기는지를 청소년들에게 물었다. 나만을 위해서라면 내지 못했을 용기가 타인을 향해서는 날 때가 있으니까. 소설에 기반한 질문이었고, 전형적인 질문이었다.


전형적인 답이 나왔다. 전형적인 답이 좋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짐작할 수 있을 만한 답이었고, 쉽게 끄덕일 수 있을만한 답이라는 딱 그만큼이라는 뜻. 전형적인 질문이 가진 한계란 뜻이다.

쓰레기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지고 온 용기

형과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

형을 닮고 싶은 마음

형에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의존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형의 존재

예상하지 못한 답을 한 사람은 현수였다.

아직 혼자서 결정해 본 일이 단 한 번도 없다던 현수에게서 나온 말은 용기는 너무나 자주, 매번 내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 내는지 답하기가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중학교 1학년 한 학기를 마쳐가는 현수는 특히 새 학기가 될 때마다 더 특별히 용기를 내어 하루를 보낸다고 했다. 인사할까 말까? 내 인사를 저 아이가 받아줄까? 큰 소리로 웃을까 말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불안도를 조사한 결과를 뉴스에서 본 적이 있어요. 꽤 높더라고요. 다른 나라랑 비교하니 그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어요. 그런데요. 그렇게 불안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 불안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숫자에 비해서 자살하는 사람의 숫자는 상대적으로 낮은 것 같아요. 물론 자살하는 사람들도 많긴 하지만, 불안한 사람들 수가 훨씬 훨씬 많잖아요. 그렇다면 그 불안한 사람들은 모두, 매일매일, 엄청나게 용기를 내면서 살아가고 있는 걸 거예요."


'용기'에 별점을 주어가며 대단한 어떤 것으로 치켜세운 뒤, 일상에서 분리하고 외따로 둔 전형적인 질문을 무용하게 만드는 현수의 답을 듣자 다른 학생들도 덧붙인다.


독서모임에 오는 걸음도, 이런 답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 내놓는 답도 모두 용기가 없으면 하지 못했을 일이라고.


나의 뻔한 질문이 부끄러웠다가 나 역시 곧 생각을 고쳤다. 뻔한 질문이란 없다. 질문을 제대로 읽고 질문 자체에 물음표를 단 후, 수많은 후속 질문과 예시를 가져올 현명한 답이 있다면 이런 질문도 의미 있겠다. 단 질문한 이는 답하는 이의 말을 잘 들어야겠지.


매 순간, 쉼 없이 내고 있는 용기. 이들 만일까.


공원에서 우르르 모래를 쏟는 아이. 이 아이와 함께 웃고 놀고 있는 양육자들. 파란 신호등을 기다리며 발을 까딱거리는 오십 대 정도의 남자. 오늘은 더워서인지 손님이 너무 없다며 예의 그 웃음을 보이시는 단골 카페 사장님. 놓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용기 냈을 우리들의 순간.

현수 덕분이다.

다시, 책모임이 도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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