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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선거에 관심 많다고요!

선거 쫌 아는 10대

by 조달리


도서관 책 모임은 매년 1월부터 6월, 7월부터 12월, 그러니까 학기제로 진행된다. 따라서 1학기 책 모임 도서 선정은 그 전년도 12월에 정해져야 하고, 책이 변경될 때도 있지만 어쨌든 이 도서 목록을 보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신청을 하기 때문에 반복되더라도 늘 신경 쓰며 책을 고르게 된다.


언젠가부터 3월은 4.3 관련 도서를 골랐었는데 다른 주요 사건들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기도 했었고, 4월 초라 4월 중순쯤 하게 되는 책 모임에서는 늦은 감이 있어서였다. 늘 그랬던 것처럼 작년도 3월에 4.3 관련 도서를 준비했었는데 3월이 되어서야 '2024년 4월 대한민국 총선거'가 다가온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었다. '선거' 관련된 책을 시기에 딱 맞춰 읽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를 다시 맞추려면 몇 년은 기다려야겠네 라며 혼자서 아쉬워했었는데 마침(?) 12월 계엄 사태가 터진 거다. 특별한 정당을 지지하진 않는다. 하지만 몇 시간 만에 무마된 계엄이라 하더라도, 특정 명분 없이 총칼로 국민을 제압하며 자유를 제한하는 상황이 코앞까지 밀려왔다는 생각이 하루하루 내 일상을 잠식할 정도로 아찔했다. 탄핵이 될 것이라 예상했었고 그렇다면 5월에는 대선을 하게 되겠다고 짐작하며, 또 마침 그 해 놓친 '선거책'이 아쉬웠던 터라, 4월 책 주제는 무조건 '선거'였다. - 5월에 했다면 좀 더 현장감 있었겠지만 이 또한 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선거 쫌 아는 10대> 하승수/ 풀빛

여러 사안에 목소리를 자주 내는 하승수 씨가 쓴 대화체 형식의 글이다. 16세, 18세인 조카들과 '선거'에 대해 삼촌이 나누는 대화로 설정하여 편안하게 들려준다.

- 사실 지식 전달이 목적인 책인데 대화체로 되어 있어서 더 복잡했다. 우리는 이런 단어를 써가며 대화하진 않으니까... 대화 수준이. 와~~

- 어? 대화로 되어 있어서 난 좀 더 편하게 읽었는데?

- 알려줄 거면 그냥 설명하면 좋겠다.

- 그래도 알게 된 여러 사실들이 있어서 난 좋았다.

등의 의견이 다양하게 나왔다. 저자의 말투에 학생들은 생각보다 신경을 많이 쓴다. 청소년 관련 도서 저자라면 기억해야 할 점.

우리의 일상적인 대화가 그러하듯, 가까운 사이가 나누는 대화는 그들끼리는 편안하게 흐르지만, 새로운 단어나 용어가 대화 안에서 주르륵 흘러가는 형식의 책이라 내용 정리하기가 쉬운 편은 아니다. 이럴 땐 PPT 내용 정리가 옳다. 모조리 소화할 순 없어도 핵심을 가져갈 순 있으니까!


선거와 투표 차이를 설명하는데 한 학생이

"선거 안에 투표 있다!"로 간단히 표현해서 일단 웃고 시작했다.


"엥? 투표 안에 선거 있는 거 아니었어?"

"아니지, 선거 안에 투표 있는 거 아냐?"


선거와 투표 차이 알아보기 딱 좋은 표현이 재밌었고, 큰 개념 익히기도 유쾌했다.


투표는 표시해서 어느 한 편을 지지하는 것을 말하는 개념이고 선거는 그 안에서 특정한 절차와 제도 아래 어떤 사람을 자유롭게 '선출'하는 과정을 말한다. 좀 더 제도화된 행위.


그러니까 = 투표 안에 선거 있다! 반대로 주장? 했던 학생도 크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선거의 개념도 익히며 피선거권도 알아볼 겸 우리 사이에서 '정당'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두 명씩 한 정당을 만들었고 정당 이름과 슬로건은 기본. 도서관 관련 공약을 두 개씩 내걸기로 했다.


야무지게 읽당 - 도서관 관련 정당이니까 읽는 거에 초점을 맞춘 당 이름

포도당 -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퉁퉁퉁퉁퉁퉁퉁퉁퉁(퉁이 9번) 사후르당 - 당 이름에 뜻이 꼭 있어야 해요? 인기 있으려고 지었어요 (무슨 캐릭터 이름이라고 하던데..... 난 잘 몰라서 받아 적는데도 힘들었지만 이름만으로 한참 웃었다)

멋지당 - 간지가 최고니까

북드르 북드르 파타핌 - 퉁X9 사후르당과 비슷한 취지. 요즘 인기 있는 이름으로 지은 당 이름(이것도 무슨 캐릭터라고 했었고 이 이름으로도 또 한참 웃었다) - AB 팀을 합쳐서 썼다


막상 공약을 만들려고 하니 책모임 할 때만 도서관에 와서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 도서관에 지금 뭐가 필요한지 전혀 모르겠다고 말하던 정당도 있었고 (선거를 하려니 그 시작은 우리 주변을 살펴보는 관심이라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자기 취향에 맞는 책을 찾을 수 있는 기계를 개발하고 설치하겠다는 정당의 공약을 듣고서는 실천 가능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실현 가능한 공약의 중요성으로도 연결되는 지점.

오래된 책을 나눔 할 수 있는 프로그램, 책 거치대를 설치하겠다는 정당, 어린이 자료실 시간을 한 달에 한 번이라도 평일은 8시까지로 연장하며 날씨 좋은 9월에는 한 달 동안 야외 도서관을 개장하여 자연에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계획하겠다는 정당, 인테리어와 도서 선정을 간지 나게 하겠다는 정당도 있었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정당은 평일 8시까지 어린이 자료실 연장하겠다던, 9월에 야외 도서관을 진행하겠다던 "북드르 북드르 파타팀"당이었다. 역시 구체적인 공약이 힘이 세다는 사실이 눈으로 드러나자 모두들 끄덕끄덕!


'나이'와 관련된 다양한 기준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취업, 결혼, 운전면허 취득, 병역, 술 담배와 관련된 나이 기준을 알아보다 정당 가입 나이와 선거권 나이로 이야기가 뻗어갔다. 정당 가입은 만 16세부터 가능한데 이때는 법적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18세부터는 자유.

선거권은 2024년을 기점으로 만 18세부터다. 하지만 피선거권, 즉 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는 나이는 훅 높아진다. 국회의원 피선거권은 만 25세부터, 대통령은 만 40세부터다. 정치와 선거에 관심이 많은 참석자들 목소리에 불만이 묻어 나온다. 튀어나온 입도 보인다.


정치적인 선동에 휩쓸리기 쉽다는 이유라면 그건 나이가 많은 성인도 마찬가지다.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공부할 수 있게 하는 환경이 중요하며 피선거권 역시 마찬가지다. 독일의 '안나 뤼어만(19세에 국회의원이 된 인물이다)' 말랄라 유샤프자이(파키스탄의 인권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스웨덴의 기후정의 및 인권 운동가)의 얼굴을 화면 가득 보고 나니 이들처럼 내 관심분야도 말하고 싶어질 수밖에.


- "교육에 관심이 많아요. 어른들은 바꿀 수 없어요. 우리가 현장에 있는 주체잖아요. 우리 목소리를 들어야죠."

-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계에 참여하고 싶어요. 알음알음으로 위원을 선정하고, 대표팀의 많은 문제들이 묻히는 상황을 좀 해결하고 싶어요."

- "환경이 정말 심각해요. 개인이 할 수 있는 범위는 이제 지나지 않았나요? 정부가 나서서 이 일을 해결해 나가야 하는데 정말 같이 일하고 싶어요."

- "공교육이 현재 정상이에요? 점점 더 심각해지는 사교육 문제 직접 해결하고 싶어요. 이대로 괜찮아요?"


누가 이 학생들이 어리다고 했나요? 피선거권과 선거권 연령을 좁히려는 현상은 세계적인 추세다. 교육현장에서도 살펴봐야 할 사안.



헌법재판소장, 경찰청장, 국회의원, 대통령, 시의원, 구의원, **도서관 관장, **초등학교 교장, 검찰총장, 시장 등의 다양한 직책 중에서 선거로 뽑는 자리와 아닌 자리도 OX로 나눠보고.


"근데 왜 경찰청장이고 검찰총장이에요?" - 경찰청의 장은 말 그대로 청장으로 사용. 행정안전부 안에 소속된 '청'개념, 검찰청도 법무부 소속이긴 하지만 대검찰청이 따로 있을 정도로 검찰의 총책임을 다룬다는 역할에 더 의미를 두고 있으므로 예전부터 '총장'이라는 용어를 썼음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 중 대선거구 제도 비교하며 알아봤다.

"대통령 선거처럼 대대적으로 하는 선거가 대선거구제도가 아니었네요?" 차근차근 하나씩 배워가는 책모임

(대통령 선거는 승자독식제도 - 최종 승자 한 명인 소선거구제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도 배우고 이 둘을 합친 이원집정제도 새롭게 익혔다.

지방자치도 배우고 이를 구성하는 광역의회와 기초의회도 구분할 줄 알게 됐다.


이 모든 공부의 목표는 우리가 잘 사는 것!


앞으로 우리가 뽑을 선거에서 훌륭한 지도자를 뽑아야 우리가 잘 살 테니까. 그러려면 선거를 할 수 없는 연령이어도 선거를 하게 되는 그날을 위해 미리미리 연습해둬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에 깊이 공감하는 시간!


- 다가오는 대선 공보물을 꼼꼼히 보겠다!

- 책에 나온 대로 후보자의 재산, 전과 사실(전과자라면 어떤 일로 전과자가 되었는지도 제대로 살피겠다). 경력, 학력, 직업, 병역 여부, 세금 납부 여부도 잘 봐야지!

- 메니페스토도 잘 봐야지. 실천 가능한 공약 여부인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구!


보이텔스바흐 협약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독일 정치 교육의 원칙이다.

강제성 금지: 지식이나 이념을 주입하는 교육은 금지한다

논쟁법칙: 논쟁적인 주제는 수업에서도 논쟁되어야 한다

관심상황: 자신이 처한 정치 상황과 이해관계를 분석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고 참여를 통해 이런 역량을 기른다


-우리 교실에서도 이런 논쟁이 필요하다. 무조건 사이좋게, 부드럽게 이해하며 넘어가는 토의도 중요하겠지만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 결론을 내는 연습을 하는 현장이 필요하다. 우리도 디베이트 해 봐요!


-책보다는 책모임이 좋았고, 어렵고 복잡했던 책 내용이 이렇게 쏙쏙 정리되는 시간이라 즐거웠다.

-혼자 읽을 때보다 훨씬 더 개념이 잘 들어왔고 우리들이 했던 활동이 재밌었다.

-이번 대선 토론 더 재밌게 볼 수 있겠다.

-정치의 시작은 관심! 오늘부터 시작할 거다!


구체적인 모임 후기가 충만하다.

학생들 믿고 가는 모임으로 자리 잡은 지 꽤 되었다. 잘하는 학생들 옆에서 묻어가기!

행복한데 늘 고민이다.

잘하는 학생들 옆에서 잘하는 게 잘하는 진행일까.

천천히 조용히 소극적인 참석자들을 잘 이끌어가는 게 진짜 잘하는 진행일 테니까 이런 날도 고민은 깊다.

지금 이 학생들이 채우는 이야기가 내 진행력이라 착각하진 말아야지.

선거 책모임은 잘 끝났고 선거는 시작됐다!(이번 대선을 앞둔 2025년 4월에 진행된 모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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