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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럭 파티 시작, 나는 식탁보

by 조달리

초록색 바탕화면 위에 식탁보가 펼쳐진 테이블.

책모임 시작할 때마다 반복해서 띄우는 사진이다. 다음 장을 클릭하면 식탁보 위에 차려진 음식이 한가득이다. 책하루 모임 첫 참석자들은 이 식탁 사진이 책모임과 무슨 상관? 이라는 눈으로 나를 보고, 몇 번 참석했던 단골 학생들은 찔끔 웃는다. 이거 보여줄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포틀럭 파티 아세요? 포틀럭 파티라는 말 들어보신 분?”

한두 명 손을 들 때도 있고,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며 갸우뚱 거리는 학생들도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재참석자들은 이 질문은 첫 참석자를 위한 질문임을 알고 슬쩍 웃고 있다.


포틀럭 파티: 참가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요리나 음식을 각자 가지고 와서 진행되는 파티. 파티의 주최자는 메인 요리를 준비하거나 음료를 준비하는 서양식 파티.


“음식 가지고 오셨어요?”

무슨 말인지 이제야 눈치챈 학생들이 씩 웃는다.

책모임은 포틀럭 파티다. 진행자인 내가 큰 틀을 만들어 가고, 학생들의 참여가 더딜 경우를 생각해서 여러 논제를 준비해 가지만 내가 뒤로 빠질 수 있는 책모임이 언제나 성공이었다.


처음 먹어보는 재료, 낯선 조리법, 평소 같으면 쳐다도 보지 않던 확실히 내 취향 아닌 어떤 음식도 가까운 이가 권한다면, 평소 좋아하던 친구가 같이 먹는다면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처럼(그래서 ‘반 미’에 ‘고수 가득’을 외치고, 마라맛에 중독되는 거 아닌가) 책모임도 그렇다.


내가 몰랐던 것을 공유하고, 궁금했던 질문에 친구의 답을 들으면서 내 생각이 정리되고 내 취향이 드러난다. 친구들이 가져온 음식을 맛있게 나눠 먹는 것처럼 그들의 생각과 정리를 맛있게 나눈다. 물론 내가 가져온 음식도 함께.


화려하게 차려진 식탁과 초라한 음식 몇 개가 놓인 식탁을 비교해서 보여준 적도 있었다.

여러분은 어떤 식탁에서 음식을 먹고 싶나요?

모두가 화려한 식탁을 가리킨다.

이 식탁에서 음식을 먹고 싶다면 참석한 여러분도 좋은 음식을 가져와야겠죠?

라는 답은 당연한 차례였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이 비교가 스스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이번에는 음식을 가져오지 못했거나 풍족하게 갖고 오지 못했지만 먹고 싶기는 해서 이 자리에 온 사람도 분명 있을 테니까. 지난번에는 마침 내가 좋아하던 음식을 풍성하게 준비할 수 있었지만(내가 관심이 많던 분야의 책이 선정도서였고, 하고 싶었던 말도, 책에서 공유하고 싶었던 문장도 많았으니까) 도통 차릴 수가 없을 때도 있으니까(이번 책은 영 모르겠다. 이런 책을 제대로 읽은 친구가 있기는 한 걸까 싶은 마음으로 겨우겨우 참석했을 수도 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진행자가 ‘초라한 식탁’ 어쩌고 하면 그 학생은 다시 또 모임에 참석할 수 있을까


여전히 두 식탁의 사진을 띄워두지만 설명은 좀 달라졌다.

모두가 화려한 식탁에 앉고 싶겠지만, 이 옆에 있는 식탁도 괜찮아요. 다른 친구들은 이런 음식 갖고 왔는데 내 음식만 초라한가? 그냥 안 갈래. 하지 말아요. 이 식탁 음식도 충분히 훌륭해요. 소박하게 준비했지만 진심을 담아 가져왔으면 우리 모두 맛있게 나눠 먹을 수 있답니다. 제가 깨끗한 식탁보를 준비할게요.

고민하지 말고 갖고 오기로 해요! 매일매일 이 식탁이어도 조금씩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제가 준비할게요. 그렇지만 절대로 포틀럭 파티에서 절대 갖고 오면 안 되는 음식이 있긴 하죠. 뭘까요?

내 음식 정도도 괜찮단 말이지? 라며 화색이 돌던 학생들 얼굴이 금방 또 심각해진다.

음……뭐지? 맛없는 거?

맛없는 것도 괜찮아요! 맛이 없구나 하고 넘기면 되죠. 우리 요즘 맛있는 거 너무 많이 먹어서 맛없는 것도 먹어봐야죠.

음…그럼 또 뭐?

썩은 거요!

한 명이 이렇게 답을 하면 다음 답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독 들어간 거요. 먹고 나면 배 아픈 음식요. 알러지 있는 사람한테 안 맞는 음식요.

정답이다.

모두에게 독인 음식, 소비기한이 지나서 독성이 나오기 시작하는 음식은 갖고 오면 안 된다. 어떤 말이 그런 음식에 해당되는지 다음 질문을 하면 다시 또 심각해지는 학생들.


누군가를 이유 없이 비난하거나 차별하는 말은 그 자체로 독이다. 그런데 모두가 이 말에 독이 들어있는지를 알 수가 없다. 나는 성의 있게 음식을 준비했는데 정말 그 안에 독이 들어있는 줄 몰랐다면?

그래서 질문을 하기로 했다.

독부터 걱정하다가 아무 음식도 준비하지 못할 수가 있으니까. 독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으면 갖고 와서 조금씩 나눠 보기로. 아주 조금씩 나누다 보면 우리 모임에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으니까. 그러면 많이 아프지 않게, 모두가 몸 상하지 않게, 어떤 음식이 독 성분이 있는지는 알 수 있으니까. 그러면 그다음에는 그 음식은 먹지 않을 수 있으니까.


배우는 학생들이다. 우리들은 배우는 중. 무조건 막는 것보다는 조금씩 열어둬야 그다음이 채워진다. 독이 있는 줄 몰랐다는 고백, 독이 있는지 없는지 알고 싶었다는 질문이 귀한 이유다. 다른 어느 곳에서 ‘독’을 뿜는 이들에게 내 백신을 잘 전할 수 있을 테니까


포틀럭 파티는 소박하지만 언제나 재밌다. 어떤 음식을 누가 어떻게 준비할지 몰라 모임 시작 전에 언제나 긴장되고 들뜬다. 다 먹고 나면 오늘도 배불렀다. 나는 깨끗한 식탁보만 준비하면 된다. 내가 준비해 간 요리는 뒷전인 채, 그들이 가져온 음식이 식탁보 위에서 빛나는 순간이 제일 배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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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방언 잔뜩인 '4.3' 관련 소설책이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내용을 나누던 중 채형이 말했다. "방언은 표준어를 바꿔서 말하는 거니까 살짝 바꾸는 건 괜찮은 것 같다."고.


방언은 표준말을 바꿔서 하는 말일까.

표준말도 특정 지역의 방언이다. 방언을 쓰는 사람들은 다른 언어로 생각하고 있다가 말해야 하는 어느 순간 방언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장착된 모어이며, 표준말이라고 채택된 서울말도 특정 지역의 방언이라는 설명을 더했다. 한국말도 국제적으로 보았을 때 지역 언어이다. 세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어'입장에서 보면 채형의 말은 우리가 영어를 바꿔서 한국말로 말하는 것과 같다. 범위를 넓혀 시선을 옮기면 아니라는 답이 쉽게 나온다. 우리는 생각도 한국어로 하니까. 다양한 언어들이 여러 이유로 억압받았고, 특정 지역의 언어만 '표준'으로 정해져 기준이 되었다. 그 당시 한 가지만 있어야 했던 사상처럼.


지나가는 말처럼 쓱 던진 이야기엔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인식 과정이나 사고 범위가 그대로 드러난다. 친구들이 떠들썩하게 흥분하자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그냥 얹은 한 마디였는데 그 한마디가 불러온 이야기가 길어지니 채형은 조금 놀란 눈이었지만 그가 편안하게 말하지 않았다면 함께 나눌 수 없던 주제였다. 모르는 건 자연스럽게 묻고, 소설 속 인물인 규완이가 목격한 학폭이야기와 나의 일상을 연결하는 학생들이 만든 분위기였기에 가능했다. 채형도 그 학생들에 당연히 포함이다. 맘껏 떠들기. 상한 음식인지 미리 걱정하지 않기. 책모임의 필수조건. 잘못된 질문은 없고, 잘못한 말은 없다. 청소년 책모임에선 언제나 그렇다. 나만 식탁보 잘 준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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